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안경과 막내삼촌
「나: 나 내일 엄마집 가.」
「남동생: 그랴」
「여동생: 뭔 일 있어?」
「나: 엄마 안경알 바꿔서 쓰려고. 겸사겸사 막내삼촌 데리고 봉안당 구경도 시켜주고.」
「여동생: 그려. 쓸 수 있는 거 쓰면 좋지. 」
엄마와 함께 자주 들르던 안경집 아저씨가 엄마 빈소에 와주었을 때 나는 너무 놀랍고 감사했다. 물론 삼촌 친구라 서로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장례까지 와 줄거란 생각은 못했다. 코로나 시국이라 물도 한잔 안 드시고 절만 올리셨는데, 그런 위험성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와준 것이 더 감사했다. 그래서 엄마 일이 대충 정리가 되면 인사라도 한번 드리고 싶었다. 아빠도 남동생도 일 나가고 없는 집에 들어가 대충 가방을 내려놓고 엄마 안경만 든 채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장례식 끝나고 한번 들르려고 했는데 이제 왔네요.''
''살 빠진 것 같네….''
''뭐 그렇죠. 엄마가 쓰던 안경 알만 바꿔서 쓸 수 있을까요?''
''되고 말고.''
시력측정을 끝낸 아저씨가 조심스레 물었다.
''집에 아예 내려왔나?''
''아뇨. 주말에 잠깐 온 거예요. 삼촌이 아직 납골당에 못 가봐서 같이 가려고요.''
''어느 삼촌?''
''막내삼촌이 아파서 장례식장도 못 오고 납골당도 못 가봤거든요.''
''아, 준이…. 그래…. 잘 갔다 와요. 안경은 내일 세시반 지나서 찾으러 오고.''
밝게 인사하고 안경점을 나와 다시 터덜터덜 엄마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없는, 한기가 도는 집에서 TV를 켜놓고 혼자 앉아있자니 TV 받침대 밑에 있는 어항이 눈에 띄었다. 장례가 끝나고 청소해야지 했는데 두 달이 지나도록 방치했다. 혼자 있는 엄마가 심심하다며 물고기라도 있으면 좋겠다던 말에, 몇 년 전 내 지인이 쓰지 않는다며 준 어항을 받아다가 엄마집에 갖다 놨던 거였다. 그 후로 단 한 번도 어항에 물고기가 없었던 적이 없었다. 장례를 치르고 막 돌아왔을 때에는 그래도 20마리 정도는 있었던 것 같은데, 안보는 사이에 7마리만 남았다.
모형나무와 자갈과 물고기를 다 꺼낸 어항벽을 수세미로 뽀득뽀득 씻었다. 자세히 보니 모형나무에 하얀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나무와 자갈도 뽀득뽀득 씻어 다시 어항에 넣고 물고기까지 새로운 물에 옮겨주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도 집에 있는 물고기 밥을 잘 주라고 신신당부를 한 엄마였는데, 그 아이들을 너무 방치한 것 같아 미안했다. 원래 있던 자리에 어항을 돌려놓고 물고기의 움직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밥을 아주 조금 뿌려주었다. 20~30마리 있을 때에는 뿌리기 바쁘게 먹어치웠었는데 이제 남은 7마리의 물고기는 아주 천천히, 얼마 되지도 않는 밥이 바닥에 다 떨어지도록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이제 우리도 밥을 먹어야지. 냉동실을 열자 개별포장 떡갈비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당연히 남동생이 사놨으려니 했는데 아니었다.
''부산이 보냈드라.''
''그렇게 형제가 중하면 거기 가서 살라고 해. 왜 엄마도 없는 집에서 아직 버티고 있는 건데.''
나는 그쪽 사람들만 생각하면 화가 났다. 사람을 죽이겠다고 칼을 들고 설치더니 이제 엄마가 없는 곳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그렇게 형이 중하면 데려가요. 신경 좀 끌 수 있게 눈앞에서 치워달란 말이야.
다음날 막내삼촌을 데리러 갔다. 나와 12살 밖에 차이 나지 않는 친구 같은 삼촌인데, 이제 휠체어가 없으면 아무 데도 가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 내 차가 있는 곳까지 휠체어로 이동한 뒤 숙모에게 의지해 뒷좌석에 올라탔다. 봉안당에 도착해 다시 휠체어를 타고 엄마가 있는 곳까지 들어갔다. 나는 삼촌이 또 많이 울 것 같아 걱정했는데, 우리가 있는 곳 몇 칸 뒤에 있던 누군가가 너무 큰 소리로 목 놓아 울어서 오히려 우리가 머쓱하게 눈치를 보게 되었다. 삼촌과 숙모와 나는 엄마 이름만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눈빛을 교환하며 그 자리를 떴다.
이렇게 누가 밖으로 꺼내주지 않으면 외출도 쉽지 않을 텐데, 나는 삼촌에게 뭐 먹고 싶은 게 없냐고 물어보았다. 숙모가 일 하러 나가면 절대 혼자서 밥 챙겨 먹을 위인이 아닌 것도 알고 있으니 내가 왔을 때 뭐라도 좀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늘 항상 언제나 당당하던 삼촌인데 몸이 아프고 사회활동을 못하게 되니 기가 많이 죽었다.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근처에 있는 닭 장작구이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럼 가야지.
