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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기한 Apr 17. 2024

아이를 낳고 이혼을 생각하다 (2)



40일 된 아이를 놔두고

술 마시러 간다는 남편


현재 나는 남편과 공동육아 체제로 아이를 돌보고 있는데 나는 명백한 집순이, 남편은 밖돌이이다. 

남편이 스트레스를 푸는 법은 마음 편한 지인들과 술 한잔 하면서 입을 턴다. (유재석 못지않은 입 털기 실력) 서로 술에 취해 대화가 안 될 때쯤 집에 와서 라면이나 햄버거 먹고 잔다. 

한 달에 평균 3~6회 정도 술자리를 갖는데 아이가 갓 나왔을 때는 당연히 술자리도 자제하고 말도 꺼내지 않았다.


임신 기간이었을 때 남편은 "이제 아기 나오면 술자리는 못 가지. 아기 봐야지"하면서 나와 주변 사람에게 선언하듯이 말했고 나도 절주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돌 때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100일까진 스스로 말한 걸 지킬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아이가 나오자 남편의 생각보다 현실육아는 훨씬 힘들었던 거지.

현실육아를 하다 보니 스트레스는 쌓이는데 집 안에선 분출할 수 있는 구멍이 없다 보니 남편은 술 약속을 다시 잡기 시작했다. 


40일 된 아기를 두고 술 한잔하고 온다고 할 때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 아기를 두고 나간다고? 그것도 술 마시러? 이게 말이 되나?' 하는 마음이었다. 

나도 아이 케어에 익숙지 않던 시기였고 혹시나 돌발상황이 생길까 싶어 나가지 말라고 했고 남편도 한두 번은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참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남편은 결국 출산 전처럼 술 약속을 잡기 시작했다.


우리 둘 다 처음 겪는 육아로 고군분투하는 시기에 혼자서만 자유를 찾는 남편한테 적지 않게 실망을 했다. 

본질적으로는 남편은 타인과의 교류 속에서 에너지를 얻는 E 타입이고 그 매개체가 술이 된 것뿐인데 나는 아이를 두고 '술 마시러 가는 행동'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아 몇 번 말다툼도 있었다. 

'왜 그걸 참지 못하나' 답답하고 같이 술 마시는 주변 지인들도 미워졌다. 


남편도 말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걸 스스로 인정했지만 이렇게라도 스트레스 해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술만 아니면

남편은 최선을 다하고 있긴 했다


물론 남편이 수고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나는 육아휴직 중이라 업무는 하지 않았지만, 남편은 재택근무와 함께 육아를 병행하고 있다.

재택근무 와중에도 틈틈이 아기를 돌보고 퇴근 후에는 나에게 자유시간을 주려고 노력한다. 


나도 옆에서 일, 육아, 살림을 병행하는 남편이 안쓰러워 작년부터 재미를 붙이고 있던 사회인 야구동아리도 출산 달 만에 다시 나가라고 격려해 주고, 야구 후 이어지는 뒤풀이자리도 웬만하면 알겠다고 했다.

친구들과 술 한잔하고 온다고 할 때는 고운 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보내줬다. 



이 정도 독박육아는 

거 너무 하잖아요


남편이 없는 시간은 온전히 나의 독박육아가 되었다.

아무리 부부라도 개인 시간은 필요하고, 나 역시도 혼자 있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 사전 협의 하에 독박육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남편이 외출 후 돌아오면 교대를 해줘야 하는데, 거나하게 술 취해 돌아온 남편이 바로 아이를 보기란 불가능했다. 그 말인즉슨 나의 독박육아 시간은 항상 내 예상보다 심하게 길어졌다.


어떤 날은 새벽 7시부터 신나서 야구를 하러 나가는데 뒤풀이까지 하고 저녁 12시에 돌아온다. 

와서 코를 골며 드르릉자다가 참다못한 내가 남편을 깨우면 새벽 5시... 어떤 날은 평일 오후 7시에 나가 새벽 2시에 온다. 


만취 상태에선 아무리 깨워도 못 일어나니 남편이 와도 교대를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남편이 외출한 순간부터 정신 차리는 시간까지 최소 12시간 길면 24시동안 복잡다단한 심정을 누르며 아이와 지지고 볶고 있는거다. 


이렇게 되면 나도 다음날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다. 

아이를 육아하면서 새롭게 얻은 깨달음 중에 하나가 '나 한 명의 컨디션이 곧 우리 가족의 컨디션'으로 직결된다는 거다. 한 사람이 피곤해서 새벽 수유를 못하면 다른 사람이 하고, 상대방의 낮 컨디션에 영향을 주고, 부모가 피곤하면 아이 앞에서 웃어줄 에너지가 없게 돼서 아이도 최상의 케어를 받을 수 없는 사이클로 이어졌다.


남편이 없는 동안 내 맘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하고 새벽에도 교대 없이 자다 깨다 하다 보면 '이건 아니지'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나봐요.

2편에서 마무리 될 줄 알았던 글이 너무 길어져 3편으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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