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아들 세 명이 모두 자취에 돌입했다.
기숙사에 있던 작은 아들의 요청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는데.
“엄마, 여름이 지나면 벌레가 나올 것 같아요.”
“벌레? 왜? 쓰레기 안 치워서?”
“나 혼자 치우는데…“
“같이 안 치우고? “
“다들 너무 바빠서… 치우자고 이야기할 수도 없어요. 이해가 가거든.”
룸메이트들은 4학년 졸업을 준비하거나, 창업을 준비하는 상황이라 쓰레기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란다.
그러니 의리로 남아서 청소를 하란 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청년도 4학년이 되고, 혼자만 깔끔했던 탓이니.
“그래?… 뭐 졸업 전에 자취해보는 것도 경험이니까.”
전교생이 기숙사에 입소할 수 있는 학교라 근처에 자취방이 많지는 않다.
그나마 컨디션이 괜찮은 곳은 실시간으로 계약이 이루어졌다. 비 오는 토요일 오후 몇 곳을 둘러보고 바로 계약을 했다.
“기본적인 것들은 다 있으니, 주방에서 쓸 그릇 정도 챙겨줄게. 그냥 엄마가 쓰던 거 줘도 되겠지?”
보통 주부들은 새로 장만하여 아껴 둔 그릇들이 있다. 많고 적음을 떠나 언젠가 써야지 하며 한쪽에 잘 모셔둔 그릇들.
그리고 나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새 그릇을 합리적인 이유로 꺼낼 기회.
쓰지 않지만 버리기는 아까워 정리해 놓은 주방용품을 꺼낸다.
국자, 뒤집개, 냄비 받침, 소소하게 챙기려 했지만, 서랍을 비우는 기쁨에 부피가 자꾸 커진다.
‘안 버리길 잘했네.’
작은 냄비도 챙긴다. 라면이라도 끓이려면 있어야 하니까.
“엄마, 그래도 찌개 같은 거 끓여서 보관하려면 이보다 커야 하지 않나?”
‘그런 건 어떻게 알아가지고.‘
“그런가? 조금 큰 것도 줄게. 근데 뚜껑이 없네? 뚜껑만 하나 사던가.”
첫째가 대학 1학년, 자취를 시작할 때는 좋고 예쁜 그릇과 주방 용품들을 준비했더랬다.
근데 다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 작고 예쁜 것들은 지금 내가 쓰고 있으니. 그중 몇 개를 골라 작은 아이에게 내어준다.
“내가 너무 했나? 딸이면 새것으로 사주나?” 지인에게 이야기했더니,
“무슨 소리야? 딸들은 직접 사지~”
아들에게 살림을 내어주는 것은 엄마의 손길을 보내는 것이라 이야기하고…. 싶지만.
솔직히 그건 아니라고… 여기에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찌개를 끓였다고 사진을 보내온다. 제법이다.
엄마도 안 쓰는 **컬리에서 새벽배송을 받는다고 한다. 그럴듯한 샐러드를 만들었다.
며칠 후, ‘찌개를 끓여놓고 저녁에 들어오니 상한 것 같아서 다 버렸다 ‘는 소식을 전해온다.
물론 뒤늦게 어쩌다 들려준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전해 줄 녀석이 아니다.
“아침저녁으로 끓이던가, 아님 냉장고에 보관하던가.”
수년차의 자취생 큰 아이는 집에서 밥을 안 먹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고 한다. 밥은 학교 식당에서 먹을 거라고.
이제 2년 차인 막내는 ‘1인 가구를 위한 배달앱’에서 7900원 식사를 열심히 주문 중이다.
그 쓰레기를 어떻게 치우는지… 안 보고 싶다.
세 녀석 모두 자취생이 배워야 하는 삶의 지혜가 얼마나 많은지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 끝이 엄마에 대한 감사로 닿기를 바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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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리겠지?
엄마들도 잘 알고 있다.
우리 각자 잘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