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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달아쓰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들여다보기

by 부키

독서 모임 '책마중'에서 함께 읽은 책이다. 2주간의 열띤 토론의 시간을 가졌지만, 마무리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크게 두 명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이 엮이듯 이어진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스탠퍼드의 첫 총장이자 우생학자, 이 전에 분류학자였던 과학자와 룰루 밀러라는 과학 전문기자이다. 룰루 밀러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알아가는 중에 발견하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과 사실들은 책의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넘어가는 반전을 만들어 낸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두 명의 인물을 넘마 들며 전개되기에, 그런 혼동이 있을 법하다. 과학적 지식을 떠나서 두 개의 스토리를 분리하고 다시 이어 붙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모두 13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13개의 에피소드라고 이해해도 좋다. 평론가 이동진 작가는 영화로 만들어도 좋은 구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책을 이해하기 위해 각 챕터별 키워드(주인공)를 정리해 보았다.


1. 별에 머리를 담근 소년 : 데이비드 스타 조던

2. 어느 섬의 선지자 : 루이 아가시

3. 신이 없는 막간극 : 룰루 밀러

4. 꼬리를 쫓다 : 데이비드 스타 조던 + 다윈

5. 유리 단지에 담긴 기원 : 데이비드 스타 조던 + 박제된 물고기들

6. 박살 : 1906,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7. 파괴되지 않는 것 : by 카프카

8. 기만에 대하여 :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자기) 기만

9. 세상에서 가장 쓴 것 : 스트리크닌 독 (제인 스탠퍼드)

10. 진정한 공포의 순간 : 우생학, 아오스타 마을 & 프랜시스 골턴

11. 사다리 : 루이 아가시 + 데이비드 스타 조던

12. 민들레 : 애나와 메리

13. 데우스 엑스 마키나 : 캐럴 계숙 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데이비드는 어릴 때부터 들판의 보잘것없는(?) 풀과 꽃, 곤충 등에 관심이 컸다. 하는의 별을 관찰하는 것을 즐겨하는 소년이었다. 미들 네임을 starr로 정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자연의 구석구석에서 발견되지 못하고 잊힐 존재를 찾아 알아봐 주는 것이 그에게는 무한한 기쁨이었다. 왜냐하면, 데이비드 역시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의 구성원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상황이 그를 자존감이 낮은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이고, 그래서 자연 속에서 위안을 얻으려 한 것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점이 작가 룰루 밀러와 교집합이 되는 것이다. 작가 역시 '너는 하찮은 존재야'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자란다. 과학자였던 아버지는 우주 속에서 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는 보잘 것 없고, 생태계 전체를 이루는 매우 극히 작은 일부분을 차지한다는 과학적 기준을 어린 룰루 밀러에게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기에 작가의 아버지는 매우 자유로운 사고방식과 행동, 생활양식을 고수할 수 있었다.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확신에 찬 행동으로. 하지만, 아직 어린 룰루 밀러에게 이 말은 그저 상처만 되었다.


데이비드가 루이 아가시를 만나는 것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아닐까 싶다. 루이 아가시를 만나면서 분류학에 일조하게 되고, 가장 중요한 가치관으로 자리 잡게 되는 '자연의 사다리'라는 사상을 갖게 된다. 더불어 다윈의 '진화론'을 함께 수용하면서 '운명은 인간의 의지로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의미 없는 하찮은 존재'인 '나'를 사다리 최상위에 위치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의 힘으로.


1906년 대지진으로 박제 해 놓은 그의 물고기들이 유리병에서 꺼내어졌을 때 보인 그의 행동은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어떻게 저런 판단을 했지? 어떻게 저 정도의 헌신과 노력을 할 수 있지? 어떤 이유일까? 이 대목에서 작가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에 대해 새롭게 탐구하기 시작했으리라. '나'의 힘으로 인간의 질서를 세우고, 나아가 사다리를 완성하고자 하는 그의 집념은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을 제거하는 일을 서슴지 않게 한다. 그리고 결국, 우생학의 맹렬한 전도자가 된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행동하도록 만들었을까?


자연의 미물 같은 존재들에 한 없는 애정을 보이던 나약한 소년이 어떻게 도덕적 가치관과 인류애를 저버리는 사람이 되었을까? 무엇 때문에.. 작가의 조사는 그의 '자기기만'에서 그 답을 찾는다. '장밋빛 자기기만', '긍정적 착각', '그릿' 무엇이든 신념에 차서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는 절대 꺾이지 않는 의지, '나는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나는 자연의 질서를 만드는 사람이다', '사다리 최상위에 오를 자격이 없는 사람의 번식을 막아야 한다'는 착각, 그의 파괴되지 않는 신념. 그리고 어릴 때 가지게 된 트라우마, 상처, 그릇된 자기애.


작가에 의해 밝혀진 그의 일련의 역사는 후대에게 그를 재평가하게 만들었고, 왜곡되었던 많은 사실을 바로잡게 하였다. 특히,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이야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는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로 사다리 아래쪽에 위치시키고자 했던 어류가 사실 따로 분류할 수 없는 생명체였음을 알려준다. 어류임에도 골격 구조는 인간과 비슷한 면이 있고, 또 어떤 특징은 다른 종류의 생명체들과 유사하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베일에 덮여 있던 사실이 발견되고 인지 되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진리라고 믿었던 것들이 바뀌고 있다. 절대적 진실이라는 것이 얼마나 유효할 수 있을까?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인간의 의식이나 자연, 우주를 보는 관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영원한 것을 믿고 쫓는 것보다 지금 찰나의 순간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 현명한 생활 태도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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