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기록

주인은 그대로였다

변해야 하는 것을 인정!

by 부키

"엄마, 아빠! 오늘 저녁에 나가서 밥 먹어요. 제가 졸업하는 기념으로 살게요."


졸업하는 기념이라고 한다.

그래서 밥을 사겠노라고.

졸업 축하한다는 밥을 사달라는 것도 아니고.

'대학 졸업까지 하게 되니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드는 걸까?'


"그래? 그러자, 그럼. 살 만하지. 동생들도 없으니, 오붓하게 나가볼까?"


평소 외식을 즐기지 않는 아이 아빠가 뭐라 한 마디 거들기 전에, 냉큼 수락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생각나는 메뉴가 있었기 때문이다. '트러플 머시룸 피자', 동네에 몇 년을 이어 온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다. 신선한 버섯 몇 가지에 트러플을 베이스로 하는 피자는 그 집에만 있는 메뉴였다. 적어도 우리 동네에서는. 요즘 같은 때에 '몇 년을 이어 온다는 것'은 나름 인정받는 음식점이라는 뜻이다.


모두의 동의를 받고 네이버 예약을 한다. 예약이 가능하면 점심으로 먹을까 생각했는데, 점심 예약은 모두 차있다. '그러면 그렇지, 여젼히 인기가 많네!' 저녁 시간 중 가장 빠른 오후 5시로 예약을 완료하고, 저녁 준비에서 제외된 하루를 기쁘게 보내기로 한다.


그리고, 오후 5시가 되기 2분 전에 매장 문을 여는데.


'응? 좀 달라졌는데?'

상호도 그대 로고 매장 밖의 여러 사인들도 그대로인데, 내부가 조금 달라진 느낌이다. 테이블의 크기와 위치가 조정되어있다. 테이블의 사이즈가 작아지고, 배치 방향이 90도 회전되어 있다. 그리고 테이블마다 주문과 직원 호출을 위한 작은 태블릿이 놓여있다. 아직 배달 로봇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없네?'

"저기요~ 트러플 머시룸 피자 없어요?"

"아.. 네, 거기 메뉴에 있는 것이 다인데요. 그 메뉴에 없으면 없는 거예요."


주인이 바뀌었는지 물어볼까? 아직 어린 아르바이트 학생인 듯하고, 지난 수년간의 역사를 아는 눈치도 아니다. 너무 낯설어하는 메뉴를 물어본 내가 오히려 뻘쭘해지는 분위기는 무엇...


"주인이 바뀌었나 봐.." 그제야 이런저런 메뉴들과 소개 문구를 다시 본다. 물론, 익숙한 이름의 메뉴도 있지만, 이건 뭐냐... 소금집? 생소하고 비싼 메뉴들이 더 많았다. 아들이 사는 거라 대 놓고 비싼 메뉴를 고를 엄두도 안 나고, 그렇다고 엄마가 낼께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설명은 잘 모르겠지만 사진으로 봐서 제일 그럴 듯 한 피자를 선택한다. 나머지 메뉴들은 알아서 시키라 하고.


잠봉뵈르 피자

소금집 델리 잠봉, 이즈니 버터, 유기농 바질, 48시간 비법 숙성 도우


그리고 추가로,


다시마 쉬림프 봉골레

전복 감태 리조또

해신 뚝배기 누룽지 파스타


아직 SNS에 최적화되지 못한 엄마는 예쁘게 나온 피자 사진을 보느라 다른 음식 사진을 찍지 못한다. 이미 그 위용이 허물어진 음식들을 다시 늘어놓고 그래도 한컷 건져야지 하며 찍어 온 사진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친정 엄마를 모시고 밥을 먹으로 나가면 설명을 해 드렸다. 이건 이렇게 조리한 거고, 저거는 저런 재료들을 쓴 거고... '딸 덕분에 이런 걸 다 먹어보네!' 음식을 잘하시는 분이라 특히 맛있는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크셨기에 더 기쁘게 묻고 대답한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은 갑자기 내가 잘 모르는 메뉴들과 재료들이 등장한다. 외식을 줄인 이유도 있고, 매번 가는 곳만 가게 되고, 먹는 것만 먹는 보수적인 습관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새로운 것의 등장은 늘 달갑지만은 않다. '이런 것까지 다 알아야 하나?', '몰라도 잘 살 수 있을 건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푸념 아닌가.


열풍이라는 것이 있다.

생활의 모든 면에서 트렌드가 있는 시대다. 시작을 대하는 입장은 모두 제각각이다. '신기하네, 나도 해볼까?' 하는 마음과 '별 것 아니네, 왜 이리 호들갑이야'등의 양 극단에서 적당히 중도를 찾는 사람들까지, 연속선 상에 놓고 본다면 매우 다양한 형태의 반응을 수집할 수 있다.


열풍이 지나고 나면 남아 있는 것은 얼추 분류가 된다.

잘 적응해서 활용하고 있는 사람과 시작만 해보고 의미 없다 덮어 두는 사람, 시작도 안 하고 관심을 끄는 사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편의성을 새로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태도의 문제다.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기준의 관점이라 말하고 싶지만, '생각을 닫고 살지는 말자'는 다짐이기도 하다.


우리 집 청년은 잠봉뵈르를 잘 알고 있다. 소금집도 잘 알고 있더라.

이곳의 주인은 바뀌지 않았다. 처음 오픈 할 때부터 이어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그 주인장도 트렌드에 따른 시도를 새롭게 해 보는 것이다. 기존 손님도 중요하지만, 신규 고객을 창출할 수 있는 메뉴를 만들어, 당연히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귀 열고, 눈 뜨고 장사하는 분인 것이다. (세계 3대 요리학교 출신이라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된다.)


그리고, 그날의 잠봉뵈르 피자는 정말 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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