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긴... 그냥 산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얼추 30년이 돼 가고 있어요. 그때 친했던 친구들과 지금도 연락을 하는 친구도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연락이 끊긴 친구도 많지요. 특히 여자의 경우에는 결혼을 일찍 했다던가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연락이 된 친구가 있어요. 아주 친했던, 졸업 후 가장 먼저, 혹은 두 번 째로 '시집을 간' 친구입니다.
"목소리가 그대로네!"
"하나도 안 변한 것 같은데?"
"어디 살아? 어떻게 지내?"
무척. 친했던 친구라 해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연락을 하면, 사실, 할 말이 없습니다. 어제 만난 사람이 수다는 더 길게 가는 법이니까요. 다른 친구들의 근황을 묻기도 하고요. 유명 인사가 된 친구의 근황도 신기하게 들었습니다.
"그랬구나. 잘 된 거지!"
"연락처를 모르겠더라고, 궁금한데..."
그때의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분명, 지금 아주 잘 살아야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반대로 혹시나 삶이 힘들어졌을까 걱정스러운 친구도 있어요. 그리고, 지금은 물론 그 예상대로 살고 있지는 않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어쩌다가... 아니, 왜?"
"오! 그래? 정말 다행이다!"
시간이 이렇게 흘렀으니 만감이 교차하는 그런 시간이 되었어요.
"그래서 너는 어떻게 지내는 거야? 아직 학교에 있지?"
"학교 안 나간 지 좀 됐는데..."
"그럼 지금 뭐 하냐?"
"그냥 살아, 애들 키우면서, 소소하게"
"가방 끈 긴 애가 뭐 하냐?"
결혼을 일찍 한 친구는 아이들도 진즉 다 키우고, 지금은 유명한 학군지에서 성공적으로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해요. 이번에 2호점을 오픈하느라 정신이 없다고요. 근데, 정말 잘할 것 같았습니다.
"바쁘게 잘 사네! 능력자였네!"
오랜만에 통화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친구의 성품을 느끼면서 감사하기도 민망하기도 했어요. 서로 좋은 덕담을 나누며 통화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친구가 너무 바빠 보였거든요. 그리고 제 머릿속에는 장기하의 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https://youtu.be/CfXVsHNETq0?si=exMRh9ViDP7E4tf3
시점의 차이라고 생각했어요.
누구는 일찍 결혼하여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고 이제 어엿한 자영업자가 되어 바쁘게 살고 있고,
누구는 시작한 공부를 계속하고, 그에 맞는 커리어로 살다가, 이제 좀 쉬면서 살고 있고,
적당히 버무려 평균을 내면 모두 비슷합니다.
누구에게나 화양연화의 시절이 있고, 그때를 그리워하지만, 다시 가고 싶지는 않은,
앞으로 오는 시간에 대해 조금 다르게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도 역시.
'가방 끈 긴 애가 뭐 하냐고? 나는 여전히 공부하며 살고 있어.'
이렇게 말하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긴 합니다.
역시 소심하네요.
얼마 전에 읽은 책 중에 <일상 인문학 습관>이 있습니다. 숭례문 학당의 리더 19인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에요. 그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분들이 자신의 업을 정리하거나, 혹은 이제 시작하는 것으로 인문학 공부를 택하신 분들입니다. 거창하게 인문학을 인문학도처럼 '수행'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읽고 쓰는 생활을 영위하는 분들입니다. 그 이전에는 전혀 다른 일들을 하셨음이 분명한 면면이 보입니다.
"이제 다른 가방을 들어보려고!"
이렇게 이야기해 줄걸 그랬습니다.
굳이 가방 끈이 길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