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갇힌 우리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반올림해서 40년 지기들.
코로나를 핑계로 얼굴 못 보고 지낸 지 3년이 넘었다고 해요. 하지만 실감은 안 납니다. 너무 오래된 친구들이라 몇 년을 안 봐도 늘 그렇게 있을 거라 여겨지는 친구들이라서요. 가끔 상갓집에서 만나는 것이 그나마 최근의 만남이고요. 그 마저도 뜸했던 시간들이 속절없이 흘렀죠.
그렇게 오래된 묵은 친구들을 벚꽃이 흐드러진 봄날 저녁에 만났어요.
"오늘 연차 냈다고.."
"그냥 일찍 나왔지."
예전 같으면 약속 시간보다 늦는 것이 거의 일반적인 일이었는데요. 이번에는 훨씬 일찍 도착하더라고요. 사실 저도 30분을 일찍 갔습니다. 반가운 마음이 앞서기도 했고, 그 보나 너무 오랜만에 찾게 되는 그 동네가 궁금하기도 했어요. 오래된 동네의 노포를 찾는다는 것은 그 노포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환희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하나의 소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옛이야기요.
서로의 근황에 좋은 소식만큼 안타까운 소식도 있는 나이입니다. 아픈 곳도 생기고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겪게 되는 그런 나이예요. 이런저런 안부와 위로, 격려와 덕담이 오고 갑니다.
"하나도 안 늙었네. 그대로다."
믿지 않기로 합니다. 에잇! 그건 이제 덕담이 아닌 것으로 해요.
"안 늙기는! 잘 늙고 있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맞는 거지!"
까르륵, 낄낄, 크크, 하하.
인정하기로 합니다. 나이 먹고 있다는 것을. 옛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나이 먹고 있다는 것을 잊게 해 주죠.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우리가 만나는 것이었을까요?
"옛날 대학 1학년때 산정호수 MT 갔을 때 말이야."
드디어 시작된 옛날이야기 타임.
"1000번 까지는 아니어도 100번은 넘게 들은 것 같다."
까르륵, 낄낄, 크크, 하하.
"진짜 기억력 좋네!"
그리고 이어지는 월악산 MT 이야기
그리고 또 이어지는 다른 친구들의 근황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하냐! 기억력 좋네!"
기억력 좋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주거니 받거니,
"별 걸 다 기억한다."
까르륵, 낄낄, 크크, 하하.
찬란했던 시절이라 그랬을까요?
지금의 삶이 만만치 않아서일까요?
왜 우리는 지난 얘기만 할까?
왜 우리는 지금의 내 얘기를 하지 못할까?
왜 우리는 미래의 나에 대한 고민을 말하지 않을까?
"엄두가 안 난다..."
그 한마디가 너무 가슴에 남아요.
아이들도 얼추 다 커서 이젠 부모의 손을 많이 필요치 않는 때가 되었어요.
"우리는 20세기 사람이잖아. 우리가 어떻게 21세기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겠어?"
부모의 역할도 사회 선배로서의 역할도 내가 아는 그것과 너무도 달라졌어요.
그래서 우리는 옛날이야기만 하다 헤어졌습니다.
옛날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우리가 즐거웠던 이야기.
묵은 친구들이 있어 다행이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