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모 하게?

뭘 안 할까?

by 부키

우리 집에는 날을 받아 놓은 사람이 세 명 있습니다.



전역이 가시권에 들어온 작은 아들,

고등 졸업을 확정해 놓은 막내.

드디어, 고등학생 엄마에서 벗어나는 '저'입니다.



누가 가장 간절할까요?

"엄마야!"라고 차마 말을 못 하지요.



고3 생활, 대한민국에서 가장 치열한다고 인정해 주는 시기를 겪었을 테니까요.

군생활, 대한민국 남자들의 동결건조된 그 시기니까요.

하지만, 10년 정도의 아이들 입시와 고등생활 뒷바라지는 그들과 비교해도 가볍지 않다고 말하고 싶지요.



며칠 전, 군에 있는 작은 아이가 전화가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요. 동생의 입시 진행에 대해 묻더라고요. "아직 모르지. 어디든 가겠지. 원서도 많이 냈잖아. 너는 하나 내서 한 곳에 갔지만, 지금은 배수의 진을 쳐야 하니까, 일단 확률은 높여놨지. 엄마는 무조건 끝낼 거지."



그리고 이어서 이야기합니다.

"어쨌든 이번 달이 조금 힘들긴 한데, 이것만 지나면 물리적으로 할 건 별로 없어. 최종 발표 기다리며 마음 졸이는 일 밖에. 본인이 더 하겠지? 그래도 엄마도 엄청 기대된다."



수시만 지원하는 막내라 11월 한 달 동안 모든 입시 일정이 마무리되고, 12월부터는 결과만 기다리면 됩니다. 스케줄 정리를 몇 군데나 해 놓고, 일정을 해치우는 요즘인데요. 그러면서 다가오는 그날을 함께 기다립니다. 물론, 그다지 티를 내진 않지만요. 이렇게 물어봐 주니 속내를 드러낼 수밖에요.



"그럼 엄마는 모 하게?"


뜬금없이 물어오는 아들입니다.


"뭐 하냐고? 뭐 하긴, 너무 많지!"


"그니까요. 몇 년을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지내셨을 거 아냐. 그러니까 모 하게?"


"음.. 모르지만, 많겠지!"


적당한 리스트를 내놓지 못하고 다른 주제로 대화를 넘깁니다.





'뭐 할까?'



사실, 막연하게 생각은 합니다. 하지만, 그저 기대감을 가지고 시간을 버티는 용도이지요. 지금도 하고 싶은 일은 어지간하면 다 하고 살긴 하거든요. 고등 엄마라고 특별히 못하는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보면 글쎄요. 가장 아쉬운 것은 긴 여행을 가지 못한 것 정도. 입시가 끝나고 아이들이 외할머니를 모시고 하와이에 있는 이모에게 여행을 가면, 저는 그다음 아이의 방학을 챙기느라 집에 있었거든요. 다 끝내놓고 제대로 가야지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맛있는 것은 남겨 놓고 나중에 먹는 그런 아이들의 마음과 같았을까요. (그 사이에 이모가, 동생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맛있는 것은 먼저 먹어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낀다는 것을, 다시 새겼죠.)



그런데, '뭘 안 해도 되는지'에 생각이 머무니 이건 좀 됩니다.

더 이상 안 해도 되는 일이 있다는 것도, 하고 싶은 일만큼이나 반갑더라고요. 얼마나 지속해 왔는지 생각해 보면 남다른 꾸준함이 생겼겠다 실소가 나옵니다.



리스트를 적어 볼게요.



1. 대치동에 안 가도 됩니다.

고등 입시를 하면서부터 대치동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적당히 필요한 것만 다니자는 마음이었지만, 과연 끝까지 유지되었는지 조차 판단이 꺼려지는. 관성으로 다닌 시간이 있습니다. 운전 실력도 그 덕에 늘었지요. 하루의 대부분이 복잡한 도로를 요리조리 잘도 다니니까요. 대치동 주차도 중요한 요령입니다. 이젠 그런 요령들에 미련 없이 작별하고 싶네요.



2. 입시 팟캐스트를 안 들어도 됩니다.

습관처럼 10년을 들어왔어요. 운동하면서, 운전하면서,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공감하면서, 배우면서요. 늘 안테나를 그곳에 세우고 있어야 했기에, 저의 주의를 일깨우는 좋은 도구였습니다. 이젠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됩니다. 그 시간에 오디오 북으로 갈아탄 지 좀 되네요.



3. 학교 설명회에 안 가도 됩니다.

아이 셋의 학교 설명회에 참석하는 것이 일이었지요. 지역도 다양해서 하루를 온전히 내야 했습니다. 그 시기도 대부분 비슷해서 바빠했던 기억입니다. 녹음을 해서 반복해서 들은 경우도 꽤 됩니다. 학교 설명회뿐 아니라, 다양한 진학 설명회, 입시 설명회에 많이도 다녔네요. 처음에는 지인분들과 함께 갔지만, 언제부터인가 혼자 다녔어요. 일찍 가서, 맨 앞에 자리를 잡는 열혈 엄마였네요.



