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이 익어가는 소리

by heelight

10여 년 전의 일이다.

아들과 딸이 수학여행을 가던 날, 직장 동료가 강연 티켓을 건넸다.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강연사야. 애들 키우느라 너 시간 없잖아."


평소 같으면 넘겼겠지만, 그날은 큰맘 먹고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여보, 나 오늘 저녁 먹고 들어갈게."


아직도 그 문자를 보내던 손끝의 떨림이 기억난다. 누군가 엄마 말고, 아내 말고, 그냥 '나'로서의 시간을 허락받는 느낌이었다.


강연이 시작됐다. 주변 사람들은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솔직히 나는 감흥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강연이 거의 끝나갈 무렵, 가슴에 콱 박히는 한 문장을 들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해 계란후라이 두 개씩 해서 드세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그때의 나는 몰랐다.


나는 늘 그래왔다.


귀한 계란이면 키 작다고 고민하는 아들에게 더 주고, 공부가 안 된다고 한숨 쉬는 딸에게도 더 주고, 나는 마지막에 남은 하나를 먹었다.


"나는 괜찮아. 애들이 먼저지."


그렇게 살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10년이 흘렀다.


큰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갔다. 어쩌다 직업군인이 되어 지금도 나라를 지키고 있다.


딸은 대학 시절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다. 잠깐일 줄 알았던 그 시간이, 어느새 아이의 삶이 됐다.


나는 늘 말하곤 했다.


"우리 딸은 호주에서 살고 있는 애야."


그동안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묻지 않은 채 살아왔다.


어느 날 같은 강연사의 강연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10년을 지나 또 그 강연장에 앉게 되었다.


또 그 말을 한다.


"계란 두 개를 자신에게 주세요."


이번엔 달랐다. 그 말이 마음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었다. 마치 10년 만에 도착한 편지처럼.


강연을 듣고 집에 들어오니 남편은 낚시를 가고 없었다. 집엔 나 혼자뿐이었다.


배는 고픈데 뭐 해먹기는 귀찮고, 있는 반찬들을 모아 고추장에 비비다가 문득 계란이 생각났다.


계란을 하나 후라이팬에 톡 깨고, 또 하나를 톡 깨 넣었다.


그 순간, 뚝.


눈물이 떨어졌다.


'왜 여태 이까짓 계란 두 개를 아까워했을까?'


배고파도 이렇게 말했다. 조금 뒤 집에 갈 거니까 조금만 참자.


목 말라도 이렇게 말했다. 물이야 공짜로 마실 데가 있잖아.


그렇게 참아온 사람이 늘 나였다. 그렇게 아껴온 대상도 늘 나였다.


계란이 익어가는 소리

왜 그리 슬프고 따뜻하던지.


늦은 밤, 혼자 식탁에 앉아 계란 두 개를 올린 비빔밥을 먹으며 천천히 눈물을 닦았다.


그래... 늦었지만 이제라도 시작하자.


이제라도 나를 위해 계란 두 개쯤, 해먹어보자.


그날 이후, 나는 나를 조금 더 챙기기로 했다.


배고픔도 목마름도 늘 "조금만 참자"로 넘기던 사람. 그 사람은 늘 나였다.


그래서 계란 두 개는 욕심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지불하는 최소한의 존중이 되었다.


나도 그래도 된다. 이제는,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