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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기한 Mar 20. 2024

둘에서 셋이 되는 건 달라도 너무 다르네요.

실제 경험과 막연한 상상의 괴리

회사에 출근하기 싫어도 막상 출근하면 하루가 빨리 가는데 육아는 회사보다 최소 2배 속으로 빨리 간다.

아이 젖병 두세 번 씻다 보면 하루 다 가있고 내일의 나는 다시 싱크대에서 젖병을 닦고 있다.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벌써 2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아이를 키우자 육아 상상과 현실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실제 마주하는 현실과 그 속에서 느끼는 감정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어 지루할 틈도 없다.


내가 ’엄마‘가 되자 엄마였던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을 이젠 내가 하고 있었다.

아이가 없을 땐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공감은 하지 못했던 말들이었다.


"아이 낳는 건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아무리 말로 해도 몰라"

"손자를 안겨드리는 게 부모님께 하는 최고의 효도야“

“아이가 주는 행복이 있어”


결혼하고 살 때는 혼자가 둘이 됐어도 내 인생이 크게 바뀌지 않았는데 둘에서 셋이 되는 출산은 나를, 그리고 내 인생을 크게 뒤흔들고 있다.   



태초의 인간으로 돌아간

현실출산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고 나니 임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입덧으로 꽤나 고생을 했는데도 말이다. 현실육아를 하는 지금에서 돌이켜보니 임신은 걱정할 거 하나도 없는 배부른 일상이었다.


나는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았다. 순전히 산모 입장에서 회복이 더 빠르다고 해서 선택한 자연분만.

처음부터 확고했던 선택이지만 자연분만의 통증은.... 상상 그 이상으로 어마어마했다. 자연분만의 통증을 말로 설명해주고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적합한 표현을 찾을 수가 없다.


조선시대 때 형벌로 받던 주리를 트는 고통이 이 정도일까?

거짓자백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거꾸로 매달아 코에 고춧가루를 넣는 고통이 이 정도일까?

생리통 몇 배 정도 되는 통증이라는 글을 보기도 했었는데 아니다. 몇 배 정도가 아니라 몇 백배 정도면 모를까.


내 인생에서 이 정도의 통증을 느껴본 적이 있을까, (둘째를 갖지 않는 이상) 앞으로 또 느낄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자연분만은 폭발적인 통증과 몸부림이었다.


지금 내 기억 속에 남은 그때의 나는 태초의 인간이 가졌을 법한 날 것 그 자체였다고 해야 하나.  

이 글을 적는 와중에도 어떻게 묘사하면 더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생각하지만 이성의 끈을 놓은 태초의 인간으로 돌아갔던 그 순간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어떤 고통을 생각하든 상상 그 이상이니깐 지금 지레 걱정하고 상상하는 건 부질없다. 그냥 맘 편히 있다가 출산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젖 먹던 힘까지 최선을 다해 힘을 주고 빨리 끝내는 게 더 낫다. (왜 젖 먹던 힘까지.. 란 말이 생겼는지도 젖을 빠는 아이를 보며 알게 된다. 정말인지 아이는 이 세상에 할 일이 그것밖에 없는 것처럼 자신의 모든 힘을 다 끌어모아 젖을 빤다.)

 


상상과 달라도 너무 다른

현실육아


갓 출산을 했을 때는 "임신은 출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노라고" 말했지만 정정하겠다.

“육아에 비하면 출산은 아무것도 아니었노라고"


아이를 달래면서 엄마도 운다는 얘기가 진짜였다. 나도 베갯잇 몇 번 적셨다.

울고불고하는 아이를 재우고 침대에 누웠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단순히 호르몬 변화로 흐르는 눈물이 아니었다. 처음 하는 육아가 진심 힘들었다.


100일 전까지 잠 못 자서 힘들다, 육아에 적응하느라 힘들다 많이 들었지만 내 상상보다 훠어어어어어어얼씬 힘들었다.


잠 못 자서 힘든 건 기본이고, 달리는 체력과 하루아침에 아이위주로 바뀐 일상에 남편과 나 모두 예민해졌다.

우리는 평소 잘 싸우지도 않고 같이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이좋은 부부라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현실 육아를 시작하자 생각보다 너무 다른 육아관으로 자꾸 말다툼하게 되고, 쌓이는 빨래, 지저분해지는 거실, 해야 할 살림도 늘어나자 내가 더 수고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 한 명 늘었을 뿐인데 뭐가 이렇게 힘들지?"


나와 남편이 누려왔던 여유롭게 먹고, 맘 편히 싸고, 푹 자는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이 안 되니깐 쉽게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체력과 정신 모두 메말라가면서 아이가 집에 온 초반에는 임신 자체를 후회하기도 했다. '이래서 아이를 낳지 않는 건가' 싶었다.


다행인 건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불변의 진리가 여기서도 통하더라. 아이가 집에 오고 1~2주 정도는 미친 듯이 힘들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아이 케어가 익숙해지고 요령도 생긴다.

그 사이 신생아 30일도 지나가고, 수유텀도 잡히며 아이의 패턴을 얼추 예상가능하게 되자 숨통이 트이고 있다.


이젠 남편과 제대로 차린 밥상을 앞에 두고 느긋이 함께 먹는 여유는 없지만 같이 밥 먹는 순간을 소중히 하게 되었다. 힘들게 재운 아이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히 행동하는 버릇이 생겼지만 남편과 나는 귓속말하듯 속닥이며 대화하는 재미를 알았다. 아이와 같이 하는 삶이 익숙해지는지 처음엔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아이의 표정과 행동 변화 하나하나가 보이며 '어떻게 내 배에서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가 나왔을까' 감탄하는 중이다.     



윌터의 상상은

상상 그 이상이다


'대리만족'이 쉬워진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내가 직접 도전하거나 해보는 게 아니라 관련된 프로그램을 보는 시대.


연애를 하고 싶으면 <환승연애>나 <솔로지옥>을 보고,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를 보면서 대리 여행을 하고, 유튜브 <리쥬라이크>의 유준이를 보며 랜선이모가 된다.


내가 연애를 하거나 가족을 만드는 건 어렵지만 대리경험을 하는 건 손가락 터치 몇 번이면 되니깐 너무 쉽다. 타인이 경험하고 만든 영상을 보면서 "맞아, 맞아" 공감을 하고 "저렇게 사느니 결혼을 안 하는 게 낫지"라고 쉽게 단정 지어 버리지만 뭐든 내가 직접 경험하면 완전 다르다.


그동안 육아 예능과 브이로그를 봤지만 내가 직접 경험한 내 아이의 눈을 마주하는 감동, 꼬물거리는 손과 발가락을 만지는 기쁨, 입에서 나는 우유 냄새와 움켜쥔 손가락에서 나는 꼬순내까지 담아내지는 못하더라.  


남이 하는 연애보다 내 연애가 재밌고,

남이 간 30박 31일 여행기를 듣는 것보다 내가 직접 간 1박 2일 여행이 더 재밌는 것처럼,

남의 아기만 보다가 내 아기를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행복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상상보다 더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

뭐든 하지 않는 것보다 직접 해보는 게 낫다!

100번의 고민보다 1번의 행동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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