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외면한 과잉반응의 삶
그것은 본질을 벗어난 생각과 행동의 과잉이 제 삶을 지배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질을 외면한 과잉반응의 삶은 자칫 진실이 결여된 마음과 행동을 낳습니다.
누구나 자기 본연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는 존재의 품위를 나타내고, 존재가 이루는 삶의 품격을 나타냅니다.
자신의 본질을 지키는 힘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자신이 서 있는 곳에 언제나 자신이 서 있게 마련입니다
북쿨럽 책마중에서 함께 읽고 나눈 책, 정호승 작가의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입니다. 70여 개의 산문으로 이루어진 책이에요. 분량이 많은 만큼 책의 두께도 상당합니다. 출간된 지 10년이 넘은 책이라 분량에 비해 책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했어요. 하지만, 그 이유로 책을 사진 않았지요. 도서관에서 빌려 보다가 한 꼭지를 읽고 바로 구매를 결정 한 책입니다.
그때 읽은 내용은 '공부를 담설전정처럼 하라'는 내용이었어요. 담설전정, 우물 속에 내린 눈이 스르르 녹아 없어지듯이 겸손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였어요. 공부는 밖으로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럼으로써 인간이라는 나 자신을 더욱 아름답게 하기 위함이라 해요. 처음 펼친 부분에서 얻은 글이 이토록 가슴에 와닿으니 소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어요.
공부하는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는 행위, 지나치게 차고 넘치게 하고 있지 않았을까 돌이켜보게 되었습니다. 각종 SNS 활동을 하며, 공부하는 엄마, 성장하는 엄마, 책 읽는 엄마라는 설정으로 많은 글을 게시하고 있었거든요. 인스타그램뿐 아니라, 블로그 등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과시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었을까요? 아님,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했을까요? 혹은 10년 전과는 시대가 다르니 나의 공부를 과시한다고 해서 나의 본질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본질이 단단하지 않으면 과시하게 됩니다. 과잉반응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상대방의 이야기에 과하게 반응했던 기억, 과잉반응 하는 상대가 당황스러웠던 적 대부분 갖고 있는 기억입니다. 본질을 직시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경우 과잉반응을 하게 됩니다. 최소한 반대는 아니라는 암묵적 동의를 어필함이죠. 과하게 반응하면 나의 무지나 얕은 밑천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 생각했을 겁니다.
본질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을 숨기기 위해서 과시합니다. 행복의 본질을 미처 파악하지 못하면 과시적 행복에 매몰되고요. 관계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면 과시적으로 관계를 포장하게 됩니다. 포장임을 알지만 용납하는 관계가 지속되기가 만무합니다. 건강한 관계로 발전하기도 어렵고요.
본질을 외면하기 위해 과시적이 됩니다. 우리 사회의 본질을 외면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과시합니다. 힘이 없는 이유의 본질을 외면하게 되면 힘이 있는 것에 대한 과시가 그 균형을 잃게 됩니다. 다시금 본질로 돌아가기가 점점 어려워질 거예요. 외면하기 시작하는 순간에 과시의 지분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본질 앞에 서서 그에 충실하게 살아가면, 본질이 단단한 사람으로 서 있게 됩니다. 하지만 본질에서 멀어지면 그 빈자리를 과시로 채워야 합니다. 과잉반응이 늘어나고, 내면의 것을 포장하기에 급급하면 나의 속은 텅 빈 강정이 될 거예요. 나의 본질이 과시로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본질의 양과 과시의 양이 더해져 나오는 나의 시간들은 그렇게 총양을 맞추며 움직입니다.
나는 어디에 서 있을까요?
그 무게중심을 잘 맞추며 건강한 과시를 하고 있을까요?
본질을 외면하며 과시적 외형만 키우고 있을까요?
과잉반응으로 나의 속내를 숨기고 본질에서 멀어졌을까요?
깊이 새기며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