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한동안 또 괜찮나 싶더니 수포가 올라왔다. 건드리면 아프고 거슬려서, 자연스럽게 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눕는 것이 가장 편해졌다. 면역력이 조금 떨어진다 싶으면 가차 없이 수포가 보글보글 올라왔다. 엄마가 그나마 일상생활을 하다가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했던 게 대상포진에 걸린 때부터였던 것 같은데, 앉지도 눕지도 못할 정도로 스치기만 해도 뼈까지 아프다고 했었다.
''니도 대상포진 주사 맞아라.''
''뭐 하러.''
''니 맨날 수포 올라 온다매. 딴 아들은 모르겠고 니가 엄마매로 면역력 약하니까 주사 맞아라.''
''대상포진 걸리면 앉지도 못한다매. 나는 그 정도는 아인데.''
손에 생긴 작은 수포를 보면서 엄마와의 대화를 회상하다가 문득 수요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웃긴 거 들어야지.'라며 팟빵 어플을 열어 비밀보장을 켰다. 그날 하필 가정의 날 특집 '땡땡이가 땡땡이에게' 방송이 준비되어 있었고, 엄마를 떠나보낸 땡땡이의 사연이 소개되면서 나는 방송을 끄고 눈을 감았다. 차마 그날은 그 방송을 듣지 못했고 며칠이 지나서야 겨우 들을 수 있었다. 이미 사랑하는 사람을 떠내 보낸 적이 있는 땡땡이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땡땡이에게 해주는 위로의 말이 전부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돌아가시기 전에 말다툼한 것이 후회된다는 사연에 나는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
''집에 안 오냐. 언니도 동생도 다 왔다 갔다.''
''어차피 나 집에 가도 엄마는 집에 없을 거잖아.''
''안 그래도 전에 니 소개해줬던 @@이가 니 마음에 든다고 또 보고 싶다는데 왜 다시 안 만나노.''
''엄마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그라나.''
''엄마 아는 사람 아들이지.''
''나 중학교 때 왕따 시켰던 애 오빠야. 엄마는 나한테 관심도 없지.''
''아니, 그거는 니가 말을 안 하니까….''
''말하면 뭐 어떻게 해주긴 할 거가? 나 하고 싶다는 것도 다 못하게 하고 고등학교 그만두고 싶다고 할 때도 죽는다고 드러누운 사람이 엄마 아니었나.''
약속 다 미루고 온 나를 집에다 불러놓고 정작 늘 집을 비우는 엄마에게 심통이 나있던 나는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덧붙여 큰소리를 냈다. 엄마를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무관심과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던 내 안에 쌓여있던 것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왔다. 화를 내다보니 나도 모르게 화가 점점 커졌다.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버겁게 느껴졌다. '됐어. 끊어.' 한마디를 남기고 그렇게 나는 일방적으로 엄마의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 두어 번의 전화가 더 울렸지만 나는 받지 않았고, 그렇게 자주 하던 통화를 몇 달 동안이나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싸움에 대한 화해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엄마를 보낼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