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반지
좀처럼 약속이 없었던 어느 주말, 최근에 이사한 여동생집에 들르기로 했다. 그동안 정신도 없고 생각도 없이 지내서 언니가 조카 돌반지를 고를 때에도 나는 그저 '귀엽네'하며 맞장구만 치고 있었다. 그런데 요 며칠 엄마가 꿈에서 손주를 안고 있는 모습이 자꾸 보여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그 상태로 주말에 조카를 보러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 뒤숭숭했다.
백수의 통장 잔고를 털어 금 한 돈짜리 돌반지를 샀다. 금이라면 이렇게 작은 것부터 쉽게 살 수 있었는데, 엄마가 작은 금 하나 갖고 싶다고 했을 때 얼마나 큰걸 해주려고 당장 사주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가야, 이건 엄마쪽 할머니가 해주시는 거야.
이모가 할머니 대신 주는 거란다.
이제는 사진밖에 남아있지 않은 엄마쪽 할머니가 너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기억해 주면 좋겠어.
내가 조카와 노는 동안 여동생 부부는 집안 여기저기를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는 동생과 다르게 아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첫 조카이자 엄마가 애틋해했던 아이라고 생각하니 마냥 귀여웠다. 한참 집안일을 보던 부부가 드디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와…. 언니 있으니까 우리가 일을 같이 볼 수가 있네. 평소에는 우리 번갈아서 일 보거든.''
''그래. 가끔 이렇게 숨 쉴 틈이라도 있어야지.''
원해서 낳은 아이 하나를 부부가 같이 돌보면서도 (비율은 다르지만) 이렇게 힘든 부분이 있는데 엄마는 아이 넷을 혼자서 키워냈다. 우리집에 아빠라는 허울은 존재했지만 실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경상도 장녀인 언니가 동생 기저귀를 갈고 달래는 동안 차녀인 나는 언니가 동생을 돌보기 수월하도록 옆에 붙어 이것저것을 도왔다. 그리고 엄마가 우리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자기의 일을 스스로 알아서 척척척하는 어린이가 되어 있었다. 엄마가 남들에게 우리 얘기를 할 때는 '애들이 다 알아서 다 한다'는 말이 빠지지 않았다. 기껏해야 5살, 6살이었다.
여동생과 조카는 잘 시간이 되어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동생의 배우자인 제부와 맥주 한 캔을 땄다. 급하게 오느라 돌반지를 미리 맞추지 못하고 집 바로 옆 금은방에서 사 왔다는 우스개 소리를 하다가 둘째 계획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왔고 평소에 늘 웃던 제부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첫째 때 이렇게 사랑 다 주고 혹시 둘째 때 감흥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도 돼요.''
''나는 내가 둘째잖아. 둘째가 되게 서러운 게 많거든. 그러니까 둘째 낳으면 잘해줘야 돼!''
나는 왠지 모르게 문득 엄마와 TV를 보다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엄마는 나를 왜 그렇게 미워했어?''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참 황당한 질문이겠다 싶지만 엄마는 그게 무슨 말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느 할매랑 똑 닮아서 그랬지….''
''내가 할마시랑 닮은 게 내 잘못도 아닌데 왜 나를 미워해? 그리고 내가 할마시랑 어디가 닮았는데?''
''니 어릴 때 느그 아빠 담배 심부름 시키노면 그 담뱃집 할마시가 노상 하는 말이, 저거는 지 할매 똑~ 닮았다 그래서….''
''아니, 엄마. 인간적으로 내가 생긴 거는 엄마랑 제일 닮았지. 내가 초등학교 졸업식 때 엄마랑 같이 찍은 사진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제? 엄마가 맨날 니 주서 왔다 그래서, 니가 없었어야 됐다고 그래서 나는 진짜 내가 주서온 자식인 줄 알았다고.''
''……. 사실 니 가졌을 때가 제일 힘들었어. 그래서 그랬어.''
엄마가 언니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회복도 못한 몸으로 나를 가졌고, 엄마는 어쨌든 나를 낳기 위해 산부인과에 아직 아기인 언니를 들쳐업고 갔다고 했다. 집에는 아빠쪽 할머니가 있었는데 그 잠시동안 아기를 봐주기가 싫어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산부인과에 엄마를 혼자 보냈다고 했다. 그 더운 8월에, 애를 업고 애를 낳으러 왔다고 하니 병원 의사와 간호사들이 모두 당황해서 일단 포대기에 돌돌 말려있는 언니부터 받아 들고는 엄마를 겨우 침상에 눕혔고 언니는 엄마가 나를 낳는 동안 간호사들이 봐주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또다시 아들이 아닌 딸을 안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엄마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자기 밥만 챙겨 먹었다고 했다.
나에게 젖을 주는 것도 못마땅하게 보았다는 사람이 엄마 입에 들어가는 밥을 유쾌하게 생각했을 리 없었다. 결국 엄마는 몸을 풀기는커녕 나를 낳고 돌아와 언니를 업은 채 나까지 안고 집안일을 했다고 했다. 보다 못한 엄마쪽 할아버지가 새벽에 할머니와 들통에 미역국을 끓여다 날랐고, 그나마도 눈치를 보며 겨우 한 숟가락 뜨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했다. 나를 가졌을 때, 그리고 나를 낳고 나서, 엄마는 가장 많이 굶었다고 했다. 물론 언니와 나도 집안일에 치이는 엄마의 젖을 제대로 한번 물어보기 힘들었다고 했다.
''어릴 때는 잔병치레 하나 없디만…. 잘 못 먹고 커서 네가 다 커서 이래 아픈가 싶고….''
''잔병치레가 없었던 게 아니라 나한테 문제가 생기면 엄마가 일 하다가 나와야 되니까 참았던 거지…. 남자애가 돌 떤져서 내 이마 빵꾸났을 때도 엄마 일하고 있어서 일부러 연락 안 하고 쌤이랑 병원 갔었는데 몰랐제?''
''그때는 아를 너이를 키워야 되는데 느그 아빠 맨날 사고 치면 돈 나올 구멍은 없지, 그렇다고 느 아빠 월급이 많기를 했나….''
''언니랑 나랑 헌혈 못 하는 거 어릴 때 못 먹고 커서 그런 건가? 우리 그래서 식탐도 있잖아. 하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화를 마쳤지만 엄마는 이제야 말할 수 있었던 사실이 무거워 보였다.
''제부, 둘째 낳고 힘들면 내가 더 자주 올 테니까 잘해줘야 돼. 알았지?''
''저는 형제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노력할게요.''
''그래. 둘째 잘 해줘래이….''
아직 생기지도 않은 둘째를 걱정하며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