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夜の底が白くなった。信号所に汽車が止まった。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유명한 설국의 첫 문장이다. 문학 작품은 번역가의 해석이 많이 더해지므로 원어로 읽을 수 있다면 느끼는 바가 얼마나 다를까? 첫 문장이라도 찾아본다. 터널의 끝에 펼쳐진 밤의 새하얀 설국의 풍경을 떠올리면, 깨끗한 순수함, 사라질지 모르는 덧없음과 허무, 밤의 설경이 주는 고독함이 모두 함께 떠올리게 된다.
눈에 갇힌 긴 겨울을 보내는 마을과 마을 사람들을 한 번도 실제로 관람한 적 없는 서양무용에 대해 평론을 하며 무위도식하는 부유한 여행자의 시선으로 서술한다. '모든 것이 헛수고'라고 여기는 시마무라의 시선은 여유로움이 함께 묻어난다. 아주 사소하고도 작은 아름다움의 디테일을 끝없이 묘사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 특히 "지지미가 거의 다 바래어 갈 즈음, 아침 해가 떠올라 새빨갛게 비추는 풍경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워, 따뜻한 지방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을 정도라고 옛사람도 쓴 바 있다. 또한 지지미 바래기가 끝났다는 것은 눈 지방에도 이제 봄이 가까워졌다는 신호였으리라."는 상상만으로 부족해 관련 이미지를 검색해 보고, AI의 도움을 받아 이미지를 생성해보기도 했지만, 글에서 느껴지는 자연이 주는 웅장함과 뭉클함을 재현할 순 없었다.
산행을 즐기던 시마무라가 처음 고마코와 대면했을 때는 초여름이었다. "여자의 인상은 믿기 어려울 만큼 깨끗했다. 발가락 뒤 오목한 곳까지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여름 산들을 둘러보아 온 자신의 눈 때문인가 하고 시마무라가 의심했을 정도였다."고마코는 "열아홉 살이라 했다. 거짓이 아니라면 이 열아홉이 스물한둘 정도로 보이는 데에, "에서 '금방 찬물로 세수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에 비유한 '피천득 작가의 수필 「오월」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사람의 계절에서 봄 혹은 초여름 같은 고마코와의 첫 만남은 맑고 산뜻함이었다. 그 후 시마무라는 두 번 더 니가타현의 에치고 유자와 온천마을을 방문한다. 두 번째 만남에서 고마코는 게이샤가 되어 있었다. 게이샤가 된 후의 고마코는 불타는 한여름 같이 정렬적이다. 그렇지만 그 맹렬하게 타오르는 마음은 유키오를 향한 것일까? 시마무라를 향한 것이었을까?
고마코를 마치 관조하는 듯한 시마무라의 나이를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나 자신이 모든 것이 설레던 10대와 20대의 청춘을 지나 수많은 것들이 시시해져 버린 40대 중후반의 나이가 되어보니, 아마도 시마무라도 내 나이즈음이지 않을까? 상상한다. 작가의 삶처럼 처절한 상실과 고독을 경험해 보진 못 했지만, 한걸음 떨어져서 청춘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은 더 공감이 간다.
고마코가 아들의 약혼자, 요코가 아들의 새 애인, 그러나 아들이 얼마 못 가 죽는다면, 시마무라의 머리에는 또다시 헛수고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고마코가 약혼자로서의 약속을 끝까지 지킨 것도, 몸을 팔아서까지 요양시킨 것도 모두 헛수고가 아니고 무엇이랴.
사랑은 덧없고, 금방 시들 것을 모르는 것처럼 아름답고, 그래서 애절한 것이다. 시마무라에게 고마코와 요코의 사랑은 적요한 헛수고 같다. "무심히 꿰뚫어 보는, 빛을 닮은 눈이 요코에게 있을 것 같아, 시마무라는 이 여자에게도 마음이 끌렸다"라고 했다. 첫 만남에서 요코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와 "빛"으로 묘사되고, 밖은 땅거미가 깔려 있고, 불이 밝혀져 있는 기차에서 거울이 된 유리창으로 요코를 관찰한다. '설국'에서 '헛수고'라는 표현이 수없이 등장하는데 요코는 가장 헛수고와 맞물린 인물이다. 보답 없는 헌신적 간병과 사별이란 허무와 무력함, 하얀 설국과 같은 순수함을 담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인물은 투명한 허무로, 풍경은 땅거미의 어슴푸레한 흐름으로, 이 두 가지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이 세상이 아닌 상징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었다. 특히 처녀의 얼굴 한가운데 야산의 등불이 켜졌을 때, 시마무라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가슴이 떨릴 정도였다.
고마코에서 시마무라는 닿을 수 없는 사내이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불안이다. 아름답고 구체적인 자연의 변화에 대한 묘사와는 대비되게 시마무라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인물로 구체적인 묘사가 존재하진 않는다. 다만 수염을 기르지 않은 얼굴, 하얀 피부, 수염이 없어 통통해 보이는 인상이 표현되는 문장으로, 그의 무심한 어투로 상상을 해 본다. 좋아하는 배우 다카하시 잇세이 연기하는 '시마무라'도 궁금해 언젠가 보고 싶었는데, 1일 1식을 하는 깡마른 배우와 시마무라를 도무지 매치가 되질 않았다. 어쩌면 문학을 접하는 특혜가 외부 시각적 자극이 없는 상상에 있는 것이 아닐까? 오랜만에 트레바리를 통해 문학을 읽는 재미를 느낀다.
특별한 플롯이 없는 장편의 시 같은 설국. 마지막 작품 해설을 읽으며 "설국이 처음부터 하나의 완결된 작품으로 구상된 것이 아니라 단편이 모이고, 완결판이 출간되기까지 13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접하고 나니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섬세한 묘사가 더 돋보이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고마코 같이 열정이 넘쳤던 10대 후반의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는 시기였고, 20대 초반은 가장 일기를 꾸준히 쓰던 시기였다.
아주 많았던 열정이 모두 사그라진 지금, 비어져 가는 나 자신이 두려워 낯선 사람들과의 독서클럽을 신청했는데, 한 달에 하나의 책, 하나의 구슬, 그 구슬이 꿰어질 때,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내게도 작은 등불이 켜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고요한 밤, 문학 속 적요한 헛수고는 내게 생각할 빈 공간을 선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