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은 늘 한 박자 늦게 도착한다
상자가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진 건 기분 탓이 아니었다. 수취인은 대답이 없는데, 물건만 홀로 도착해 버린 탓이다.
털신 한 켤레가 든 상자를 들고 장례식장 마당에 섰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내 일이 ‘너무 늦게 도착한 마음을 배달하는 일’ 같아 목이 메었다. 휴대용 단말기(PDA) 화면에 뜬 배송 실패 사유 목록을 한참 들여다봤다.
‘부재중’도 아니고 ‘수취인 불명’도 아닌 이 이별을 설명할 단어는 거기엔 없었다.
애월읍 끝자락, 내비게이션도 가끔 길을 잃는 좁은 골목 끝집. 그 집 평상에는 어르신이 앉아 삼춘이 쓰던 호미를 숫돌에 갈고 있었다.
사각, 사각.
울지도 않고, 말도 없이. 그 소리가 마치 멈춰버린 아내의 심장을 대신 뛰게 하려는 소리처럼 들렸다. 녹슬지 않게 갈고 또 갈았다.
“기사님, 우리 엄마 좋아하셨어요?”
장례식장 복도 끝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딸이 물었다. 손수건으로 눈가를 누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했다는 말로는 부족했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저한테 보내려던 게 그거였대요. 털신.”
딸은 상자 위를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전화할 때마다 발 시리다고 하셨는데… 저는 매번 ‘엄마, 요즘 온열 슬리퍼 좋은 거 많아’ 그러고 말았어요. 그게 뭐 어렵다고.”
그제야 알았다. 이 상자가 왜 이렇게 무거운지.
삼춘이 직접 뜬 털신이었다. 바다에서 올라와 저녁마다, 거친 손으로 한 코 한 코. 딸이 상자를 들어 올리자 틈 사이로 거친 털실 뭉치가 보였다. 투박한 매듭 하나가, 지난 시간의 매듭처럼.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상자를 건네는 내 손도, 받는 딸의 손도 똑같이 떨렸다. 이 상자가 도착했어야 할 곳은 서울 어느 아파트가 아니라, 삼춘이 살아 있던 지난주였다는 걸—우리는 둘 다 알고 있었다.
그 집을 처음 알게 된 건 2년 전 겨울쯤이었다. 제주의 바람이 트럭 문틈을 파고들던 날, 라디오에서는 ‘초고령사회 진입’ 같은 건조한 말이 흘러나왔다.
그 단어는 내겐 남의 일 같았다. 통계보다 먼저 박히는 얼굴들이 있었으니까.
내 트럭 엔진 소리만 들리면 삼춘은 바다에서 막 올라온 모습으로 맨발로 뛰어나오곤 했다. 젖은 해녀복을 반쯤 걸친 채 숨을 헉헉거리며 손을 내밀고는, 주머니에서 늘 작고 따뜻한 것을 꺼냈다.
체온으로 데워진 귤 두 알, 아니면 미지근한 캔커피 하나.
“아이구, 이거 먹엉 가게.”
그 집의 귤은 늘 두 알이었다. 하나는 내 손에, 하나는 내 주머니에. 말은 거기까지였다.
서울 사는 딸은 계절마다 영양제니 관절약 같은 것들을 바지런히 보냈고, 삼춘은 답장하듯 전복이랑 성게알을 스티로폼 박스에 꽉꽉 채워 보냈다.
뚜껑을 열면 먼저 바다가 냄새로 인사했다.
추석 전날, 짐칸에 서울에서 온 박스 하나와 서울로 갈 박스 하나가 나란히 실린 적이 있었다. 둘 다 ‘택배 빨리’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서로를 향하는 마음이 같은 공간에서 엇갈려 지나갔다. 분명히 거기 있는데, 늘 한 박자씩 늦었다.
어르신은 말이 없었지만 시선만큼은 늘 바다에 꽂혀 있었다. 파도가 조금만 거칠어져도 평상에서 일어나는 기척이 달라졌다.
말 한마디 없어도, 그 뒷모습만으로 충분했다.
삼춘의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알아챈 건 가족보다 아마 내가 더 먼저였을 것이다. 귤을 건네는 손이 떨리던 날, 대문 앞에서 숨을 고르느라 한참을 멈춰 서 있던 날, 발걸음이 반 박자 느려진 걸 본 날.
장례식장에서 딸이 낮게 물었다.
“엄마… 많이 힘들어 보였어요?”
나는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네. 조금씩… 그러셨어요.”
딸의 얼굴이 잠깐, 무너졌다.
“영상통화 때는 늘 웃으셨거든요. 제가 걱정할까 봐.”
나는 생각했다. 딸은 화면 속 엄마의 웃음을 봤고, 나는 대문 앞 엄마의 숨 고르는 시간을 봤다.
“마지막으로 보내신 전복은 받으셨어요?”
“받았어요. 그날… 전화했어야 했는데. 바빠서 카톡으로만 ‘잘 받았어요 ㅎㅎ’ 하고…”
딸의 눈물이 떨어졌다.
“기사님은 엄마 목소리 더 많이 들으셨겠네요. 저보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그즈음부터 골목에 삼춘의 기척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엔진 소리만 들리면 맨발로 뛰어나오던 길에, 적막이 먼저 고였다.
주인을 잃은 평상 위엔 마른 잎만 굴러다녔고, 귤껍질 대신 먼지가 쌓였다.
“삼춘, 계심까?”
돌아오는 건 바람 소리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집을 찾았을 때, 삼춘이 보낸 건 상자가 아니라 부고장이었다.
장례식장을 나서며 딸이 말했다.
“기사님, 부탁 하나만요. 앞으로도 그 골목 지나가시면… 가끔 엄마 생각해 주세요. 제가 못 한 만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트럭 문을 닫으며 알았다. 배달하는 건 상자였는데, 어떤 날은 시간이 더 무거웠다. 그리고 어떤 시간은 끝내 주소를 찾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더 늦기 전에 길을 나선다. 누군가의 마음이 길 위에서 너무 오래 헤매지 않도록.
애월 바다를 지나며 속으로 인사를 건넨다.
“삼춘, 잘 계심까. 오늘도 제가 기억허고 감니다.”
작가의 말
"이 글은 제주에서 배송 일을 하며 마주했던 찰나의 인상들을 엮어 만든 이야기입니다. 비록 허구의 서사를 빌렸으나, 그날 제 손에 들려있던 상자의 무게만큼은 진실이었습니다. 상자보다 무거웠던 그 마음들을 오래 잊지 않으려 이 기록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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