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이라는 단어에서 생각난 것들

열등감의 늪에 빠져있을 때의 감정들..

by 쉬는건 죽어서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몰랐다 그걸. 40년이 넘게.


누군가 긍정의 말을 해줘도 민망해서 말을 다른데로 돌렸다. 아니면 나를 깎아내렸다. 겸손이라는 미명하에. 그리고 나면 내가 또 분위기에 안 맞는 말을 했나 싶어서 마음이 쓰이기까지 했다. 남들이 잘하는 건 모두 부러웠다. 그렇게 못하는 내가 못나 보였다. 내 장점을 충분히 인정하지 못했다. 잘한다고 말하는게 잘난 척 하는 것 같아서 한번도 나 이거 잘해 라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걸 살려보지도 못했다.
대화를 할때면 항상 긴장 되었다. 멋진 말로 의미를 담아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았고, 유머러스한 대꾸를 하고 싶었고, 매끄러운 목소리로 교양있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걸 다 갖출 때까지 더 위축되었고,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고 목소리도 좋게 하기 위해 부던히도 애를 썼다. 옆사람과 그냥 말 한마디를 '잘' 하기 위해.


돌이켜보면 이렇게도 위축된 자아에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애써 온 40년 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잠깐도 만족하지 못하고 '쉬는 건 죽어서'라며 안보이는 곳에서 (티 내는 것도 부끄러워서)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사방팔방으로. 너무 방향이 여러가지여서 성과가 잘 나지 않았다. 위축된 자아여서 주변을 살피느라 에너지가 너무 낭비되고 있었다. 모아지지 않은 에너지는 힘이 없었다.


이걸 과거형으로 말할 수 있어서 이제야 말할 수 있다. 그 한복판에 있을 때는 소용돌이에 휘말려있는 나뭇잎처럼 밖이 보이지 않고,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기만 했다. 밖으로 나오니 이제야 세상이 보이고 내가 보인다. 그래도 꽤 단단한 내가 되어 있어서 기특하다. 이제는 당당히 말한다. "운동 꽤 잘하는 언니"라고. 이제는 대화의 맛이 느껴진다. 이제는 위축되지 않는 내 자신이 느껴진다.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 살 수 있었는데, 왜 모임이 끝나면 물에 뜬 기름같은 마음에 불꺼진 거실에서 숨죽여 울었을까. 슬픈 드라마를 핑계대고 맥주 한 캔으로 위로하며 꺼이꺼이 울어댔을까. 내 버거웠던 과거에 손수건 한 켠을 대주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열등감과 마주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