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독자가 되기 위해 내가 먼저 정리해야 했던 것들
평생 독자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독서법이 아니라, 독서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몇 가지 오해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독서는 의지의 문제일까? 작심삼일로 끝난 독서는 실패한 것일까?
많이 읽겠다는 욕심을 버리자.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좋다. 이를 부정할만한 근거는 빈약하다. 많이 읽느라 깊이 생각할 여유를 갖기 어렵다는 것 정도? 다독이 숙독을 방해할 수 있음은 널리 인정되는 말이다. 하지만 숙독을 처음부터 잘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런 면에서 ’양질전환의 법칙‘이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다독을 하다 보면 어느새 숙독의 단계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우리의 많은 행위들에서 관찰되는 바, 양을 늘리면 질이 좋아진다. 다만 많이 읽는다는 것에 대한 개인의 기준이 필요하다. 지난달에 한 권 읽은 사람이 이번 달에 두 권 읽으면 많이 읽은 것이다. 작년에 3권 읽었는데, 올해 10권 읽었다면 엄청! 많이 읽었다고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니 내년에는 100권 읽자고 독려하는 것이 옳은가? 아마 10권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독서에 재미가 생기면 읽는 양은 저절로 늘어난다. 습관 때문이기도 하고, 실제로 재미가 있기도 하다. 이는 읽지 않으면 독서의 묘미를 느낄 수 없음이다. 그러니 지속적으로 재미를 느끼고 유지할 만큼, 읽는 근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차근차근 독서량을 늘릴 필요는 있다. 나의 적정 독서량에 도달할 때까지.
1일 1독을 주창하는 사람도 많다. 일 년이면 300여 권의 책을, 이를 넘어 400여 권의 책을 읽노라 전해주는 이도 있다. 어마어마한 독서량에 놀라기도 하고, 그 책들을 어떻게 소화했는지도 궁금하다. 이 정도의 다독가가 되는 것이 과연 나에게도 가능한가 질문하고, 이를 롤모델로 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와 나의 차이를 알고 나면 그 마음을 바로 철회하게 된다. 그건 내 몫이 아니라는 것을 읽다 보면 안다.
책탑을 높이 쌓아야지로 시작하는 도전도 좋다.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도 좋다. 나의 책탑에 어떤 공을 들여야 하는지 역시 나의 일이다. 중요한 것은 한 권을 쌓아도 나의 탑이고, 10권을 쌓아도 나의 탑이라는 것이다. 공들인 탑이라면 100권의 탑보다 견고할 것이다.
평생을 많이 읽는 것으로만 하는 독서는 버겁다. 공을 들여 책탑을 쌓은 고민이 필요하다. 나의 기준으로 탑의 높이를 알아보자. 중요한 것은 탑의 높이가 아니라, 그 탑이 무너지지 않게 쌓였는가다.
독서는 의지가 아니라 환경이다
책을 읽고자 하는 마음을 간절히 바란다. 특히 아이들에게. “게임만 하지 말고 책 좀 읽어라. 그럴 시간에 책 좀 읽어라.” 그런다고 책을 읽으면 아이가 아니다. 책을 읽는 것은 우리 뇌에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러니 책을 멀리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이를 의지가 부족하다고 하면 아마도 많이 억울할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이지만 하면 좋은 일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독서다. 나의 의지를 불태워야 책을 읽을 수 있다면 평생의 일로 만들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책을 읽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거실을 서재로 만드는 것처럼.
아이들이 책을 접하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거실의 TV를 치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실을 서재처럼 만드는 것. 거실 중앙에 큰 테이블을 놓고 누구든 나와서 책을 읽거나 공부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아마도 많은 가정에서 시도한 환경 꾸미기 아닐까? 적당히 어질러진 책더미, 그 속에 보이는 재미거리들. 책과 함께 뒤섞여 놓으니 어느 날은 책을 읽다가 다른 재미를 찾고, 어떤 때는 책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런 환경은 아이들이 집을 떠난 지금도 유지 중이다.
책 읽을 틈이 없다. 많은 사람들의 3일짜리 독서의 이유다. 시간을 내기 어렵고, 시간을 낸들 또 무슨 일이 생긴다고 푸념이다. 이럴 때 독서 시간을 정하는 것은 어떨까? 물론 우선순위도 뒤따라야 한다. 30분 일찍 일어나서 책을 읽는 모닝 루틴, 잠자기 전, 의식처럼 꺼내드는 책과의 시간, 일정하게 생기는 시간의 틈을 독서로 메우기 위한 탐색, 하루에 단 몇십 분이라도 확보할 시도는 누구에게나 효과가 있다. 다시 책으로 돌아오기 위해 새벽독서를 시작했다. 일 년 정도하고 나니, 이젠 언제 책을 읽지 고민하지 않아도 틈만 나면 책을 읽게 된다. 시간을 정해 읽는 것은 독서 습관으로 만들이게 적합하다.
책 읽는 사람이라고 선언할 필요가 있다. 책 읽는 것을 마치 시간이 남고, 여력이 되어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특히 가족들의 (’여유가 있어 보이니 ‘) 이것 좀 해주지. 저것도 해주지, 등의 요청이 흔해진다. 그러니 협조를 구하자. 독서는 나의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나의 일이라고.
평생을 읽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면 그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책을 읽을 공간, 책을 읽을 시간, 그리고 주위의 협조들, 하나하나 만들어가다 보면 어느새 책을 안 읽는 것이 어색한 곳에 내가 있게 된다. 공간을 만들고, 시간을 확보하고, 습관을 들이는 것이 그 어떤 의지보다 강력하게 작용한다. 책 앞에 자주 노출되는 환경이 의지를 이긴다.
다시 돌아올 자리를 남겨두는 법
읽다 만 책들이 쌓인다. 읽다 만 책이 이렇게나 많은데 또 다른 책을 읽는다고? 책장에 안 읽은 책들이 이리 쌓이는데 또 다른 책을 들인다고? 그래야 다시 책을 읽는다.
독서는 자주 중단될 수밖에 없다. 아이를 키우느라 못 읽고, 일하느라 못 읽고, 피곤해서 못 읽고, 마음이 복잡해서 못 읽고, 정말 못 읽을만하다. 그때는 다시 읽으면 된다. 다시 책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읽다 만 책을 읽기 위하여, 포장 상태로 있는 책이 궁금해서.
독서가 중단된 상태에서는 마음속에 늘 아쉬움이 있다. 읽고 싶은 책이 많은데 너무 바빴고, 읽어야 하는 것들 때문에 나의 독서는 늘 뒷전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위용을 자랑하던 <토지> 20권, 언젠가 꼭 읽으리라 다짐했던 세계문학 책들, 그러한 것들이 나를 다시 독서로 돌아오게 한다. 부채처럼 남아있는 빛바랜 표지가 책장을 정리하지 않은 채로 남겨두게 한다. 책 읽기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아무 곳이나 아무 때나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안에는 무수한 일상의 돌무더기와 내 마음의 짐이 가득하다. 그러니 적당히 멈추고 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그런대로 흘러간다. 독서를 오래 하는 사람은 중단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럭저럭 이어가도 책은 그 자리를 지켜준다. 독서를 오래 한다는 것은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두지 않겠다는 자리를 남겨두는 일이다.
그래도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