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는 딱 일처리만
업무와 업무 사이에 해야할 일
재택근무의 꿈을 꾸고 있었는데, 생각지 못하게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뒤늦게 도입된 재택근무의 혜택이 드디어 나에게까지 미치게 된 것이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급하게 결정된 재택근무, 당장 뛰쳐나가고 싶지만, 괜히 너무 놀러가는 티가 날까봐 퇴근시간이 넉넉히 넘은 시간까지 여유부리고 있다가 퇴근한다.
긴장감을 늦추지 말고 해야지 하는 첫째날. 새벽 운동을 다녀와서 정해진 시간에 노트북 앞에 앉았다. 오늘까지 해야 할 일과 내 주관으로 소집해 놓은 회의가 있어서 스피디하게 처리해야 했다. 해야 할 일 1시간, 회의 준비 1시간 정도로 목표를 잡고 하다보니 어느새 오전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자리를 비우면 모양이 바뀌는 메신저창 형태 때문에 화장실도 맘껏 가지 못하고 있었던 오전 근무 시간이 끝나고 점심 시간에 서둘러 아이들과 엄마 점심을 챙겼다. 재택 때라도 영양소 골고루 들어간 식사를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국에 반찬에 구색을 맞추어 먹고 치우다 보니 어느덧 회의 시간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쫓기는 기분에 미적거리고 있는 큰 애에게 쇳소리를 했다. "엄마 왜 나한테 화내?" 딸의 기분이 안 좋은 걸 눈치 챈 엄마도 후다닥 집으로 가 버리셨다.
잘 하려는 의지는 있었으나 찝찝하게 오후 근무가 시작되었다. 오후에는 학원을 다 가는 시간이라 집중할 수 있었다. 온라인 미팅 시스템을 통해서 회의 연결을 하고, 소리가 잘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conference call로 전화해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통해 협의를 진행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정리하고 수명 업무 두어개를 처리한 후 첫날의 재택근무를 마감했다. 중간중간 이불 정리를 하고, 학원을 다녀온 아이들에게 간식을 챙겨주고, 숙제하는 아이들을 과목마다 챙겨주고, 빨래를 돌리고 맑은 햇빛에 곱게 널어주고 청소기를 돌렸다.
회사에서는 업무와 업무 사이에 정보를 서칭하거나, 관련 부서 사람을 만나서 협의를 하거나 티타임을 갖는다. 업무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템플릿을 편하게 정리하기도 하고, 교육을 찾아보기도 한다. 비어있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서 단위별 아웃풋을 내려고 노력한다.
집에서는 업무와 업무 사이에 집안일을 사이사이에 한다. 평소에 못했던 집안일, 평소에 못했던 맛있는 음식 만들어주기, 평소에 못했던 아이들 챙기기, 평소에 못했던 엄마 챙기기를 한다. 그 시간에 조금 더 업무의 효율을 높여야 할 것 같아서 마음 한켠이 불편하지만 재택근무를 하면서 그것까지 바라면 욕심이겠거니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재택근무의 목적이 육아상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운영하는 것인데, '중간중간 집안일을 챙기는 것을 양해합니다.' 라는 의미까지 포함하는 것이 아닐까 멋대로 생각해버린다.
업무 효율만 놓고 보았을 때, 특히나 엑셀 작업이 많은 나의 업무 성격상 듀얼 모니터는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게다가 엑셀에 연결된 수식이 시트 복사가 되는 데에만도 10분 이상 걸리기 때문에 (회사 고사양 노트북에서는 1분) 노트북 사양도 높여주는 것이 필요한 부분이다. 더 장기간 해야해서 욕심을 낸다면 서재방을 업무용 방으로 꾸며주는 것, 에어컨까지 놓아야 할 판이다.
그래서 욕심을 내려놓고, 오늘의 재택도 급한 일처리만, 남는 시간에는 평소 못했던 아이들 챙김을 했다. 좋은 엄마 모드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