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기록

갓 희, 그저 빛!

그때가 좋았을까요?

by 부키

저의 본업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었어요. 수학과, 수학교육학과, 통계학과, 공과대학 등의 1, 2학년 학생들에게 교양(주로 미적분)과 전공 기초 과목을 가르쳤습니다. 학과 주임 교수님들보다 제가 나이가 더 많아질 때까지 있었으니 가르친 지 오래되었어요. 그때 한 학생이 강의평가에 써준 문장입니다. 제 이름의 성을 '갓'으로 바꾸어 써놨더라고요. 당시에 저런 문장이 유행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책장을 정리하는 데 그 당시 썼던 출석부가 나오는 거예요. 종이로 되어있는, 출력물이요. 손글씨로 출석 체크하고 메모해 놓은 출석부. 새삼 반갑기도 했고, 추억도 새록새록 그리고 떠 올린 문장이었어요.


갓 희. 그저 빛!


"우리 학교 최고의 명강의예요!"라고 주저 없이 써놓은 평가도 기억납니다. 물론 학기 마지막에 보너스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요. 나름 제 강의에 자부심이 있던 터라 뭐... 이상한 평가는 아니었어요. 성적과 무관한 시기에 평가가 이루어지기도 했고요. 이러한 평가 때문에 힘들어도 강의를 계속했을 거예요. 강의 평가에 평가자가 직접 쓸 수 있는 서술항목이 있거든요. 크게 세 가지 정도를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1.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2. 친절하다.

3. 내가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사실 이 항목은 강의를 하려는 사람의 기본 자질과 관련 있다 생각해요. 수업 시작에 지난 수업을 복기하고, 마무리에 그날 수업의 요약정리 등 수업을 구성하는 것에 해당돼요. 판서를 어떻게 하는지, 학생들의 이해도를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지, 눈 마주치고, 집중시키고, 어떤 수업은 80명이 넘어가는 대형 강의도 있었거든요. 무엇보다 집중시키는 것이 중요했어요. 이러한 외형적인 면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강의의 내용이겠지요. 유튜브나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여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도 있고, 미리 공부할 수도 있지만 대학생들이 그런 정성을 들이 지는 않지요. 수업에 참여해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개념을 설명해야 해요. 당연히 강사가 충분히 잘 공부되어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수강자의 수준에 맞는 강의가 필요합니다.


친절하기

질문에 대한 부분일 거라 생각해요. 질문하기 어려운 강사가 아니었어요. 매우 기초적인 질문부터 다른 과목의 질문까지 가져와서 했더랬어요. (물론, 수학이지요) 단순히 '어떤 것을 모르는지?'라고 묻지 않았어요. 학생이 어디까지 생각했고, 그 생각을 어떻게 풀어냈는지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면 작은 힌트 하나로도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질문한 학생이 직접 해결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전개 과정에서 실수를 발견하거나 부족한 논리를 찾게 돼요. 학생이 스스로요. 그러니 질문하기 기뻤을 거예요. 보람이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시간이 많이 부족하진 않았어요. 질문하는 학생들이 그리 많지은 않았기 때문이에요..


학생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대학의 평가는 대부분 정량평가입니다. 결석을 한다고 나무라지 않아요. 감점하면 되거든요. 시험, 괴제, 퀴즈, 팀플 등 다양한 평가 항목에서 공정하게 점수를 주면 됩니다. 그럼 합산으로 등급이 나오고 학점도 매겨져요. 그러니 강사가 학생이 공부를 제대로 하는지에 대해 정성적으로 평가할 근거가 없습니다. 하지만, 학생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내 수업에 들어온 학생들이 최소한 배울 것은 잘 챙기면 좋겠다는 책임을 갖고 있어요. 적당히 평가해서 또 적당한 점수를 주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요. 최대한 직접 공부 하도록 시간을 배려했어요. 다시 말해, 수업 시간에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의미입니다. 과제도 일률적으로 내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문제 10개 등과 같이 본인의 선택이 가능하도록 여지를 남겼어요. 처음에는 풀기 쉬운 1-10번을 고르는 학생들이 제법 있었어요. 하지만, 과제가 형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풀 만한, 다시 말해 도전할 만한 문제들을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내적 동기가 생겼다고 생각해요. 공부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곳에 있지 않아요.

코로나를 겪는 첫 학기에 더 이상 내가 원하는 수업을 할 수 없음을 알았어요.

학생들을 볼 수 없으니, 이해하기 쉽게 잘 전달되었는지, 아니, 잘 전달할만한 도구를 쓰고 있는지에 대 한 확신이 없었고요. 학생의 이해도를 파악하기도 너무 어려웠어요. 질문의 통로는 매우 비효율적이 되었고요. 더 나은 수업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강의 외적인 시스템의 문제일 때가 많았던 시간이었어요.


제가 할 있는 영역이 아니라 판단했어요.

그래서인지 몰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과감히 결정하였어요. "이제 그만둘 때가 되었구나. 쉬면서 아픈 어깨와 허리를 치료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 순간, 걷잡을 수 없었어요. 가장 결정적인 것은 재계약 조건에 수업이 너무 많아지는 것이었어요. 온라인 수업이니 쉬울 거라 생각하신 것 같아요. 계약직 교수로 일을 하면 보통 3년 주기도 재계약을 했었는데요. 코로나라는 특이 상황이 모두를 혼란하게 하면서 불평등은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다고 생각해요. 그런 맥락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계약이었어요.


아이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엄마가 이젠 더 이상 교수님이 아니다." 이해하는 눈치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엄마가 그렇다니 그런가 보다 했겠죠. 얼마 전에 막내가 물어보더라고요. 왜 교수를 그만두었는지...'모든 교수가 다 좋진 않아. 전임이면 그냥 있었을지도, 아니 버텼을지도, 아니 견뎌냈을지도...'


얼마 전에 읽은 책에 견딤과 쓰임이라는 문장이 있었어요. 그리고 나의 본업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지금은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을 많이 갖고요. 동네에서 어린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있어요. 하지만, 이 것을 본업이라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때 좀 더 견뎠어야 하는가에 대한 회한과 약간의 후회도 있지만, 다른 기회가 있다는 것에도 적극 동의합니다. 이젠 인생 이모작이 아닌 삼모작을 준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자의든 타의든 인생 1막은 마무리한 것 같아요. 인생 2막을 위해 지난 시간을 정리해 보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여전히 고민은 지속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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