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셋과 늙어가는 아들 한 명
“00이랑 책 얘기 하는 날이 오다니. ㅎㄷㄷ”
“앞으로 일상이 될 수도 있어.”
지난 주말 막내와 카톡을 주고받으며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너까지 영업당했구나! 환영한다. 북월드로!‘
아이들이 어릴 때는 열심히 책을 읽어주고, 만나게 해 주고, 등등등.
너무도 흔하고 절실한 엄마들의 독서 교육 무용담은 우리 집에도 있었다.
아직도 거실 책장의 아래칸에는 네버랜드 클래식이 전집으로 ‘전시’되어 있다.
몇몇 권을 제외하면 아마 새책일 것이다. 사람의 손길이 표지에만 머무른.
그때의 미련으로 계속 소장하리라. 다짐은 엄마의 몫이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여유가 생기면 ‘독서‘를 할 것이라 기대했다.
중, 고등 시절 필독서와 과제 독서에서 벗어나 ’ 나의 선택’에 의한 독서.
게다가 도서관의 책은 얼마나 많은가.
대출과 예약은 얼마나 여유로운지.
그곳의 여유로움에 일조하고 있음을 나중에 깨달았지만.
시작은 역시 큰 아들.
아마도 ‘있어빌러티‘의 끝판왕이 책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 같다.
엄청난 독서가를 친구로 둔 행운도 있었다.
엄마의 책장을 어슬렁 대며, 한 권, 두 권 빼 읽더니, 이젠 학교와 집을 오가는 중간 지점의 알라딘 중고서점이 방앗간이 되었단다. 읽을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것임을 깨달은 아들은 자신의 책장을 완성하고 있다.
이젠 머리 식히고, 생각의 전환을 위해 책을 읽노라고.
“엄마, 다음에 오시게 되면, <경애의 마음>하고 <면도날> 빌려주세요.“
일부러라도 들고 자취방을 방문하려 한다.
“우리 집에 <모순> 있나?”
“있지! 여기!”
“그럼 <돈의 속성>은?”
“그것도 있지!”
“어떻게 다 있어요?”
책을 읽고 기록하는 재미를 붙인 작은 아들은 책을 천천히 곱씹어 읽는 눈치다.
노션에 정리하며 읽는 모습이 이렇게 대견할 수가.
생기부의 빈약한 독서 목록이 내심 걱정이었는데, 그런 아들이 즐겨 찾아보는 책은 감성 충만한 소설과 에세이였다. 문장들을 수집하고 생각을 담는 과정이 재밌다며 집중한다. 분야를 넓혀보라는 엄마의 말을 귓바퀴에서 걸러내더니, 창업한 선배가 추천한 ‘경제 분야‘ 책은 읽으려 한다. 한 줄에서도 생각의 전환을 가져 올 진지함이 있는지라 그 아이의 독서록이 궁금하지만. 알 길이 없다. 여전히 쓰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비 오니까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소설책 읽으려고요.” 최종 버전이니… 믿어야지.
8월 연휴에 집에 온 막내는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놓는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샀다며 읽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집에 있는데…” 있는 책을 또 산 것에 엄마는 내심 안타깝다.
“미리 물어보지… 또 산거면 아깝잖아. 다른 책 살 수도 있고.”
“그 책은 엄마 것. 이건 내 것. 똑같지 않은데?”
내 책을 갖기 시작한 막내의 일침이다.
“나도 엄마처럼 독서노트 쓰려고 노트도 샀지. 근데 노트 비싸네?”
맞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문구에도 점점 마음이 간다. 독서템을 알아가는 것도 새로운 재미다.
“우리 집에 독서템 많은 것 알지? 사기 전에 얘기해라~ 있으면 줄게.”
막내가 책을 읽는다는 데 아낌없이 지원하고 싶다. 나의 애정템도 줄 각오를 하면서.
유독 까다롭고, 자신의 생각이 확고한 막내는 스스로 납득하지 않으면 실행하지 않는다.
실행의 동기도 내적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듯하다. 외부 자극도 잘 수용하길 바라는데 쉽지 않다.
그럴 때 가장 좋은 것이 책이다. 간접적 경험과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배울 수 있으니.
자신의 스타일대로 작가를 따라가는 모양이다. 최근에 동일 작가(이 도우 작가)의 다른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 병렬 독서 중이야.”
“겨우 두 권으로 병렬? 엄만 최소 세 권을 병렬. 많이 줄인 거야.”
병렬독서 지존들의 영상을 공유해 주며 ‘도서 장바구니’를 채우고 싶은 욕망을 느껴보길 바란다.
모자지간의 책 이야기가 집 안에 돌아다니니.
또 다른 우리 집 남자도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뭐랄까…FOMO의 위기감?
“집에서 쓸 독서용 안경을 하나 더 맞춰야겠어.”
그래서 주말에 하나 더 준비해 주었다.
이제 나는 우리 집 ‘책 공급자‘가 되기로 했다.
책장을 정리하고, 책 권하는 사람으로.
가족이 함께 하는 소재가 책이라니. 얼마나 복된 일인가!
엄마의 과업이 이제 빛을 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