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동화를 마주하는 마음,
"선생님은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에 나오는 노인처럼 책을 읽으시는군요!"
책에 대한 묘사를 하며 그 느낌을 함께 나누다 서로 다른 느낌과 식견을 좁히지 못하던 국문학을 전공한 선생님께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처럼'
아주 작은 단어도
무심결에 넘어가지 않고, 이해가 될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내 모습이 신기하셨던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25년을 아이들과 만의 상호작용을 통한 세상 속에 있었으니 같은 어른들을 만나고 대화함에 미숙한 내 모습이 속세를 떠나 오지로 들어가 30년을 지난 노인처럼 이란 느낌이 딱 들어맞았다. 그 말에 기분이 나쁘기보단 속이 시원한 원인을 찾게 되어 고마움의 표현을 여러 번 하기도 했다.
노인이 되어 자신이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을 자각한 후, 읽게 된 책들을 어루만지듯 읽고 또 읽는 노인처럼.
참을성과 인내심을 갖고 알 때까지 소리 내어 읽어나가는 노인처럼 말이다. 하지만 노인은 아무리 읽어도 알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장면 앞에서는 스스로 그려 볼 수 없는 그 느낌 때문에 식은땀을 흘린다. 베네치아의 집들이 물에 떠있다는 것을 상상초차 할 수없고, 뜨거운 키스를 한 번도 해본 적 없어 그 느낌을 알 수 없어 답답한 노인.
딱 여섯 살 아이들이 그렇다.
다섯 살 정도의 아이들은 모르면 모르는 데로
경험 속에서 두루뭉실 넘어간다. 왜냐하면 모르는 것을 탐구하기엔 주변의 자극들이 너무 쉽게 자신들에게 손짓하기에 그 유혹에 곰새 손을 내밀기 때문이다.
또, 일곱 살 친구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자존심 상해한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기보다 조용히 눈동자와 머리를 재빠르게 굴려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
아는 척을 하며 모면한 후, 아까 몰랐던 건 내가 아니게 된다.
그런데 여섯 살은 다르다. 네 살 때 "왜요?"라고 자주 묻는 '왜요?'와 사뭇 다른 앎에 대한 진중함이 있다.
그리고 조금 아는 것과 더 아는 것이 만나 자신만의 유레카를 외친다. 딱 여섯 살의 수준에서 긴 하지만
호기심을 표현하기에 주저함이 없다.
각 연령에 따른 동화책의 선정도 이러한 기준으로 나눠져야 하고, 책을 읽은 후 활동 또한 그 기준의 정함을 연령마다 다르게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인은 잠이 없는 편이었다.
다섯 시간의 수면과 두 시간 정도의 낮잠 외에 나머지 시간은 주로 소설을 읽고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랑의 신비를 찾거나 무대가 되는 곳을 상상하며 보냈는데, 파리니 런던이니 제네바니 하는 지명이 나오면 그 도시들을 상상하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딱 여섯 살 아이들은 상상할 때 현실과의 거리감이 꾀 멀기 때문에 노인처럼 재밌는 상상을 가장 잘할 수 있다. 주입식 공부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을 자주 접하는 것이 좋은 까닭이다. 그 적기성을 놓치면
"에이~ 그런 게 어딨 어요? 상상이잖아요!!" 하는 일곱살이 되기 때문에,
6살을 반이나 보내버린 친구들이 있다면 공부보단 이야기책으로 상상력을 자극해야 한다고 그 부모들에게 알려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