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유자녀 기혼 언니들과 차를 마시다가 난데없이 연애, 결혼, 출산 이슈가 튀어나왔다. 이 모임에서 유일하게 아직 싱글인 나를 두고 왜 연애를 안 하는지 결혼 생각은 없는지 질문이 들어왔다.
''난 우리 중에 니가 제일 먼저 결혼할 줄 알았다.''
''그래? 나는 결혼해야겠단 생각 자체를 안 하는데.''
''언제가 되더라도 니는 꼭 결혼할 것 같았거든. 우리랑 있으면 야시도 잘 떨고 하니까.''
''그거야 언니들이니까 치대고 하는 거지. 내 남자 앞에서 까칠해지는 거 모르나?''
''니가 우리 앞에서 하는 거 반만 해도 벌써 결혼하고 아도 둘은 있을낀데.''
''엄마가 뭐라 안 하시나?''
십 몇년을 가까이서 지켜보던 언니들은 내 애교가 아깝다고 했다. 언니들 앞에서만 무한히 발현되는 애교를 남자 앞에서는 못하는 게 문제라고도 했다.
''니도 빨리 결혼해야지.''
''안 한다고!''
엄마랑은 결혼 얘기만 하면 큰소리로 이어졌던 때도 있었다.
''아, 엄마! 결혼 소리 좀 그만 하지? 엄마는 결혼해서 쎄빠지게 고생해 놓고 내한테 결혼하라는 소리가 나오나?''
''느그들 중에 제일 싹싹하고 가끔 남자친구 얘기도 하고 카니까 제일 먼저 하겠지 싶었디만.''
''그게 언제 적 얘긴데. 내 결혼 안 한다.''
그러다가 우리 4남매 중 유일하게 여동생이 결혼을 했다. 제부 말을 듣자 하니, 구구절절 로맨스가 따로 없었다. 제부가 내 동생을 꼬시기 위해 주변 남자들에게 누구누구는 내 거니까 눈독 들이지 말라고 했다던가. 까탈시런 여동생의 비위도 참 잘 맞췄다. 한 번씩 핀트가 어긋나서 여동생을 열받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정도면 같이 살기에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그래. 우리 중에 하나라도 했으면 됐지, 하고 까방권을 획득한 듯이 한동안 결혼하란 소리가 잠잠해졌다가 동생이 아이를 가졌을 때쯤인지 엄마는 나에게 다시 결혼하란 얘기를 했다.
''저짜 위에 아파트 사는 남자가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돈도 잘 번다 카드라. 함 볼 생각 없나?''
''얼굴은?''
''니 얼굴 보는 거야 잘 알지. 그 정도면 괜찮지 않나 싶어서 얘기하는 거라.''
''돈 많은 건 알겠고. 명은 짧다 카드나?''
''머카노, 가시나가. 니는 몸도 아픈기 나중에 혼자 우얄라 카노. 빨리 결혼해라.''
''돈 많고 명 짧은 남자 있으면 선 본다니까~?''
''무슨 그런 말이 있노.''
''뭐 결혼만 하면 되는 거 아니가? 내 사주에 이혼수도 두 번 있다는데 일단 결혼을 해야 이혼도 하지.''
''미칬나….''
누가 들어도 조금은 이상한 대화를 나는 능청스럽게 이어갔고, 이 정도 했으면 포기할 만도 한데 엄마는 포기가 안 됐는지 또 같은 얘기를 여러 번 꺼냈다.
''니가 결혼을 해야지….''
''할 건데? 여자랑.''
''허어….''
엄마는 그 후로 다시는 결혼 얘기를 직접적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동생이 아기를 데리고 집에 올 때마다 은근히 눈치를 주었다. 혼자 아파서 죽든 굶어서 죽든 그냥 사는 동안은 등 떠밀려 억지로 결혼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늘 생각했다. 이제 결혼하라고 잔소리하는 엄마도 없고 이런 대화를 해야 할 일은 잘 없겠지.
여동생이 아직 결혼하기 전이었나, 한 번은 엄마집으로 중매를 서주는 할머니가 왔었다고 했다. 워낙 작은 시골 동네라 누구 집에 자식이 몇인지 안 물어봐도 뻔할 뻔자였으니 딸 셋이나 되는 우리집이 타깃이 되지 않을 리 없었다. 명절에 집에 들렀던 나를 보고 남자를 소개해주겠다 하셨던 것 같은데, 나는 그날도 엄마와 말다툼을 해서 금방 나 혼자 사는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탈색기운 하나 없는 검은 긴 머리를 휘날리며 다녔고, 늘 같은 또래보다 할머니들에게 인기가 있는 인상이었다. 그래서 나를 점찍으셨던 거겠지.
하지만 나는 이미 엄마와 싸운 뒤 사라져 있었고, 엄마집에 남아있던 언니에게 그 흉악한 손길이 뻗쳤다. 언니는 보라색이 도는 염색머리를 하고 있었고, 그 중매쟁이 할머니가 소개해준 남자를 만나고 와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후기만 들려줄 뿐이었다. 그러자 엄마는 나에게 했던 말들과 다르게 언니에게는 '니 머리 보고 뭐라 하는 남자는 됐다캐라. 혼자 살아도 괜찮다'라는 말을 했다.
엄마는 왜 나의 결혼에 그렇게 온 마음을 쏟았던 걸까. 남자 없이는 못 살 것 같았던 딸내미가 명 짧은 남자 타령이나 하고 있는데 이상한 걸 몰랐을까. 여자랑 결혼하겠다는 최후의 선언을 받아들이는 척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마트 안에 있는 어린이 옷가게를 지날 때마다 항시 나를 노려보거나 회유하는 눈빛을 했다. 항상 그런 엄마에게 반항심 가득한 말투로 대응하고는 오늘도 엄마를 이겨먹었다며 혼자 깔깔깔 웃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