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아.아가 제격이지만.
주말에 아이들이 집에 오면 아침에 가.끔. 커피 배달을 해준다.
"엄마는 무슨 커피?"
건성으로 묻는 뒤통수에 여지없이 같은 답을 하기 일쑤다. "그냥 아메리카노, 뜨.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두 번 묻지도 않고 현관문을 나선다. 집에도 커피가 있는데 왜 굳이 밖에서 돈을 내고 사 오냐며 한마디. 안 한다. 밖에서 사 오는 이유가 매우 명백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는 얼음이 없다.
흔한 냉온 정수기도 없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얼. 죽. 아니까.
날이 더워지면서 얼음을 쓸 일이 있지만, 없다고 특히 불편하지는 않다. 찬물은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으로 대체한다. 평소에도 우리 집 남자들은 찬 물을 선호하고, 나는 굳이 냉수를 찾지는 않으니. 여름에만 찬 물을 준비한다. 가끔 생수에 허브차를 넣어 차갑게 준비하는 것이 우리 집 여름 음료의 전부다.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먹는 사람이 진짜 커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여름에 얼음이 많이 들어간 커피를 먹는 것이 커피를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더 무리다. 아마도 얼음을 먹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한 여름,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생각해 보자. 적당히 여유를 찾고 '굳이' 뜨거운 커피를 준비하는 것은, 이제 더위는 조금 가셨고, 한숨 돌릴 수 있다는 의미 아닐까? 더운 열기에서 벗어나 내 몸을 더욱 차갑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뜨거운 커피가 제격이다.
그래도 가끔 아.아를 찾을 때가 있다.
주말 아침에 텃밭에 갈 때, 집 앞 카페에서 2500 원하는 넉넉한 용량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준비한다. 커피라기보다는 노동을 위한 음료이다. 노동주까지는 아니지만, 야외에서 더위와 시간을 지내기 위해서는 이만한 것도 없다. 그러니 아아를 좋아한다고 할 수 없다. 정말 필요에 의한 준비물이니까. 같은 목적으로 남편은 얼음이 잔뜩 들어간 미숫가루를 준비한다. 달달하고 고소한 그 맛은 일한 뒤 보상으로 충분하다.
어제도 아.아를 찾았다.
아직 6월인데도, 한낮의 기온은 30도를 훌쩍 넘는다. 그나마 해를 피해 그늘에 들어가면 조금 수월하다. 나무 그늘과 건물이 주는 그늘을 찾아 걷다가, 이제는 해를 피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선물 받은 커피 쿠폰과 마침 그 쿠폰을 사용할 수 있는 매장을 보았으니, 들어가서 아.아를 주문했다. 이 뜨거운 날씨에 더 뜨거운 커피를 들고 나오기는 너무 용감하다. 뜨거움을 피하기 위해 얼음이 필요했으니, 아.아가 적당하다.
'커피를 즐겨 마신다'는 의미는 '아.아를 좋아해요'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커피의 맛과 향을 느끼기 전에, 차가움이 다른 감각을 둔하게 만들 테니, 그러한 감각들의 느낌을 포기한다는 것 아닐까. '커피를 뜨거운 물로 추출하여 마시는 것'을 '커피 즐기기'로 여기니. 일단은 뜨.아가 커피 마시기의 디폴트이다. 그럼에도 아.아의 맛은 또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가끔은 아.아를 마셔야겠다. 뜨거운 곳에서 커피를 마셔야 한다면.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가.
뜨.아도 아.아도 모두 제 역할이 명확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