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칼 Nov 27. 2023

노포의 반가움

변화를 의도하지 않기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요즘 많이 만나게 되는 문장입니다. 한 해가 마무리 되어가고, 새로운 일 년을 맞이해야 하는 시점에서 급속도로 변하는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가 된 것 같은 요즘이니까요.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강조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같은 강물에 발을 담글 수 없고, 강물을 잡아 두어, 변하지 않는다 해도, 그 강물에 발을 담그기 위해 내가 움직인 시간만큼 나는 변해있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변하지 않는 것은 없어요. 


하지만, 그 변화를 매우 느리게 보여주는 것도 있습니다. 어쩌면 상대적 속도의 입장에서 보면 거의 변하지 않은 것 같은 그런 대상이 있어요. 그중에 하나가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노포일 거예요. 




처음 방문한 지역에서 식당을 찾는 것이 쉽지 않지요. 우선 검색을 하게 됩니다. 어떤 식당이 있을까 대충이라도 보게 돼요. 후기나 평가를 무시할 수 없지만, 백 프로 신뢰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큰 기대 없이 들어가게 되는데요. 마침 그렇게 서성이다 오래된, 오래 있어왔던 것 같은 그런 곳을 찾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곳의 상호 때문이었어요. 바로 '물곰'이라는 것입니다.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른 것 같아요. 저도 알지 못했던 생선인데요. '곰치'라고도 합니다. 강원도에 가면 '곰치국'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경상도에서는 '물곰'이라고 하고요. 정말 흔하고, 값이 싼 생선이었는데, 요즘에는 '시가'라고 적혀있는 어종입니다. 우리나라 수산 자원의 변화는 익히 알고 있지만 가끔 이렇게 터무니 없어진 가격이나 수급은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데 먹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강릉에 가서 '곰치국' 메뉴를 보고 들어가면, '요즘 잡히지 않아서 없다'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몇 번을 허탕을 친 기억이 있습니다. 어릴 때, 흔하게 먹은 그 맛을 그리워하는 남편 덕에 알게 된 이 음식을, 요즘에는 정말 먹어보기 쉽지 않았거든요. 그러니, 상호만 보고도 들어갈 수밖에요. 조금 허름하고, 어딘지 세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하지만, 오랜 시간 버틴 내공은 백만 점쯤 될 것 같은 그런 외관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귀한 '물곰탕'을 먹었어요. 


사실 물곰 자체는 그리 많이 들어가 있지 않아요. 정말 귀해졌나 봅니다. 하지만, 맛있게 잘 먹었어요. 노인분들이 하신 음식이었습니다. 식당에 계시는 모든 직원들이 70세 이상 되어 보이는 분들이었어요. 서로 사장님이라고 부르시는 몇 분과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들 포함 모두 오랜 시간 이곳에서 음식을 하신 분들이었습니다. 


홀에서 손님을 상대하시는 분들은 곱게 화장을 하시고, 일을 하셨어요.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우리가 흔히 보는 할머님들이셨습니다. 조리를 편하게 하기 위한 도구도 없고요. 모두 손으로 다듬으며 만들고 계셨어요. 


손맛이 주는 것이 참으로 귀해졌습니다. 

'요즘 누가 그렇게 음식 하냐'고 할 수도 있어요. 저부터 일단 편하고 효율적으로 준비하자는 주의거든요.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손 맛을 지키고 계신 분들이 감사했습니다. 


세상이 변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 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상뿐인가요? 생각하는 방법과 기준, 가치를 측정하는 것 등, 모든 유, 무형의 것들이 변합니다. 단순히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은 아닐 거예요. 시간의 변화를 앞 서 가장 가치 있는 변화는 '나의 변화'라고 합니다.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나'에 대한 평가가 매우 인색한 요즘이에요. 모두 변화하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있어요. 외관이 조금 허름하고 세련되지 못해도요. 누렇게 바랜 벽에 빛바랜 사진들이 걸려 있어도요. 본질을 지키는 마음, 본질을 유지하는 태도는 언제나 귀하고 가치가 있습니다.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거야."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한다고 하실 수도 있어요. 굳이 변하려고 의도하지 않았을 뿐이라고요. 그래서 지켜진 것들이 너무도 소중한 것들이었습니다. 영원하진 않겠지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