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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 May 09. 2024

토지의 능선을 완성하며

5월 연휴의 고마움

작년에 알라딘 북펀드로 '토지 20권 세트'를 들였습니다. 후원자 리스트에 이름까지 올리면서요. 가지고 있으면 읽을 것 같은 책이었죠. 언젠가는 꼭 읽고 싶은 책이었어요. 


'태백산맥', '아리랑'은 아주 오래전에 읽고 책도 처분했는데, 토지는 어떤 이유에선지 읽지 않았더라고요. TV 드라마로 방영되었지만, 챙겨보지도 않았고요. 다만, '최서희'로 나왔던 배우가 안채에 서있던 장면이 기억나요. 그 배우는 요즘 활동은 안 하는 것 같네요. 


조정래 작가님과 같은 남자 작가의 대하소설은 선이 굵고 드라마틱한 것이 요동치는 정도가 더 큽니다. 토지는 박경리 작가님의 스타일대로 좀 더 여성스러움이 있어요. 다시 말해, 토지의 능선은 그리 가파르진 않아요. 구한말, 근현대사가 요동이 적을 리 만무하지만, 중심에 있던 인물이 여성이라 그럴까요. 시대적으로 여성의 활동과 비중이 많이 억압되어 있었던 이유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용감하게 책을 들였지만, 바로 읽을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잘 모셔두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토지를 읽는 모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작년 9월부터 함께 읽기 시작했고, 올해 4월 말까지 완독 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토지를 함께 읽는 모임은 '토지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것도 있고요. 개인적인 모임으로도 많이 이루어집니다. 출판사의 협찬을 받는 분들이 몇 분 계셨어요. 도서 협찬을 받으면 읽어야 하는 마감기한이 정해지기에, 억지로라도 진도가 나가게 됩니다. 책을 이미 보유한 저는 그런 의미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어요. 그래서, 조금 게을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하소설은 너무 재밌거든요. 한 번 손에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됩니다. 다른 책을 읽지 못하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자꾸만 미뤄두었습니다. '이것까지만 다 하고, 토지에 빠져봐야지!' 하지만, '이것까지'가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뒤쳐지게 되었어요. 


물론 20권 전권이 흥미진진은 아닙니다. 시대적 설명이나 당시의 사상에 대한 설명, 인물들의 배경 등을 대화체로, 혹은 설명의 형식을 빌려 매우 상세하게 담고 있어요. 해박한 배경 지식에 감탄하면서도 읽어내는 것이 마냥 재밌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고비가 옵니다. 능선에서 오르막길이지요. 


하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것처럼, 강약이 조절되면서 단숨에 읽어지는 부분도 있어요. 그야말로 능선을 오르내리며 읽게 돼요. 하지만, 태백산맥처럼 험하거나 경사가 급하지 않기에 무리 없이 완주할 수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시간이었어요. 


다행히도 5월 연휴기간 동안 우리 집에는 어린이가 없었습니다. 

며칠을 작정하고 토지에만 시간을 쏟았어요. 독서모임의 4월 활동이 마무리되고 5월은 아직 시작 전이었으니까요. 무엇보다 토지 모임을 이끌고 계시는 대장님의 간청도 한몫하였습니다. 열심히 읽었어요. 물론 재미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거예요. 


어떠한 미물의 목숨이라도 날아 남는다는 것은 아프다. 끝없는 환란의 고개를 넘고 또 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어떠한 역경을 겪더라도 생명은 아름다운 것이며 삶만큼 진실한 것은 없다. 비극과 희극, 행과 불행, 죽음과 탄생, 만남과 이별, 아름다움과 추악한 것, 환희와 비애, 희망과 절망, 요행과 불운, 그러한 모든 모순을 수용하고 껴안으며 사는 삶은 아름답다.  1994년, 토지 완결 후, 박경리, <문학과 사회, 겨울호>


<토지>를 쓴 연유를 알겠구나. 마음속으로 울부짖으며 나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 전신이 떨렸다. 30년이 지난 뒤에 작품의 현장에서 나는 비로소 <토지>를 실감했다. 서러움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삶을 잇는 서러움이었다. 2001.12.3 박경리


토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서러움'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민족이 겪게 되는 서러움, 그 아래에 개인으로 존재하는 각자의 서러움, 그 서러움을 안고 삶을 일구고,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정말 감동적입니다. 



1부 (1~4권) :1987년~1908년. 10년간의 하동 평사리

2부 (5~8권) : 1910년부터 7~8년간, 간도 정착기

3부 (9~12권) : 1919년~1929년, 1920년대 서울, 진주, 만주

4부 (13~15권) : 1929년~1939년, 1930년대 일제의 억압과 혼란의 상황

5부 (16~20권) : 1940년~1945년,  일본 패망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어요. 3부까지 읽는데 7개월이 넘게 걸렸어요. 하지만, 4,5부를 읽는 데는 두 달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오직 한 문장을 보기 위해 달렸기 때문입니다.


"만세! 우리나라 만세! 아아 독립 만세! 사람들아! 만세다!"



글 속에 얽혀있던 모든 사건이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하고 마무리된 느낌도 있어요. 하지만 이해도 갑니다. 아마 그 모든 것을 결말 지으려면 또 다른 <토지>가 필요했을 거예요. 시대적으로도 급변하고 있었기에, 다음 이야기는 독자의 몫으로 남긴 것이라 생각합니다. 


빌 게이츠와 같은 저명인사들도 휴가 기간에 책을 읽는다지요. 우리도 그리하면 좋겠어요. 정말 휴가다운 휴가를 보낼 수 있으니까요. 휴가 같았던 5월 연휴, 덕분에 저는 이제 토지를 책장 깊숙한 곳으로 치우게 되었어요. 참으로 감사한 시간과, 감사한 토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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