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밀키트

점점 늘어나잖아

by 부키

일요일 아침이면 분주하게 준비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숙사에 보낼 일용할 양식을 준비하는 거예요. 대학원 기숙사에 있는 큰 아이는 금요일 밤에 집에 옵니다. 학부 때는 주말이라고 집에 오지는 않았는데요. 연구실 생활을 하더니 매우 규칙적인 쳇바퀴를 도는 듯합니다.



금요일에 집에 와서, 아르바이트로 하고, 약속도 잡아서 나갔다 오고요. 그보다는 늦잠을 자는 것이 제일 우선인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래도 룸메이트가 있는 방이기도 하고, 연구실 출퇴근이 자유롭다 해도 정해진 일상을 보내자니 아직은 긴장이 되겠지요. 그렇게 부족한 잠을 채우고, 먹고 싶은 것들을 잘 먹고, 쉬다가 일요일 오후에 들어가는데요. 그럴 때 챙겨가는 것이 있습니다.



일주일치, 정확하게 평일 5일 먹을 아침입니다.

고구마, 닭가슴살, 몇 가지 채소, 그리고 과일, 오늘이 가장 가짓수가 많아졌어요. 별 것 없는 날은, 그러니까 엄마가 미처 준비해 놓지 못한 날은 이 중에서 두 가지 정도만 가져갑니다. 고구마와 닭가슴살이에요. 그 외 재료는 마침 집에 있으면 가져가고요. 아니면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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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선물로 들어온 샤인머스켓을 가져가더니, 냉동에 얼려서 매일 몇 개씩 꺼내먹으면 아이스크림 같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안 보낼 수가 있나요. 집에 남아있던 것을 모두 털어 보냅니다. 신선한 채소를 먹을 일이 없어서 아쉽다고 하니, 마침, 냉장고에 있던 것을 손질해서 담아줍니다.



고구마는 찌고요. 닭가슴살은 당연히, '에프'의 도움을 받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딱딱해지는 것이 아쉽지만, 없는 것보다 훨씬 나으니까요. 매일 통학을 한다면, 조리해서 싸주는 도시락이 가능하겠지만, 이렇게 일주일 분량을 준비하자니, 상하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니 딱, 이 정도의 조리만으로 준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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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져가면, 언제 먹어? 기숙사에서?"

"아니요. 연구실에 있는 휴게실 냉장고에 넣어두고 아침에 먹어요. 기숙사 룸메는 내가 나갈 때 거의 자고 있어서 방해될까 봐..."

"그럼, 연구실 다른 분들은? 다들 이렇게 아침을 먹는 분위기야?"

"아니지. 대부분 아침은 안 먹는 것 같아요."

"그래? 처음에는 먹다가 안 먹게 되기도 하겠지."

"그런 것 같더라고. 근데 나는 아침 꼭 먹어야 해서..."



어릴 때부터 먹는 것을 참 좋아했던 아이라, 그러려니 하며 준비해요. 그러다가 다시 물어봅니다.

"그러면, 소분해서 매일 먹을 것으로 나눠 넣어줄까? 작은 그릇에? 그게 더 편하지 않냐?"

"아니요. 그 그릇들 다 씻어야 하잖아요."

어디에 덜어먹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엄마 마음에 드는 답이 나오지 않으리라 쉽게 짐작이 갔거든요.



그리고 일주일치의 양식을 이고 지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또 버스를 타며 학교에 갔습니다. 20대 초반 남학생이라면 대부분 귀찮아할 것 같은데요. 그냥 적당히 사 먹던가, 안 먹던가요. 그렇지만, 이렇게 챙겨서 먹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고 하더라고요.



황지영 교수님의 책 <잘파가 온다>를 읽다 보면, 이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불안감인 것 같았어요. 잘파는 Z세대와 알파 세대를 합쳐 부르는 말이라 합니다. Zalpha가 되겠네요. MZ 세대에서 Zalpha 세대로 새로운 소비의 주도권이 넘어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데요. 세대의 특징에 의외인 면이 많았습니다. 오장육부 외에 디지털 기기를 또 다른 장기로 갖고 태어난 듯한 잘파세대지만, 의외로 '연결된 감각'을 중요시하고요. '진정성'도 많이 찾는다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본능적 반응'이 나오는 것 같았어요.



보다 편리하고 간편한 문화를 선호하고, 특정 소비에 충성하지 않으며, 관계를 규정짓고 싶어 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합니다. 우리 집에도 잘파 3인이 있어요. 동의가 되는 면도 있고, 아직 판단이 안 서는 면도 있습니다. 물가가 오르고, 학교 구내식당이라 해도 한 끼를 해결하는 데는 적잖은 비용이 들어가요. 요즘 대학 내에는 천 원의 행복이라는 천 원 식사가 있는 곳이 많아요. 혹자는 천 원에 그 정도 먹는 것이 너무 훌륭하다 이야기하지만, 막상 그 세대는 천 원이라 해도 먹고 싶지 않다는 말도 많이 한답니다. 그마저도 학부생이나 유학생들이 많이 이용해서 대학원생들은 이용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게 아낀 식사비를 한 번에 다 쓰는 것도 이해가 안 가긴 합니다. 일인당 식대가 수만 원 나오는 곳에 젊은 친구들도 흔하게 보입니다. 극단적인 소비의 양상을 보이는 것이 잘파의 특징입니다. 저렴한 물건이라 해도 사용에 문제가 없으면 기꺼이 가장 저렴한 것을 택합니다. 하지만, 취향의 문제, 혹은 과소비도 나름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과감히 비용을 지불합니다.





내년이면 우리 집 잘파 3인이 모두 대학생이 됩니다.

최대한 협조를 해 줄 생각입니다.

아니, 각오입니다.

저 밀키트를 세배로 준비해야 하더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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