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페미니즘과 연애담

by 희미

애인과 만난 지 일 년을 향해가는 요즘, 나는 우리 연애의 성평등에 대해 자주 골몰한다. 애인을 처음 만났을 때 솔직히 나는 그의 이성애자 남성성에 끌렸다. 남성성은 까딱하면 왜곡된 성관념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최소한의 인권 의식’이 연애 상대의 기본조건이라 말하던 내가, 그의 외모와 플러팅에 홀딱 반해서 연애를 시작했음을 고백한다.(친구들은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는데, 그는 내 외적 이상형에 90% 이상 적합하다. 그중 한 명이 붙여준 애인의 별명은 인뽀(인소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BOY)...애인은 남다르게 감성적이다.)


다행히 애인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문제에 관심이 많고, 새로운 지식 습득과 토론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조정할 줄 아는 사람이다. 같이 퀴어 퍼레이드를 갈 수 있고, 환경 문제를 실천적으로 고민하며, 식단에 고기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려는 움직임을 지지하고 나의 이런 점을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이혼가정의 자녀라는 이유로 나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고, 페스코 정체성을 불편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최소한의 인권 의식은 연애를 지속하기 위한 필요조건이긴 했고, 최소한은 현실에선 최대한으로 읽어도 무방하다는 걸 알기에 애인을 참 잘 만났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배경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학창시절을 지긋지긋하게 성적에 집착하던 시절로 기억하는 나와 달리, 그는 자기 세계를 확장하던 즐거운 시절로 추억한다.(내가 6년 이상 고생한 세월을, 그는 5개월 압축(?)으로 해냈다. 재수 시절마저 잿빛으로 추억하지 않는 그의 십대가, 멘탈이 부럽다..) 그럼에도 우리는 SKY 대학 출신이라는 사회적 위치를 공유한다. 친구들의 배경이나, 커리어 탐색, 취미 생활을 이야기할 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덜컹이지 않는다. 집안에서 맏이로 아낌없이 사랑받았으며, 경제적으로 부족함을 모르고 자랐다는 점도 같다. 서울이 아닌 지방, 일반고 출신이라는 점도 편안한 동질감을 준다.


그와의 차이를 실감하는 순간은 다름 아닌,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떠올릴 때다. 육아와 결혼으로 30년 가까이 경력이 단절된 엄마를 둔 나는, “원한다면 언제든지 일을 그만둬도 괜찮다”거나, “가정주부를 희망하는 여성이 아직도 있다”는 말을 들으며 생각이 많아진다. 물론 그는 나를 위하는 마음으로 한 말이었고, 진지하게 굴 상황도 아니었음을 안다. 무엇보다 일을 열심히, 잘 해내는 내 모습을 특히나 좋아하고 응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돈 버는 가장이 가장 고생이고 주부는 애나 키우며 편하게 커피나 마시러 다닌다고 생각하는 아저씨들을, 질리게 목격하며 자랐다. 회사원으로 살아 보니 남의 돈 버는 일이 쉽지 않은 걸 이제는 안다. 그래도 직장 일이 백배 낫다는 게 성별과 세대를 막론한 내 일터의 중론이자, 목격하고 느낀 바다. 결혼 생활이 길어질수록 권력은 기울어지고, 이혼은 가정주부에게 지금까지 일궈온 모든 것을 잃는 일이 되기 쉽다. 세상에는 가정주부 배우자를 평등하게 대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애인이 그런 가정에서 자랐다는 사실은 나를 안심하게 만든다. 나 또한 그에게 “내가 먹여 살리지 뭐”라는 말을 뱉곤 한다. 나와 다르게 그는 타격감이 없다. 소위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기에, 미래에 그 역시 좋은 직장에서 넉넉한 연봉을 받을 것을 알기에, 남성이기에 가정주부의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다를 것이다.


나의 어설픈 페미니즘은 꼬리를 물고 고민을 증식한다. 어쩌다 나는 뛰어난 (감정노동을 포함한) 돌봄 능력을 갖게 됐는가. 부정적인 감정을 필터링해서 표현하는 능력이 어째서 남성에게는 기본값이 아닌가. 피임 문제를 향한 걱정과 불안은 왜 기울어있는가(애인은 피임에 무심하지 않으며, 내 걱정과 불안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그는 연애 초기 비뇨기과 방문과 가다실 접종을 군말 없이 빠르게 마쳤다.) 젠더 이슈는 왜 늘 설명이 길어지는가.


나는 그가 싫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꾸 더 좋아진다. 그가 부족함을 인정하기에, 자신의 발전을 애교와 함께 꾸준히 어필하기에, 자격지심이나 자존심을 부리지 않고 나를 지지하기에, 엉엉 우는 모습을 무방비로 내보이기에, 내겐 선크림만 발라도 예쁘다면서 나를 위한 꾸밈노동에 열심이기에... 결국 그가 이성애자 남성성과 멀어질수록 그를 더 가깝게 느끼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봉착했다! 그가 어설픈 만큼이나, 나 또한 어설프기 짝이 없고, 그래서 우리는 더 괜찮은 서로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