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기록

자녀의 독립은 부모의 독립이다

부모의 정체성 찾기

by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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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고 있는 책 중에 '어른의 중력'이라는 책이 있어요. 이제 어른에 접어드는 20, 30대를 '쿼터라이퍼'라는 단어로 규정하고 그 나이대에서 심리적으로 겪게 되는 것을 고찰하는 내용입니다. 개론적인 이야기가 전반부에 나오고, 후반부에는 4명의 내담자를 설정하여(실제 사례이겠지요), 구체적인 내용을 전개하는 책입니다. 어제 읽은 부분에서 인상 깊은 문장이 있어 글로 옮겨 보려 해요.


내담자들이 대부분 20대 초반입니다. 집을 떠나 대학에 가거나, 새로운 직장과 삶을 찾아 집을 떠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것을 우리는 흔히 집에서 독립한다고 합니다. 독립해야 하는 나이에 독립하지만, 실제적으로 독립을 잘하느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감정적으로 독립을 해야 하는 것이에요. 아이는 부모로부터, 부모는 아이로부터.


최고의 학생으로 인정받던 학생이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그러면서 퇴학을 당하고 집에 와서 게임만 하는 무기력한 아들이 되어요. 부모 입장에서는 '날벼락'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믿었던, 잘했던 아들의 모습이 너무 낯설고 속상할 것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요. 그 아들도 심한 '자책감'에 빠집니다. 본인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가고 납득할 수 없습니다.


심리치료를 이어가다 보면 만나는 지점에 부모가 있어요. 다른 경우도 그렇습니다. 어쩌면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경우라고 볼 수 있어요. 단지 시기의 차이일 뿐. 자녀에게서 독립하지 못한 부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이루는 정체성에 주요한 부분이 '부모'입니다. '엄마'이지요. 아이가 자라고 성인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부모'이고 '엄마'입니다. 변하지 않는 정체성입니다. 중요한 것은 변할 수 없는 관계의 정체성이 아니라, 역할로 표현되는 정체성입니다. 부모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예요.


'아들 바라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자녀의 수가 많지 않은, 외동아들이나 딸을 키우는 엄마들에게서 볼 수 있는, 물론 그전부터 있어왔던 '어린 엄마'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온종일 아이만 바라보고 사는 엄마일 거예요. 어릴 때는 엄마의 역할이 컸기에 당연한 부분이었겠지만, 아이가 자라고 청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면서부터는 엄마의 자리는 많이 줄어듭니다. 극히 자연스러운 이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가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런 성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무 자르듯이 단번에 관심을 거둘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내가 엄마인데!'라는 이유가 큽니다. 맞아요. 변하지 않는 엄마입니다. 하지만, 이제 눈의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내 아이에게서 '나'로 전환해야 해요. 아이를 독립시키는 것은 엄마도 아이에게서 독립해야 함이에요.




저에게도 쿼터라이퍼 아들 둘이 있습니다. 조만간 셋이 될 예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더 바쁩니다. 이제야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고민하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물론, 지금까지 줄 곧 고민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고민의 주체는 '나'입니다. '나'로서 잘 살기 위한 고민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독서도 하고, 북클럽도 운영합니다.

글을 쓰기 위해 이곳에 머물러 있어요.

부족한 실력이지만, 인스타그램 계정도 운영합니다.

블로그에 지난 경험을 쓰고 있어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삶은 아니지만,

중심은 옮겨져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우리도 독립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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