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점은 완벽이 아니라 상처다
분노는 심판이다 : 라벨링에 따라 분노가 올라온다
분노는 기대다 : 과잉 기대가 불러온 분노
분노는 자기 요구다 : 상대방을 향한 요구는 나에 대한 요구다
분노는 감정의 연결이다 : 내가 울적하면 너도 울적해야 해 :
분노는 두려움이다 : 걱정이 분노로 표출된다
분노는 사랑이다 : 헌신할수록 쉽게 분노한다 :
대만의 심리 상담사 충페이충의 <심리학이 분노에 답하다>는 분노에 대해 쓴 책이다. 분노라는 감정 하나로 책 한 권이 구성되어 있다.
당신은 분노할 자유가 있다.
분노할 자유란 분노를 생각하고, 분노를 억누르고,
분노를 분출하고, 분노를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분노는 무엇인가
나의 분노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타인의 분노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분노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처방이 존재하는 책의 주요 사례는 워킹맘인 경우가 많다. 힘들게 일하고 들어와서 남편 또는 아이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사례가 많이 나온다. 그래서 공감이 더 되는 책이었다. '4장 상대방을 향한 요구는 나에 대한 요구다'에는 '나쁜 엄마'라는 키워드의 단락이 있다. 인간의 감정에서 타인에 대한 요구는 가족 간의 관계에서 발생하기 쉽다. 공과 사의 구별에서 사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적인 나의 요구를 전가할 수 있는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이처럼.
100점 엄마는 아이의 가능성을 빼앗는다. 100점에서 40점이 부족한 '나쁜 엄마'가 되면 아이는 오히려 독립성이나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는 법, 타인에게 적응하는 법, 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엄마가 아이에게 너무 많은 사랑을 준다면 아이의 독립성을 뺴앗는다. 엄마가 아이에게 사랑을 적게 준다면 아이는 곤경에 처했을 때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을 주지 않은 이 40점은 '매우 적절한 좌절'이 될 수 있다. <심리학이 분노에 답하다> p 173
황금비율 1:0.618을 예로 들어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기준을 60%로 만든 것이 인상 깊다. 1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주지 않는다. 100점은 완벽히 아니라 상처라고 한다.
많은 엄마들이 100점이 되기 위해 애쓴다. '100점짜리 엄마'라는 굴레가 있다. 도달해야 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서도 100점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쩌면 도달할 수 없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60점이면 충분하다. 그럼 60점의 기준은 무엇일까? 채우지 못하는 40점은 엄마가 자기 요구를 아이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의미일까?
매슬로의 인간 욕구 5단계를 보면, 생리적 욕구로 시작해서, 안전, 소속의 욕구가 가장 기본적인 단계이다. 5개의 단계를 각 20%로 가정하면, 60점에 해당하는 욕구 달성은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고, 안전과 소속에 대한 욕구를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엄마가 해줘야 하는 것도 그 정도일까? 하위 3단계는 가장 기본이 되는 욕구들이므로 이것을 기준으로 충분하다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많은 평가에서 기본 점수를 40점으로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생리, 안전, 소속의 욕구를 해결하는 것을 40점 엄마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렇다면 아직 20점이 남아있다. 60점이면 충분하다고 평가할 남은 20점. 아이가 '존경과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에 대한 엄마의 역할이 아닐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작가가 이야기하듯이, 아이에게 남겨 놓아야 할 역할이 있다. 스스로 자아실현으로 나아가기 위한 자질을 만들도록 도우면 되는 것이다. 아이의 자아실현을 엄마가 하려는 것에서 상처가 생기게 될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배워야 하는 영역을 도전하게 하는 것이 엄마의 마지막 20점이다. 아이가 도전해야 하는 영역을 아이의 것으로 남겨 두는 것이 엄마로서 40점을 채우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다.
'대리 만족', '자기 투영' 등, 엄마가 또는 부모가 자신의 채우지 못한 욕구를 자식에게 대신 채우게 하려는 욕구를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욕구들은 '다 너를 위해서야!'라는 허울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과한 엄마가 되지 말자.
아이의 성장을 나의 성장과 동일시하지 말자.
아이의 독립적 영역을 지켜 주는 것으로 충분한 엄마이다.
60점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