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밭 만들기
매년 봄이 되면 고민하는 것이 있다. 올해에도 '텃밭'을 하느냐이다.
"사용료 내고, 이런저런 비용에, 시간에, 노력에, 다 합치면 차라리 사 먹는 게 저렴하겠다."
같은 고민을 반복하면서도 텃밭 농사를 짓는 것이다. 물론 농사는 남편의 몫이다. 언제나.
"그래도 맛이 다른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남편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맛만 다른 것이 아니다. 신선도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난다. 일주일 이상을 보관해도 전혀 상하지 않는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좋아한다. 텃밭의 수확물은 나누어 먹을 만큼 넉넉하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텃밭을 만들지 않았다. 입시생 부모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땅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텃밭으로 사용하던 토지에 건물이 들어오고, 각종 개발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개인 소유의 땅을 주말 농장으로 운영하던 곳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시기를 놓치니, 시작을 할 수가 없다. 파종 시기가 있고, 작물마다 모종을 심는 시기도 있다. 적당한 생육 조건이 갖춰져야 하기에 내 맘대로 심고 거둘 수가 없다. 그래서 포기하고, 집 발코니 작은 화분에 씨를 심거나 모종 몇 개를 심었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작년에는, 올 초까지 너무 비쌌다. 상추도, 깻잎도, 고추도,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야채는 대부분.
"아무래도 올해는 텃밭을 다시 해야겠다."
평소 텃밭에 그리 관심을 두거나, 달가워하지 않는 나의 선언에 남편은 반색을 했고, 아이들은 무관심이다. 문제는 어디서 하느냐, 어디에서 할 수 있는가! 3월에 지자체에서 분양하는 텃밭에 신청해 보기로 하고, 안되면 개인들이 운영하는 텃밭을 수소문하기로 했다. 온 식구가 자격이 되는 모든 곳에 지원을 했고, 마침, 큰 아이가 지원한 곳에 선정이 되었다. 집에서 한 시간이나 떨어져 있는 곳에. 너무 감사하지!
분양을 받고 등록을 하는 날, 아직 쌀쌀한 3월 말에 모종을 심었다. '설마 얼지 않겠지, 얼면 할 수 없고'라는 마음으로, 내심 이러한 밭작물들이 얼마나 강한지 믿는 구석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매우 잘 크고 있다. 그리고 4월에는 씨앗을 뿌렸다. 3평이 채 안 되는 땅에 욕심내지 말고 쌈채만 심자던 마음이 점점 부풀어 오른 것이다. 이왕이면, 이왕이면, 그래서 욕심껏 파종을 했는데.
발 디딜 틈 없이, 상추가 자라고 있다.
아까워서 솎아내지 못하고 방치했더니, 그야말로 상추밭이다. 어떤 품종인지도 모르고, 상추 모둠 씨앗을 뿌린 결과이다. 온갖 종류의 상추가 지천이다. '상추 솎아주라'는 이웃 밭 할머니의 당부, 아는데 안 하는 거예요. 아까워서 못하는 거예요.
제대로 솎아주지 않으면 버리게 되는 것이 많다. 사이사이 들춰내면 시들어 있거나 채 자라지 못한 것들이 많다. 아까워말고 틈을 벌리고, 미리 자리를 잡도록 했어야 했다. 나중에 제거하는 것이 더 많은 품이 든다. 그냥 잘 솎아 낼걸, 남편과 함께 하는 후회. 농사 잘 짓는 사람이 왜 그랬냐고 핀잔을 주는데, 돌아오는 말은 나의 마음과 같다. '아까워서'
유독 주말마다 비가 오는 날씨가 이어져서 농사를 짓기에는 수월했다. 주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은 비가 왔다는 뜻이다. 물과 바람, 햇빛만 있으면 된다고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내 마음대로 만들어 내지 못한다. 일주일에 하루 시간을 내는 것도, 비가 와 주는 것, 햇빛 좋은 날씨가 많은 것, 적당한 바람이 불어 주는 것, 올봄은 최적의 조건이었다. 16년 만의 5월 날씨였다고 한다.
남의 밭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젊은 분들이 아이들과 함께 짓는 밭에는 꽃도 심어져 있다. 팻말도 예쁘게 꾸미고, 수확의 기쁨이 큰 (방울토마토 같은) 작물도 많이 보인다. 분양을 받고도 짓지 않는 밭이 더러 있다. 그러한 곳은 다른 분들이 나중에 들어오신다. 대기하고 있던 지원자들일 것이다. 시가가 늦어지면 심을 수 있는 것에 제한이 있지만, 없지는 않다. 뭐든 심을 수 있다면야.
이제 곧 장마가 시작된다. 그전에 밭을 한 번 정리해야 한다. 대가 올라온 것들을 뽑아내고, 상추밭이 된 부분도 정리해야 한다. 장마가 지나면 무르거나 병충해가 생기기 쉽다. 장마가 끝나면 다른 모종을 심게 된다. 가을 상추라고, 보약보다 영양이 많다는 그것이다. 여름 상추도 있다고 한다.
아직 남편과 합의하지 못한 것이 있다. 배추를 심는 문제이다. 배추까지는 너무 무리라고 주장하는 나, 그래도 배추를 심어야 텃밭 농사가 완성된다는 남편,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모종을 얼른 찾아야 한다. 배추 심기 전에 말이다.
아무튼,
올해 텃밭 농사를 짓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주말마다 그곳에 가는 것을 즐겨서 더 다행이다.
흙과 지내는 시간의 여유를 알게 되어 감사하기도 하고.
이번 주말에 다시 비소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