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살고 싶은가? 어떻게 살 것인가?
공간은 경험을 만든다. 기억 속 경험은 그곳에서만 가능한 것일 수 있다. 어디에서 사는가의 문제는 경험을 만드는 일이다. 경험이 나의 정체성을 만든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지 않을까?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말이다.
어떤 사람의 '키가 얼마고 무슨 색깔 안경을 끼고 어떤 옷을 입었으며 피부색은 무엇이다'라는 말로 그 사람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 명의 사람은 그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 잘 표현된다. 마찬가지로 건축물의 진정한 의미는 건축물이 사람과 맺는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나와는 동떨어진 물질로만 건축물을 이해하려고 하면 우리는 건축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다.
(...)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건축 환경을 이해하는 것은 사람을 이해하는 하나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건축은 거울과도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건축 공간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비춰볼 수 있다.
<어디서 살 것인가, 여는 글 중에서>
공간에 대한,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건축물에 대한,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도록 열어 준 책이 유현준 교수의 <어디서 살 것인가>이다.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고,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공간이 주는 의미, 그리고 지금 내가 있는 공간에 대한 반추,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지역인 만큼 의견과 경험도 다양했다. 하지만, 공통으로 느낀 것은 우리는 각자가 사는 공간에 의해 생각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시가 조성된 모습에 따라 우리 삶의 모습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어떤 도시는 10분 거리를 걸어가게 하고, 어떤 곳은 그 시간을 차로 움직이게 한다. 사람을 걷게 하는 곳, 소통하게 하는 곳, 연결시키는 공간에 우위를 두는 것이 작가의 시선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조성된 지 10여 년이 지나는 곳이다. 그전에는 그린벨트 지역이었다. 나무는 많고, 사람은 적은 그런 곳이었다. 그 환경이 좋아 이사를 왔으나, 개발이 되면서 지금의 도시로 바뀌었다. 새로 조성된 도시는 처음에 어딘지 어설프다. 편의 시설의 여부를 떠나서, 나무도 어리고, 도시의 모양새도 낯설다. 먼저 조성된 상업공간에만 사람이 모이고, 그 외의 곳은 인적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처음 이주해 마을을 만든 사람들은 더 고생스럽고 더 애착이 갈 것이다. 도시의 나이는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도시가 나이 들어가는 것은 그곳의 가로수들에서 알아볼 수 있다.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 이 나무들도 나이가 든다. 자못 울창해진 나무를 보면서 이 도시의 연륜이 생김을 느낀다. 이곳에 맞게 나도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다. 도시를 닮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의 틈을 찾고 있다. 내가 숨 쉬고 싶은 곳을 찾는다.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하지만, 늘 생각한다.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찾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치열하게 지내온 시간들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도 한몫을 한다. 공간을 바꾸면 나의 상황이 바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하고자 하는 공간과 그 안에 만들고 싶은 나만의 공간은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갖는다. 집에서 공간을 차지하며, 나의 공간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자신만의 동굴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은 크기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큰 집, 큰 방, 넓은 정원이 꼭 좋을까? 그보다는 내가 위치한 곳의 자연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 정도의 안목은 생길 나이이기도 하다. 작은 집이어도 문을 열고 나오면 나무 냄새가 나는 곳이 좋다. 두드러지는 집이 아니었음 한다. 공들여 지어진 집이 아니어도 좋다. 작고, 소박하게, 자연에 어울리는 건축물이면 좋겠다.
높은 건물들보다는 나지막한 산이 보이면 더 좋겠다. 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컸으면 좋겠다. 하늘을 펼쳐 볼 수 있는 곳, 나무들이 울창한 산을 볼 수 있는 곳이 내가 원하는 공간임을 새삼 깨닫는다.
어린 시절,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았다. 집 주위를 둘러서 마당이 있었고, 꽃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다. 그중에서 라일락 나무가 담 너머로 뻗칠 정도로 울창했다. 지금도 어린 시절에 마당에서 소꿉놀이를 하던 기억이 난다. 마당으로 이어지는 거실 문을 열고 온 가족이 함께 밥을 먹던 장면이 떠오른다. 오래된 집이라 여러 불편했던 점도 많다. 그럼에도 그 집이 기억이 많이 난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을 라일락 집이라고 불렀다.
다시 라일락 집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