뽕 맞은 것처럼 (2/2)

뽕 맞은 부서의 상대 부서가 된다는 것

by 쉬는건 죽어서

뽕 맞은 부서의 담당자들을 관계부서는 귀신같이 알아본다. 당당함에서 나오는 아우라가 느껴지고, 무례함에 가까운 당당함에 뭐가 있는 거구나 느껴지기도 하고, 입에서 습관적으로 나오는 "대표님께서~"라는 말에 top과의 거리감을 실감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부서의 친구들은 신기하게도 말투가 비슷하다. 가르치려는 말투 같이 위에서 밑을 내려다 보는 느낌. 질문에도 단순한 답으로 대답하기 보다 수식이 많이 붙은 의문형으로 답한다. "이게 최종으로 결정된 안인가요?" 네 라고 말하면 제일 깔끔할 것을 "대표님께 보고된 안 이니까요." 선문답을 하는 것도 아니고, YES 혹은 NO도 아니게 이야기해서 또 다른 질문을 불러 일으키는 것일까. 대표님께서 어떤 언급을 하셨고, 어떤 의미로 얘기하셨는지 기승전결의 스토리텔링을 해주면 좋겠는데, 스무고개에 답하듯 하나씩 하나씩 양파껍질을 벗겨주신다. 묻다가 지쳐서 네 알겠습니다 라고 지쳐 떨어져 버리게 그래서 그 본질을 알지 못하게 해야 본인만이 무기를 갖고 있는 것이어서 그런가보다.


그런 반면 무슨 문제를 해결하자고 모인 자리에서는 관련 지식을 자랑하듯 풀어낸다. 지치지도 않는지 그 문제에 관련된 곁가지 배경 설명들을 앞 말이 끊기기도 전에 뒷말을 뿜어내며 초고속 랩을 해 낸다. 랩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알아듣기 어려워지고, 모두의 짜증이 극에 달할 때쯤, 그보다 높은 직급의 사람이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죠?"라는 결론을 요구하는 짜증섞인 질문이 있어야만 멈추어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엑셀레이터를 밟는 것 같이 반응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잠시 정적 후에는 기세를 만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다른 자기 전문 영역의 질문을 쏟아내기도 한다. 10분이면 끝날 회의를 1시간까지 늘리는 마법이 펼쳐진 것이다. 다른 참석자들의 시간과 기분을 볼모로.




계속적으로 뽕을 맞으면 그 기분에 취해서 스스로 특별하다 생각하게 되고, 자신이 이끌어 가려고 하고, 지식이 많은 것을 뽐내려고 관련이 없어도 제반 지식을 다 늘어놓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고, 다른 사람이 열등해서 우습게 알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 같다.


다른 부서로 순환근무가 필수로 되어 있는 감사팀 정도를 제외하면 사내 주요 보직에 있는 사람은 오랜 기간 그 자리에 있다. 부서 리더가 변경되면 성향에 따라 영향을 받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라도 뼈를 갈아넣을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해서 살아남는다.


당한 관계부서 입장에서는 그 분들이 권한을 잃고 온순한 양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지만, 그건 회사의 정해진 권한 구조상 쉽게 바뀌지 않고 내 속만 탈 뿐이다. 그 분들은 그분들의 길을 잘 가시게끔, 옆에서 도와드리고, 박수 쳐 드리고 소소한 뒷담화 정도로 지친 마음을 달래는 수 밖에. 괜히 섣불리 건드렸다가 뽕도 못 맞는 애먼 일만 뒤집어 쓸 수 있으니.


그런데 오늘도 들켰다. 삐져 나오는 킹받는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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