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기도를 시작하며

by 힐링다방

나는 일곱 살 때 어머니 손을 잡고 처음 성당에 갔다.

신앙심이 깊어서라기보다는, 그곳이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는 놀이터였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복사를 몇 년 동안 했다.

새벽부터 신부님, 수녀님을 만나는 일이 좋았다.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한 번도 성당을 빠진 적이 없었다.

주말에 성당에 가는 일은 내 삶의 일부였다.

그렇다고 내가 절실한 신앙인도 아니었다.


아내는 무신론자였다.

나 때문에 세례를 받고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첫아이를 임신한 후 성당에 가지 못하면서

우리의 주말은 점점 달라졌다.


성당에 가지 않으니 주말이 여유로워졌다.

늦잠을 자고, 여행을 다녔다.

언젠가는 다시 다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20대 후반, 성당을 떠난 지 꽤 오래였다.

어느덧 40대 중반이 되었을 때,

나는 해외 주재원으로 갈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때 무심코 기도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말로 해외 근무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후 몇 년간은 모든 것을 잊고 지냈다.


50대 초반이 되어서야 다시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딸의 대학 합격을 기원하며.

하지만 딸은 재수를 하게 되었고,

나는 더 간절히 기도했다.

다행히 그다음 해,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한국으로 복귀한 뒤, 나는 딸의 합격만 생각했다.

그러던 중 코로나가 닥쳤고, 회사는 구조조정을 겪었다.

성당에 갈 수 없었지만,

유튜브를 통해 매일 미사를 드렸다.

그리고 매번 같은 기도를 했다.

“부디 제가 이직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서류 합격도 몇 번 있었지만,

최종 면접에서는 번번이 떨어졌다.


코로나가 진정된 후,

다시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매주 일요일 새벽 6시 30분 미사에 참석했다.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20년 넘게 보지 않았던 고백성사를 하고,

다시 영성체를 받았다.

그날, 나는 마치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었다.


얼마 후, 나는 원하던 회사에 리더로 입사했다.

그 후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매주 일요일 새벽 미사를 드렸다.

하루 한 번은 꼭 기도하려고 노력했다.


올해, 나는 글로벌 구조조정으로 퇴직을 맞았다.

너무 분하고 감정을 다스릴 수 없었다.

하소연할 사람도 없었다.


그때 내가 다시 붙잡은 것은 신앙이었다.

매일 신약성경을 읽고 완독 했고,

묵주기도를 드리고,

아침과 저녁마다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오늘도 이렇게 기도한다.

“행복한 아침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합니다.”


종교는 나에게 버틸 수 있는 힘,

그리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마음의 등불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날을 위해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