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교, <오늘도 당신이 궁금합니다>를 읽고 쓴 글
글을 읽고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열두살부터 다이어리를 썼지만, 스케줄러의 기능을 할 뿐 일기는 가뭄에 콩 나듯 썼다. 일기보다는 편지를 더 많이 쓰고 읽었다. 지금도 내 스케줄러에는 친구들이 몰래 남기고 간 흔적이 남아있고, 그 시절의 흔적은 작은 하트 하나라도 소중하다.
수학을 가장 좋아했고, 사회보단 과학을 좋아하고 잘했다. 국어가 큰 구멍이라 수능 직전까지 많은 시간을 쏟았다. 국어는 타고나거나 성장과정에서 자연히 길러지는 능력으로 커버하는 과목인지라, 책을 많이 읽지 않은 나는 고전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쩌다 정치학에 꽂혀서 문과를 갔지? 친구따라 학내자치언론 기자 활동을 시작해서 데스크 여럿 귀찮게 했지, 친구들의 발제와 토론을 들으며 말과 글로 승부 볼 인생은 아니라고 생각했지.... 어쩌다 방송국에 취직해서 원고를 읽고 방송쟁이들의 말에 감놔라 배놔라 하고 있지?
여기까지 흘러온 발자취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덕분에 내 언어로 말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된 건 분명하다. 여전히 독서량은 한없이 부족하고 언어도 세련되지 못하다. 부지런히 남의 글을 읽고 그들의 상상력과 언어를 빌려 성장하고 있다.(누군들 아니겠냐만, 설전의 판을 상상하고 구현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작가님의 원고를 읽고 수정사항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내가 너무 부족해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전공은 밥벌이와 거의 무관하지만 문이과는 그러해서, 친구들과 나는 하나마나한 상상을 하곤 한다. 돌아가면 다시 문과 갈 거야? 정외 전공할거야? 답은 각양각색이다. 돈이 최고라면 로스쿨을 갈 바에야 의대를 가야지, 그래도 나는 전공 공부가 너무 재밌었어, 본성을 거스를 순 없는 법이지 등등. 그리고 나의 대답. "그래도 빨간약을 먹을 거야".
어린 시절에는 부모를 비롯해 주변 어른을 보고 배운다. 나의 부모는 용감했고, 자유분방했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보고 자란 것보다 큰 꿈을 꾸게 했다. 신문을 구독한 적도 없었던 것 같고 정치 얘기를 나눈 기억도 없지만, 하여튼 나는 정치학도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당탕탕 현실이 됐다. 인생은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이라는 말은 반만 맞다. 아니, 예측할 수 있는 건 반에도 못 미친다. 정치인의 꿈을 꾸던 나의 그릇은 그만큼 크지 않았고, 다만 나는 나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사회가 정한 틀을 깨는 사람은 아니었다. 좋은 브랜드의 옷을 사주었고, 더 비싼 아파트와 차를 사는게 성공이라 믿었으며, 정상가족의 구성원으로서 각자 역할에 충실했고 그러길 요구했다. 나는 그들 또한 옳지만,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다른 것 같다고, 나는 당신들과 다르게 살고 싶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초중고 시절에 미친 선생들도 많았고, 늘 착할 필요가 없었으며, 때론 반항을 해야했다. 인생은 남을 꼭 이겨야 승리하는 게임이 아니고, 나는 여성이며, 지구는 위태롭고, 인간종은 징그럽다. 이 모든 걸 정치학이 안겨줬다고 말할 순 없지만, 알을 깨고 나온 시작은 정치를 전공으로 선택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나는 방송국을 직장으로 선택했다. 선명하게 말하기보단 고민하느라 머뭇거리는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며, 고민을 뭉개지 않기 위해 좋은 자극을 찾아 헤맨다. 물론 여기에도 인류애를 상실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으며, 인간은 입체적이라 어떤 면에서 아주 존경하는 사람의 결정적인 단점을 마주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나도 그렇겠지만.
함께 빨간약을 먹은 친구들과 동료들은 내가 일군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더 나은 사람이자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나는 사랑받는다. 가깝고 먼 남에게서 발견하는 싫은 점은 언젠가 내가 지닌 모습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지금 내 모습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그 단면으로 그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사람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부족한 내가 이만큼 성장한 걸 지켜본 장본인이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람을 믿고, 세상이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 글을 쓰고 싶어지게 만든 장은교 기자님...작가님께 감사하다. 언시생 시절 신문에서 매일같이 이름을 마주한 기자님을 대면하는 기분이 이상했다. 작가님처럼 하늘이 점지한 글쟁이는 못 돼도, 누구나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살기 마련이기에, 써주시는 좋은 글을 따라 읽고 솔직하게 써나갈게요
#오늘도당신이궁금합니다 #장은교 #자기만의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