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아들들 짐가방을 싸온 것을 돌이켜봤어요.
저희 아이들은 모두 기숙사에 있습니다. 고등학생 막내도 기숙사 학교, 대학생 아들들도 기숙사에서 지내요. 방학이면 집에 기숙사 짐을 한가득 가져오느라 가방을 꾸리고, 개학하면 학교에 보낼 짐가방을 쌉니다. 기본 캐리어가 사이즈 별로 준비되어 있고, 어떤 시기에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캐리어들이 적당한 곳에 한참을 놓여 있어요. 상처가 많이 생긴 캐리어를 보면서 지금껏 아이들의 짐가방을 많이도 쌌구나 생각해 보았어요.
제일 먼저 생각나는 짐가방은 유치원 다니는 막내가 친구네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여행을 갈때 싼 가방이에요. 엄마는 늘 바쁘고, 터울이 있는 형들도 늘 바쁘고, 외동으로 자라는 친구네가 마침 여행길에 함께 데리고 간다 해서 냉큼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 없이 혼자 가는 여행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를 나이라 아이에게 익숙한 것을 챙겨야겠다 생각하고 준비했어요. 그리고 제일 신경 썼던 것은 여비를 넉넉하게 챙겨 주는 것. 친한 친구의 부모님이라 해도 선뜻 말하기가 불편할 거라 생각하고, 엔화를 많이 보냈어요. 그랬더니 다 쓰고 왔네요... 가방에 온통 일본산 즉석 라멘이 한가득. 해리포터의 마법 지팡이 2개, 먹지도 못하는 이상한 맛의 젤리...
초 2에 국제대회에 나가던 작은 아들의 짐가방에는 하루치 생활할 모든 것들을 지퍼백에 날짜별로 준비해서 보냈어요. 하루지 속옷과 겉옷을 일일이 포장하고, 입 짧은 녀석 제대로 먹지 못할까 싶어 햇반, 라면, 김, 고추장, 과자 등 한가득 보냈어요.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러 보니 함께 간 일행 전체가 먹을 양이었다고 해요. 엄마의 걱정만큼 많이 보냈구나 생각합니다.
초6 큰아들이 외국 대회에 나갈 때는 책을 넣어 줬어요. 어떤 책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수학 문제집은 아니었을 거라 기대 반 의심반이에요. 역시 엄마의 욕심만 한가득 보냈어요.
고등학교 기숙사에 입소하면서 쌌던 짐, 졸업한다고 정리해서 싸서 나오는 짐은 거의 이사였어요. 혹시나 필요할까 생각되어 이것저것 챙겼지만 역시나 필요 없는 것이었어요. 집에서도 안 쓰던 물건들을 나가서도 안 쓴다는 것을 확인했답니다. 이제 저희 막내의 기숙사 짐은 전교에서 제일 단출해요. 엄마의 경험과 노하우가 제법 있습니다. 졸업하면서 정리하는 짐에는 보내지 않았던 것이 있었어요. 연애편지, 선물. 간식.. 들이 적당히 구겨진채로 받았으면 잘 간직하던가, 아니면 받질 말던가요.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모른 척했습니다.
대학교 입학하면서 싼 짐가방에는 세탁세제 등의 온갖 살림들이 조금씩 추가되었어요. 직접 뺄래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니까요. 제일 좋은 것은 남자 기숙사에 엄마는 출입 금지라 안 봐도 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어요. 이젠 알아서 잘 지내겠지, 어떻게든 해결하겠지 믿음도 있다.. 기 보다는 이젠 손 놓고 싶은 엄마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가장 큰 짐가방은 자취한다고 집에서 이사 나가던 짐입니다. 제가 쓰는 것보다 더 좋은 냄비와 그릇들, 아끼느라 쓰지 않은 소품들을 넣어줬어요. 괜히 그랬어요. 그냥 아끼지 말고 엄마가 쓰는 게 맞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장 작은 가방은 군에 입대하는 작은 아들의 짐가방입니다. 중요한 몇 가지 서류와 카더라로 수집된 물품들, 집에 택배 박스가 쌓이더니 막상 짐을 쌌을 때는 한 손에 들만큼의 잡동사니들이었어요. 가방 가벼운 만큼 마음은 무거우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엄마의 마음도 그러합니다.
이제 독립을 위해 집에서 나가는 짐이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 싸주어야 할지 먼저 고민하지 않습니다.
돌이켜보니 아이들의 짐가방에는 엄마의 욕심과 걱정이 한가득 보태졌습니다. 옷 갈피마다, 주머니마다 엄마의 근심과 바람이 가방의 무게를 더 한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아이가 요청하는 만큼만 준비해주려 합니다.
그렇게만 해도 과하게 싸 줄 엄마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