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새로운 출발

by 힐링다방

나는 한국 나이로 스물여섯에 결혼을 하고, 스물일곱에 아들을 낳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결정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다.

아들은 또래보다 조금 빨리 대학에 들어갔고, 취업도 빨랐다.

결혼을 늦게 한 친구들은 지금도 아이들이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런 걸 보면, 빠른 결혼이 내겐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들은 코로나 시기에 대학을 졸업했다.

그 시절엔 취업이 정말 어려웠다.

계속 떨어지던 인턴 자리도 우연히 합격하게 되었고,

신입사원으로 대기업 문을 두드렸지만 결과는 모두 불합격이었다.


그러다 호기심에 지원한 미국계 IT회사에서 뜻밖의 합격 소식을 받았다.

그곳에서 꾸준히 일하며 작년에 대리로 승진했다.

그 사실이 참 고마웠다.

불안한 세상 속에서도 스스로 길을 만든 것 같았다.


하지만 고객을 상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불평과 클레임 속에서 하루하루 긍정적으로 버티는 건

누구에게나 고된 일이었다.

아들은 종종 “힘들다”라고 말했고,

지난 2년 동안 여러 번 이직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서버, 클라우드, 반도체…

새로운 분야로 옮기기 위해선 공부도 필요했고,

그만큼의 경력도 필요했다.

현실의 벽은 높았다.


올해 5월, 내가 퇴직을 했다.

그런데 아들은 그런 나의 상황을 오히려 잘 이해해 줬다.

“아, 이제 정말 다 컸구나.”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8월의 어느 날, 아들이 급히 전화를 걸어왔다.


“아빠, 회사에서 AI 때문에 우리 팀 일을 외주로 돌린대요.

인사팀에서 권고사직하라고 했어요. 어떡하죠?”


나는 예전 회사에서 여러 번 구조조정을 겪었던 터라

그 상황이 눈에 훤히 그려졌다.

그래서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 서명하지 마라. 버텨라.

다른 팀으로 전배를 요청해라.”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아들은 매일같이 화를 냈다.


“아빠, 나 빼고 다 사인했어.

이제 나 혼자 남았고, 밥도 혼자 먹어.

일이 두 배로 늘어나서 너무 힘들어.”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아팠다.

그 나이에 감당하기엔 벅찬 현실이었다.


그래서 내가 아는 헤드헌터 지인에게 아들을 연결해 줬다.

둘은 커피챗을 했고, 헤드헌터는 이렇게 조언했다.


“지금은 잠시 쉬면서 공부하고,

다음 기회를 준비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들은 나와 상의 끝에 그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회사는 2개월의 시간을 주었고, 퇴직일은 10월 중순으로 정해졌다.


솔직히 집사람은 걱정이 많았다.

“실업자가 둘이면 어떻게 하냐”는 불안이 느껴졌다.

나도 그 마음을 잘 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치 하늘이 돕는 것처럼

권고사직에 서명한 지 일주일 만에

헤드헌터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제안받았다.


그건 아들이 평소에 가장 가고 싶어 하던

미국계 반도체 회사였다.

그리고 결국, 합격했다.


아들은 어제 그 회사에 첫 출근을 했다.

힘든 시간을 잘 견뎌준 아들이 자랑스럽다.

세상은 냉정하지만,

결국 끝까지 버티는 사람에게는 다시 길이 열린다는 걸

아들의 모습을 통해 또 한 번 배웠다.


이제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수고 많았다.

이번엔 네가 나보다 먼저 ‘인생 2막’을 시작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