평소에는 차가 없으니 숙모가 휠체어에 탄 삼촌을 데리고 한 시간이 넘는 길을 걸어와서 먹고 간다고 했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둘은 진짜 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평소에도 엄마 얘기를 가장 많이 해주었던 막내삼촌이 그날도 옛날 얘기를 줄줄 읊어주었다. 큰누나 얘기를 하는 삼촌 눈에서도 사랑이 느껴졌다. 엄마한테 막냇동생은 자식과도 같은 존재였고, 삼촌에게도 큰누나는 엄마 같은 존재였다. 그 와중에 삼촌이 언니에게만 몰래 용돈을 주었다가 엄마한테 혼난 이야기를 신나게 하길래, 나는 삼촌한테 용돈을 받아본 적이 없어 웃을 수 없다고 했더니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때는 첫 조카라서 언니만 싸고돌았다고. 근데 다 크고 나니 제일 많이 찾아와 주는 건 둘째인 너라고.
실컷 많이 먹고 많이 웃고 가게를 나와 삼촌은 담배를 태우고 숙모는 커피를 마셨다. 나는 둘 다 하지 않아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남동생에게서 집에 언제 오냐고 전화가 왔다. 막내삼촌 집에 보내놓고 안경 찾아 들어가겠다고 했더니, 중간삼촌과 밥 먹으러 나가자고 했다.
엄마 안경테에 내 시력을 맞춘 안경을 껴보고는 역시 엄마랑 제일 닮은 자식은 나라고 생각했다.
''막내삼촌이랑 납골당 갔다가 밥 먹고 왔더니 이번에는 중간삼촌이 왔다 그래서 또 밥 먹으러 가야 돼요.''
''아! 준이한테 내 전화 좀 받으라 캐. 내가 동창회장 할 때는 연락도 잘 받디만 딴사람으로 바뀌고는 내 연락도 안 받는다.''
''예. 꼭 전할게요~''
안경을 찾아 집에 돌아가는데 남동생이 동네 횟집에 있으니 그리 바로 오라고 했다. 장작구이집에서 포장해 온 닭을 엄마 사진 앞에 놓아주고 갔다오께 인사를 했다. 횟집에 들어서자 삼촌과 남동생이 보였고 안쪽에 아빠도 뒤늦게 보였다. 그래, 어쩐지 갑자기 웬 횟집인가 했다.
''아까는 운전해야 돼서 술을 못 마셨어.''
우스갯소리를 던지고서 술도 안 마시는 내가 갑자기 맥주를 들이켠 것이 스스로도 참 별일이라 생각했지만 약간 화가 나는 것도 있었다. 주변사람들은 전부 엄마가 없는 아빠를 걱정했지만 우리는 달랐다. 아무리 엄마가 아끼는 동생들이라고 해도 아빠를 불쌍하게 대하는 말까지 다 받아주고 싶지는 않았다. 닭구이를 먹고 온지라 배가 부른데도 맥주와 광어회는 계속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평소 주량보다 맥주를 더 많이 마셨는데도 취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아참 삼촌, 안경 아저씨가 전화 좀 받으래. 동창회 좀 나오래.''
''아니, 가가 할 때는 척척 잘해서 괜찮았는데 사람 바뀌고는 별로라 싫다.''
''에이, 딴사람 연락은 안 받아도 안경 아저씨 전화는 받아라~ 그 아저씨가 엄마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지나가면서 인사도 좀 해라. 친군데.''
''귀찮다마."
''꼭 받아래이. 나는 전했다이?''
횟집에서 자리를 정리하고 나오는데 남동생이 피자 주문을 하겠다고 했다. 횟집 바로 옆에 엄마와 자주 들렀던 카페였다. 카페에 처음 오는 삼촌에게 '여기 사장님이 엄마한테 잘해주셨어.'하고 바로 주문을 했다.
''스페셜이요!''
''아이고~''
''삼촌하고 회 먹으러 왔다가 피자 사가려고요~ 아, 이쪽이 엄마 동생!''
''외삼촌이시구나~ 아니 근데 회 먹으러 왔는데 피자?''
''이 근처 오면 무조건이죠~''
''알았어~ 7시에 찾으러 와요~''
남동생이 찾아온 피자와 함께 또 맥주를 마셨다. 정말 이상하게도 취하지를 않았다. 이 정도 마시면 벌써 고꾸라져 자고 있어야 하는데 잠도 오지 않았다. 결국 밤을 꼴딱 새우고 아침에 잠이 들어 대낮까지 누워있었다. 누운 채로 웹툰을 보다가 동생이 움직이는 소리가 나서 밖을 내다보았다. 어제 엄마상에 올렸던 닭구이를 다시 에어프라이기에 돌리고 있었다. 나는 돌아가는 기계에 시선을 맞추고 멍 때렸다. 동생과 어제 먹고 남은 떡볶이, 피자, 닭구이를 몽땅 펼쳐놓고 먹기 시작했다.
''맥주 더 없냐?''
''어제가 마지막이었음. 사이다 콜라 있다.''
''암거나 줘.''
평소에 다 먹지도 못할 만큼의 음식을 때려 넣고 또다시 방에 들어가 누웠다. 어차피 지금 어중간하게 가봐야 퇴근길 교통대란에 끼는 것 밖에 안 되니 내일 아침 일찍 가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