4. 자녀 교육서를 안 읽어도 됩니다.

물론, 여전히 유효한 주제이긴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녀 교육서는 유, 초등을 대상으로 하니까요. 이젠 보다 깊은 인간 탐구가 자녀 교육 아닐까요. 아무 튼요. 한 동안 대부분의 도서 리스트를 차지하던 그 주제가 빠지니 다채로운 독서가 가능합니다.



5. 서점, 학습서 코너에 안 가도 됩니다.

참새 방앗간처럼 들르던 곳이 중, 고 학습서 코너였어요. 무엇을 사겠다기보다는 그냥 구경이었지요. 그렇게 들고 온 책이 아이 책장이 아닌, 엄마의 책장에 있다는 아이러니. 엄마가 궁금해하는 책들이었습니다. 그곳에 안 간 지도 꽤 되었네요.



6. 책장을 더 안 사도 욉니다.

책장에 책을 이중으로 세우고, 앞 쪽에 쌓아 놓고, 책장이 비좁은 지 오래되었어요. "책장이 부족하네? 더 사야 하나?" 남편이 말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말이지요. "놉! 좀 기다려 봐요. 저기부터 저기까지 다 비워내도 되니까. 그럼 여유가 생겨!" 형이 보던 책, 혹시나 아우가 볼까 하여 버리지 못하고 쌓아 놓은 책이 얼마나 많겠어요. '이 수업 듣느라 지불한 돈이 얼마인데, 그냥 버리나?'라며 보든 안보든 갖고 간 유인물과 제본 한 교재 등, 말해 무엇입니다.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예전 과정의 책이 필요하다고 하니 당근에라도 내놓으면 누군가는 잘 쓰겠지요.



7. 고등학생의 매일 안부 묻는 것을 안 해도 됩니다.

카톡이든 전화든 일정 시간이 되면 안부를 물어요. 기숙사에 있으니, 그 정도로 대화의 시간을 갖습니다. 매일 하기 귀찮으니 주말에만?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말에만 띄엄띄엄하는 것이 대화는 더 어렵더라고요. 할 말이 없어요. 어차피 대학생이 되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는 명제를 철석같이 믿게 되니까요. 그럼에도 고등시기에, 집을 나가있는 시기에 부모와 대화하는 습관은 중요하다 생각해서 안부정도라도 묻곤 합니다. 정말 바쁜 날은 아이에게서 '오늘은 패스'라고 단문의 인사가 오거든요. 요즘은 저도 가끔 잊고 지내는지라, 안 해되 되는 시기가 와도 좋을 듯합니다. 여전히 궁금한 부모이긴 하지만요.



8. 방학 스케줄 짠다고 오지랖 떠는 것을 안 해도 됩니다.

어릴 때도 방학에는 집에 많이 있긴 했지만, 중, 고등에 와서도, 지나친 일정을 넣지는 않겠다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더 어려운 것이 선택의 문제입니다. 수학도 한 군데만 보내고 싶은데, 후보는 여러 곳이니까요. 그 결정을 위해 이렇게 저렇게 알아보고 점검하여 하나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다른 분들에게 공유도 하지요. 불안한 마음에 다 해야지 하는 분도 계시고요. 여건상, 혹은 엄마의 신념대로 적당히 적게 시키는 분도 계시니까요. 어떤 경우에라도 저는 나누길 좋아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지랖이었어요.



9. 방 청소 안 해주렵니다.

방학이라고 집에 와 있으면 방이 난리가 납니다. 기숙사에서도 이리 사는지 걱정되지만, '다 똑같다'는 아이 말에 한시적 포기를 합니다. "졸업만 하면 당장 네 몫으로 환원한다" 당부하며 방 청소를 해주는데요. 고등을 졸업하면 아이도 생활 습관을 다시 잘 들이는 방학을 보내게 하고 싶어요. 잠자리 정리, 방청소, 옷정리 등, 집 밖에 나가 사느라 미처 체득하지 못한 습관들입니다. 물론 잘하는 아들들이 훨씬 많지요. 이젠 안 해주려고요. (누가 끝까지 참아내나 인내심 테스트라는 것을 익히 겪어 알고 있지만요.)



10. 마음 맞지 않은 친구 엄마들 안 만나도 됩니다.

이것은... 할많하않입니다.

저도 누군가에는 그런 대상이겠지요.






"엄마, 모 하게?"



알아봐 주는 아이의 질문에 고맙긴 했어요.

천천히 생각해 보려고요. 물론, 몇 가지 플랜은 이미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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