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대단하다.
가끔 카페에 오래 앉아 작업을 하다 보면, 옆 테이블이 있는 사람에게 눈길이 갑니다. 카페 내부에서 비슷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은 비슷한 목적을 갖고 왔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녀도 저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쓰고자 하는 목적이겠지요. 그래서 나란히 앉아 노트북을 타닥타닥, 책장을 넘기며 글도 쓰고 기록도 합니다.
옆 테이블에 앉은 분이 저보다는 나이가 어려 보였지만, 아주 젊은 분도 아니었어요. 흘깃 비치는 모습에서도 평범한 주부.. 또는 프리랜서 정도라고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테이블로 자연스럽게 눈이 갔는데요.
손톱이 너무 예쁜 거예요. 길고요.
'아고.. 저런 손톱으로 어떻게 일을 하지?'라는 생각이 아주 자연스럽게 떠 올랐어요. 평소에 하던 생각이지요. 저는 아직 네일숍에 가본 적이 없어요. 손톱을 길게 길러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잘 안 납니다. 여대생 시절에는 아마도 조금은 길러서 뭐든 발라 봤겠죠. 하지만, 손톱이 길면 연필을 쥐는 것이 어렵고, 필기량이 많았던 저에게는 적절한 맞춤이 아니었어요. 본격적으로 공부를 많이 하게 된 시절부터는 본연의 모습으로 가장 실용적이고 방해되지 않는 손이 되었을 겁니다. 그 습관은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어요.
손톱이 길면, 도마에서 칼질을 하다가 손톱을 함께 자를 것 같았어요. 아무리 장갑을 낀다고 해도 손 끝의 예민함이 둔하니 일이 더 서툴러지고요. 장갑에 구멍도 금방 날거라 예상되었어요. 청소를 하려고 무언가를 손에 쥘 때도 손과 손톱의 괴리로 인해 원활한 작업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손톱 다칠까 아까워서 일하겠나?"
손톱이 길면 노트북 키보드에 터치할 때도 불편할 거라 생각했어요. 플라스틱 자판에 손톱이 닿는 다면 그 소리가 더 성가실 것 같았거든요. 특히나, 마지막에 엔터키를 '탁'하고 내려치는 그 무게감도 덜 할 거고요. 손톱을 기른 상태로 노트북 작업을 하는 것이 얼마나 성가실지 충분히 예상되었어요.
그런데 옆 테이블에 계신 여자분의 손톱은 조금 다른 거예요. 중지, 약지, 새끼손톱은 아주 길고요. 엄지손톱은 상대적으로 짧았습니다. 그리고 검지 손톱은 저처럼 짧게 잘라 칠해져 있었어요. 그 상태로 키보드 치시는 것을 조금... 지켜보았어요. 엄지 손가락은 스페이스 바를 누르는 경우에 많이 쓰이니까 그다지 손톱 길이가 어느 정도 길어도 무난해 보였어요. 검지 손톱이 길지 않으니, 저처럼 키보드를 누르는 데 막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다른 세 개의 손가락은 최대한 손 끝지문이 있는 부분으로 키보드를 치시더라고요.
신기방기였습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손톱을 가지고 있어요. 나름의 목적과 쓰임에 맞게 길이를 정하고,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도 체화되어 있다고 보입니다. 한 개의 손톱만 짤뚱해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어요. 네일의 상태를 보니 긴 손톱이 잘린 것 같진 않았어요. 일부러 그리 디자인한 것이더라고요.
언제나 경계해야 하는 것은 '내가 옳다'는 자만감일 거예요. 강인한 사람은 오히려 겸손하다고 합니다. 오직 나만이 옳고, 그러니 나의 방법이, 나의 기준이 유일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은 아주 부족하고 나약함의 반증일 것입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나름의 기준이 있겠지.'
'잘 생각하고 걸정한 것일 거야.'
아이에게나 또는 다른 타인을 인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면서도 자신의 잣대로만 본다면 쉬운 일도 아닙니다. '이해가 안 가네...', '나라면 이렇게 하지 않을 텐데...'라는 말을 속으로라도 하게 됩니다.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
아이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은 '엄마인 나는 옳고, 너는 아직 어려서 모른다'는 내재된 감정 때문 일거예요.
알아서 한다고 했다가 못하면? 그것도 아이의 몫입니다. 그 후에는 방법을 찾겠지요.
한 개의 손톱을 잘라내는 현명함을 배우기를요.
타인을 존중하는 겸손을 엄마도 배우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