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살아가는 방식의 잣대가 다름으로 사리에 맞고 그르다는 것을 흑과 백으로 나눌 수 없는 것 같다. 누군가의 삶을 직접 살아보지 않는 이상, 올바르게 비판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저마다의 사정과 저마다의 정성과 대상에 대한 개념 또한 다를 것이다.
중년이 되어서야 꼬마일 때부터 평생의 꿈이던 반려동물의 가족이 되었다. 청춘일 때 뉴욕에서의 공부를 포함하여 하고 싶었던 것을 대부분 해보았고, 일 년의 한번 즈음은 해외여행도 즐겼으니, 여행의 빈도나 문화생활이 확연히 줄더라도 득과 실을 따졌을 때 반려동물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경험은 새롭고 경이롭다. 나의 개인적인 선택으로 한 생명의 세상의 중심이 내가 된다는 사실에 책임감이 크게 다가온다.
난 비혼주의자는 아니었는데, 지금까지 결혼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지 못했고, 나의 반려견이 아마도 유일하게 책임을 다해야 할 존재일 것 같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지만, 훗날 독거노인이 되어 남겨질 반려동물을 걱정할 순 없으니깐, 아마도 나의 첫 강아지이자, 마지막 강아지가 되지 않을까? 하며 반짝이는 보석 같은 아이를 데려왔다. 나의 찬란했던 젊음이 모두 시들고, 곱게 나이 드는 방법을 꿈꾸는 지금, 매일매일 아름다운 강아지를 볼 수 있어 솔직히 행복하다. 강아지들은 나이가 들어도 착한 마음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단 사실이 존경스럽기도 하다.
반려견의 가족이 되면 비가 오거나 눈이 오지 않는 날이면, 산책을 한다. 아직 5개월밖에 되지 않는 꼬맹이를 데리고 다녀도 누군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겁 많은 강아지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거칠게 예뻐하는 행인도 빈번하게 마주친다. 무관심하게 지나치던 거리의 수많은 쓰레기도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개념 없는 보호자가 치우지 않는 오물에 눈살을 찌푸린다. 탄천의 애견 운동장에서도 나의 반려견을 보호하기 위해 찡그리며 뒤처리를 대신해보기도 하지만, 올바른 문화가 정착되고 세상이 변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는 문구가 여기저기서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소중한 의견임에는 동의한다. 펫샵은 사라져야 할 끔찍한 실태이지만, 저 문구 이전에 즉흥적이거나 함부로 반려동물을 데려와서는 안 되고, 파양이 사라져야 하는 것이 선행돼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다음엔 올바르게 반려견과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세상과 공존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만 살자"가 모토인 난 어떠한 옳은 생각도 지나칠 땐 배타적으로 느껴진다. 내 주변엔 가정분양을 통해 사랑으로 기르는 친구가 존재하고, 견종 별 활동량과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맞을지 아주 오래 고민하고, 브리더를 통해 데려와 책임을 다 하는 경우도 많다. '고독한 훈련사'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한 적이 있다. 다양한 삶을 바라보니 어떤 것도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나의 상황 안에서 최선을 다했는가?나의 선택으로 데려온 아이에게 마음과 시간을 충분히 할애했는가? 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물론 세상의 모든 개는 소중하고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