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끼, 토끼야!
연휴 기간 내내 집에만 있기에는 무료한 비 오는 날들이었어요.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오면서 동네 스벅에 들어갔습니다. 5월이라 이리저리 받은 기프트콘이 몇 장 있었어요. 이럴 때 아주 요긴하게 사용해요. 자리를 잡고 앉았어요. 제가 들고 간 책은 이번주에 서평을 마무리해야 하는 책, <끈기보다 끊기> 유영만 교수님의 책이었어요. 읽는 난이도가 어려운 책은 아니었기에 쾌적한 (습도가 높지 않고, 시원한) 이곳에서 집중하면 완독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펴 들었어요.
대각선에 마주 보이는 소파좌석에 멋진 자주색 체크무늬 레인 코트가 눈에 들어왔어요. 청바지에 굽 낮은 로퍼를 맨발에 신은 모습이요. 그리고 맞은편에 노란색 옷을 상하의로 입은 작은 남자아이가 앉아있었어요. 그분은 손자를 데리고 오신 할아버지 셨습니다. '오~ 세련되고 멋진 할아버지시네!' 비 오는 날, 보채는 손자를 데리고 스타벅스에 와서 생크림 카스텔라를 사주고 계시는 할아버지가 의외였기도 했거니와 아이도 익숙한 곳인 든 얌전하게 잘 앉아서 맛있게 먹고 있었어요.
맛있게 먹는 손자를 쳐다보시는 흐뭇함이 뒤편에서도 느껴졌어요. 아이의 표정이 너무 밝고 예뻤거든요. 그리고 이내 귀에 익은 동요가 들려옵니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충깡충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할아버지가 낮은 소리로 선창 하셨어요. 그리고 그 손자가 따라 부릅니다. "~~~~`야, ~~~~~~냐, 깡~총, 깡~~ 총, ~~~~ 서, ~~~~ 느냐." 모든 단어를 말하지 못하지만, 할아버지의 노래에 끝 어미는 용케도 잘 맞추더라고요.
오랜만에 아들 내외가 놀러 왔을지도요. 아님 오랜만에 딸 내외가 들렀을까요. 피곤한 며느리, 안쓰러운 딸에게 '잠시 눈 붙이고 쉬어라'라는 배려로 손주를 데리고 나오셨을까요? "할아버지가 맛있는 것 사줄게, 나가자!"라며 빗 속에 나란히 우산을 쓰고 이곳에 오셨을까요. 생크림 카스텔라와 커피를 드시며 손자의 재롱을 즐거워하시기엔 그분에게도 이곳이 좋은 곳이었을까요. 옆에는 함께 과제를 하러 나온 엄마와 아들도 보이고요. 오랜만에 중년 부부 두 쌍이 회포를 푸는 듯한 시끌벅적도 있어요.
제가 자리한 곳은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는 책상 높이의 작은 테이블들이 있는 한켠이에요 아주 두꺼운 책을 세워놓고 읽고 계시는 중년의 남자분도 보입니다. 고3 학생처럼 보이는 학생이 생명과학 모의고사를 열심히 풀고 있습니다. 각자의 이유로 이 소란한 곳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다소 신기하기도 해요. 저부터 이런 소음 속에서 책을 읽고자 하니까요.
그리고 들려왔던 노랫소리, '산토끼' 정확한 제목이 맞는지 조차 확인 한 적이 없는 아주 오래된 노래입니다. 요즘도 아이들이 이 노래를 배울지 모르겠어요. 이 노래는 1928년 작곡자 이일래 선생님이 보통학교에 재직 중에 만들었다 합니다. 1938년에 발간된 작곡자의 <조선동요곡집>에 실려 정식 발표 되었는데, 이 책에 실린 곡 중 유일하게 오늘날까지 애창되는 곡이라 합니다. 나라를 잃은 우리 민족의 왜소함을 담기도 하면서 어린아이들이 산토끼처럼 밝게 뛰어놀기 바라는 마음에 만들어진 곡이라 해요.
아이들의 주요 양육자가 더 이상 부모가 아니어도 괜찮은 그런 사회입니다. 조부모가 대신할 수도 있고요. 오롯이 엄마가 키워야 하는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그런 이유로 출산을 기피하는 젊은이도 많습니다. "잘 키울 자신이 없어요." 며칠 전에도 들었거든요. '잘 키운다'의 의미가 어느 순간 비교 우위를 정하는 그런 뜻이 되었습니다. 옆집보다 좋은 유아용품, 효과적인 교육, 진학, 진로에서도 여전한 비교대상이 있고, 줄 서기가 지금도 많은 부모들의 기준이 되고 있으니까요.
출산율이 떨어지지만, 유아, 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경제는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해요. 경제의 구성원이 단지 어린이들이 아니라 그와 연결된 다양한 양육자들이 함께 하기 때문이죠. 부모, 조부모, 이모, 고모, 삼촌 등등등, 그들이 모두 마케팅의 대상이 됩니다. 잘 키우기 위한 개인의 노력이 부모를 벗어나 다양한 관계의 협조를 요구하고 각자의 역할을 다하도록 재촉합니다. 이 역시 불균형을 이루고 있어요.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어요. '산토끼' 노래 하나만으로도 아이는 너무 즐거워합니다.
물론, 스타벅스 생크림 카스텔라가 한몫했다 생각해요. 하지만, 동네 슈퍼 아이스크림 하나에도 아이는 여전히 좋아했을 거예요. 초코파이는 지금도 좋은 간식입니다. 그럼에도 멋쟁이 할아버지와 노란 옷 아이의 모습은 제게 의미하는 것이 컸어요. 어쩌면 나도 나중에 동네 슈퍼 말고, 스타벅스에 앉아 있는 할머니가 되고픈 지도 모르겠어요.
결론이 스타벅스로 가는 이상한... 흠...
스타벅스에 손주를 데리고 가는 세련된 할머니, 그 정도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