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정글
운전을 하고 있는데 보험회사 조사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존에 항암치료를 하고 있었던 엄마가 원래의 지병으로 사망한 건지, 코로나가 직접 원인이 되어 사망한 건지, 사망원인에 따라 암보험과 일반보험에서 각각 지급될 보험금이 달라지기 때문에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었다.
''코로나가 사망에 기여한 바가 더 높을 거란 결론이 나왔습니다. 재해 사망으로 인정될 경우 보험금은…….''
''그렇군요.''
''추가로 더 알고 싶은 내용이 있으신가요?''
''저희는 사망원인을 정확히 알고 싶은 거라 이 정도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상하긴 했지만 결국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코로나 때문이라고 하니 아빠를 향한 분노가 더 치솟아 올랐다. 아빠만 아니었어도, 아니? 아빠가 쓸데없이 술 먹고 돌아다니지 말라는 우리 말만 들었어도, 엄마는 지금까지처럼 코로나 상황을 이겨내고 종식될 때까지 방사선 치료에만 집중했을지 모른다. 하필 운전하는 도중에 걸려온 전화가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제 보험까지 다 정리되면 진짜 신경 써야 할 일이 없는 건가. 나도 그냥 이거 저거 다 때려치우고 엄마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좋아했던 식물이나 키우다 죽을까. 이제 엄마가 없으면 아무도 돌봐주지 않을 텐데.
그럴 거였다면 진작에 그렇게 했겠지, 내 성격에 퍽이나 조용히 식물을 키우겠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날이 따뜻해지자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시장에도 꽃화분과 여러 가지 식물의 모종이 잔뜩 나와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가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도 잠시, 엄마는 사실 시장에 나와있는 모든 식물을 거의 다 키워보셨던 것 같다. 식물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는 내가 처음 보는 식물을 사주겠다고 하면 이미 예전에 키웠을 때 어떠어떠하여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쉼 없이 얘기했다. 되려 그 식물을 파는 상인이 놀라며 한 수 배우기도 했었다. 우리 남매 넷의 성격이 제각각이지만 좋아하는 것에 대한 취향이 확고한 것은 엄마의 유전자를 따르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코로나로 집 밖에 나가는 것이 불편하던 시기에 나는, 내가 혼자 사는 집도 아닌 엄마집에 갇혀 있었다. 심심한 김에 엄마가 마당을 가꾸는 것에 동참하였고 이것을 유튜브에 올리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마당 가꾸는 장면을 찍어 '엄마의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업로드했고 내 유튜브는 40~50대 남자 유입자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처음에는 아기자기한 정원의 느낌이 있었는데 점점 엄청난 규모를 뽐내게 되면서 정원에서 정글로 타이틀이 바뀌었다. 하지만 이제는 엄마 없는 엄마의 정글이 되었고, 아무도 가꾸는 사람이 없는, 말 그대로 방치된 정글이 되었다. 나에게 남은 거라곤 엄마의 얼굴과 목소리가 담긴 유튜브뿐이었다.
문득 엄마집 창문을 열어 창고 쪽에 있는 도라지밭을 보았던 날, 어제 잠깐 봤을 때보다 잡풀의 줄기가 엄청 많이 올라온 것 같아 보였다. 오후 4시, 슬슬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목장갑 한 켤레와 호미를 들고 앞마당의 잡풀을 뽑기 시작했다.
''잡초 뽑나?''
''어. 그냥 뭐.''
''그려.''
예전부터 내 말에 사사건건 태클을 걸던 남동생도 이런 것에는 크게 말을 얹지 않았다. 돕지는 않더라도 태클을 걸지 않는 게 서로 편하지. 듬성듬성 보기 싫게 자란 잡풀을 뽑고 있는데 아빠가 들어왔다.
''그거 또 나는데 뭐 하러 뽑나.''
또 나겠지. 근데 이 집이 이렇게 깨끗하게 변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는지 알아? 엄마랑 나랑 하루에도 몇 시간씩 벌레 물려가면서 뽑고 또 뽑아서 정리한 마당이라고. 지 입에 들어갈 것만 키우기 바빴지 마당에 잡초 한번 뽑아본 적도 없으면서 이제 와서 아는 척하지 마.
마당의 보기 싫은 부분을 적당히 정리하고 정해지지 않은 땅에 그냥 피어버린 매발톱꽃을 뿌리째 뽑아 큰 화분에 옮겨 심었다. 엄마는 매발톱꽃을 색깔별로 모아 화단을 만들었는데 다시 보니 그 자리가 영 마땅치 않아 빈 화분으로 옮겼다. 엄마가 징글징글하다며 다 뽑아버리라고 했던 내 딸기 넝쿨도 내가 가져갈 요량으로 적당히 뽑아 작은 포트에 옮겨 심었다. 이 집에 처음 이사 왔을 때부터 여기저기 퍼져 있던 자소엽을, 나는 색깔이 예쁘다며 남겨두길 바랐었지만 엄마는 본인이 마음에 두고 키울 것이 아니면 아무리 좋은 약초라고 해도 다 뽑아버렸다. 그렇게 엄마가 좋아하는 것으로 잔뜩 채웠던 앞마당인데 이제 아무도 돌보지 않게 되었다.
작은 풀은 다 뽑았으니 이제 큰 풀을 뽑자. 도라지밭은 구석진 곳에 있어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관심 밖의 영역인 것이 마치 우리집 안에서 내 위치 같았다. 도라지 줄기 사이사이로 잡풀이 길고 뻣뻣하게 솟아있었다. 호미를 땅속으로 깊게 콱 박아 넣었다. 한 번에 뿌리까지 뽑으려고 손끝에 힘을 너무 주었는지 나중에는 손톱이 아팠다. 뽑은 잡초를 모아 마당으로 나오다 보니 엄마가 아끼고 내가 좋아했던 펜스테몬도 쑥쑥 자라고 있었다. 꽃이 잘 안 핀다고 걱정하던 작약도 아주 크고 화려하게 피어있었다. 내 기분이 뭣 같아도 계절상의 봄은 당연한 듯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