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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기한 Mar 27. 2024

아이를 낳고 이혼을 생각하다 (1)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온 순간, 얼떨떨하면서도 많이 기뻤고 행복했다.

“우리의 예쁜 모습만 반반 닮은 아이였으면 좋겠다”

“어떤 성격일까? 나중에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까?”


아이의 윤곽은 초음파상에 보이는 검은색과 하얀색이 전부였지만 초음파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며 까르륵하면서 무한의 상상을 펼쳤다.



돌 하나하나를 견고하게 쌓은 

피라미드 같은 부부 사이


부부 앞에 위기가 닥치면 더 단단해진다.  


우리 부부의 애정과 단합은 아기가 6주나 일찍 나오면서 최고치에 도달했는데 남편은 누워있는 나와 조숙아로 신생아 중환자실에 들어간 아기를 돌아가며 지극정성으로 챙겼다.


출산가방을 싸기도 전에 아이가 나왔기 때문에 부랴부랴 집에 가서 출산 가방을 싸고, 내가 병원 입원해 있는 동안 지옥의 손수건 빨기와 아기 용품 당근 투어를 하고, 대학병원 2박 3일 입원 후 집으로 퇴원한 나를 위해 하루 세끼 산후조리식단을 차리는 건 모두 남편의 몫이 되었다. 


내가 집으로 오면서 늘어난 집안일, 언제 퇴원할지 모르는 아기를 위해 아기 용품을 조립하고 집안 배치 곳곳을 바꾸는 것도 남편에게 돌아갔다.


지금 생각하면 남편 역시 놀라고 당황스러웠을 텐데 내 앞에선 의젓하고 차분하게 마치 모든 게 별일 아니라는 듯이 행동했다. 남편 말로는 우리 가족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T인 내가 의외로 너무나도 크게 반응하기 때문에, 본인은 F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래서 오히려 더 이성적이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든든한 사람이 내 옆에 있다니...' 

그 어느 때보다도 남편의 존재에 감사함을 느끼며 아이의 무사 퇴원만을 하루하루 기다렸다. 이렇게 세 가족이 함께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우리 둘은 매일 꼬옥 안고 잤는데.... 

 

 


바람에 모래 쓸리듯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부부 사이


태어난 지 2주 만에 아기가 퇴원했다. 숨쉬기와도 연관이 있는 폐에 최종 이상 없다는 소견과 함께 퇴원 일정이 갑작스레 잡혔다. 급하게 알아본 조리원에 들어가 몸조리를 때도 괜찮았고,  집에 얼마 안 됐을 때우리의 모든 것이 괜찮았다. 


아기의 신호("배고파요 응애", "똥 샀어요 으아아앙", "불편해요 으아아아악억")를 파악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나름 초보 부모치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신생아 (~40일) 기간 동안 2시간 간격으로 수유할 때는 철저한 교대 시스템으로 돌아갔다.    

특히, 새벽 당직 때엔 한 사람이 아기 침대 옆 소파에 아예 담요 덮고 자면서 아기를 돌봤다. 교대 시간이 오면 우리는 손목 보호대를 찬 손으로 소리 나지 않는 하이파이브를 하며 서로의 수고를 치하했다. 


"수고했어" (하이파이브) 

"고생했어. 가서 잘 자" (포옹)


이랬던 우리가 시간이 흐를수록 종착지가 없는 고난 앞에서 길을 잃기 시작했다. 

대개의 문제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하나하나 풀어가면 좋든 나쁘든 마무리가 되게 되어있다. 

그런데 육아는 고난의 종착지, 즉 끝이 없었다.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수면 부족과 쉴 새 없이 돌아가야 하는 집안일의 굴레 속에서 하이파이브할 힘을 잃어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를 케어하고자 하는 육아 방식이 다른데 하루 24시간, 일주일 168시간을 붙어있다 보니 갈등도 피할 수가 없었다. 


우리의 본격적인 갈등은 아이의 분리수면 시점을 시작으로 수면 교육 방식, 수유하는 양과 시간, 누가 아기 케어를 많이 하고 있는가 등등 예쁘고 가볍게 날아다니던 풍선에 압력을 가하면 순식간에 언제 터질지 몰라 무서운 폭탄으로 변하는 것처럼 둘 다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남편과 주고받으면서 혹자는 ‘아이’때문에 산다지만 우리는 ‘아이’때문에 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우아한 육아를 꿈꾸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초보 엄마가 겪는 육아의 세계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 업로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니 격려 부탁드립니다:) 



사진: UnsplashKelly Sikk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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