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인공위성

아빠

by 희미스타



「나: 나 내일 서류전달 및 도라지밭 풀 뽑으러 엄마집 감

언니: 댕겨와유

남동생: 서류 확인해서 다시 말해줄게

나: 난 어차피 풀 뽑으러 또 갈 거니까 추가 서류 필요하면 얘기하삼

언니: 도라지밭 송이 줘라ㅎㅎ


남동생은 언니의 마지막 말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 나도 아무 생각 없이 도라지밭 풀이나 뽑으러 가려고 했던 김에 서류도 챙기고 풀 뽑을 때 입을 옷도 챙겼다. 내일 아침 일찍 무화과 깜빠뉴를 사서 가야지.


엄마는 무화과를 좋아했다. 내가 즐겨 가는 빵집은 워낙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라 아침부터 줄을 서고 기다려서 무화과 깜빠뉴와 내가 먹을 크루아상이나 크림빵 같은 것들을 샀다. 빵봉투를 챙겨 들고 봉안당으로 가는데 이제 에어컨을 켜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더위가 찾아왔다. 엄마는 가장 추울 때 갔는데 계절이 바뀌어도 나는 아직 엄마를 보내주지 못했다. 봉안당은 이상무.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엄마의 이름을 바라보았다.


엄마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 사진 앞에 무화과 깜빠뉴를 놓아주고 내 입에도 빵 한 조각을 물었다. 간신히 허기만 달래고 도라지밭 풀을 뽑으러 가려는데 아빠가 말을 걸었다.


"느 엄마 있는데 가보자."

"나 쫌 전에 갔다 왔는데."

"니는 갔다 왔지만 나는 못 갔잖어."


엄마 제사상 차릴 때에는 쳐다도 안 보더니 갑자기? 왜? 아빠가 엄마를 굳이 보러 갈 이유가 있어? 아빠 때문에 엄마가 죽었는데 무슨 염치가 있어서?

내가 많은 말을 속으로 삼키는 동안 아빠는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참이나 혼자 입 밖으로 꿍얼거렸다.


"마당에 엄마 화분 없애지 마."

"안 건드린다~ 내가 뭐…."

"옥수수는 아빠가 심었나?"

"되는가 싶어서 해봤지."


하여간 자기 입에 들어가는 건 참 잘 챙긴다. 엄마가 절대 마당 한가운데 꽂아놨을 리 없는 옥수숫대가 보여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였다.


"엄마 보험금 들어왔드나?"

"들어왔지."

"함 보자."

"뭐 내가 그거 어디 쓰나!"


돈 냄새 맡으면 이때다 하고 사고 치고 다니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사실은 아빠가 엄마 목숨값을 받게 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며 소리라도 지를까 했지만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어항 물 더 부줘야 안 되나?"


평소에는 신경도 안 썼으면서 갑자기 어항을 가리키는 아빠를 보자니 또 화가 치밀었다. 지난번에 내가 치워놓고 간 어항에 물이 반은 줄어있는 걸 보니 닦아주고 채워주긴 해야겠구나.


"물고기 다 죽고 한 마리밖에 안 남았어."

"살 만큼 살았다."

남동생의 한 마디에 나는 마음이 쿵 떨어졌다. 살 만큼 살았다니. 누구한테 하는 말이야.


A4용지 박스만 한 작은 어항을 들어다가 물고기부터 바가지에 옮기고 어항내벽을 박박 닦았다. 한 마리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물고기가 잘 들여다보니 큰 거 한놈에 작은 거 두 놈이 더 있었다. 다행이다. 외롭진 않겠네. 깨끗해진 어항에 물도 채우고 밥도 조금 뿌려주었다. 이 어항을 내가 어떻게 이고 지고 왔는데, 이 어항 들여놓고 엄마가 얼마나 좋아했는데, 쉽게 없앨 수는 없지.


아빠가 말을 시키는 바람에 맥이 끊겼던 풀 뽑기를 위해 준비해 온 옷으로 갈아입고 바지 밑단은 긴 양말로 감싸 벌레가 들어오지 못하게 단단히 여몄다. 엄마가 처음 이 집에 이사 오고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마당과 도라지밭의 잡풀을 뽑는 것이었는데, 생전 처음 벌레퇴치 팔찌도 껴보고, 어릴 적 할아버지 참외밭에서 일했던 이후로 이렇게까지 땡볕아래 땀을 흘린 것도 십수 년 만이었다. 그렇게 만든 엄마의 집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엄마의 식물 선호도를 듣게 되었고, 남들은 다 약재로 쓴다는 풀들도 엄마한테 필요 없으면 그냥 다 뽑아버려야 한다는 것을 머리에 새겼다. 도라지밭도 마찬가지로 가차 없이 도라지를 제외한 모든 풀들이 제거 대상이 되었다. 담을 따라 길게 늘어져있는 나팔꽃 덩굴도 뜯어내고 강아지풀과 이름 모를 키 작고 쏙쏙 잘 뽑히는 풀도 모두 다 뽑아냈다. 내 키만큼이나 크고 뿌리가 깊은 풀들은 양손으로 온 힘을 다해 뽑아냈다. 결국 엉덩방아를 찧게 만들었던 그것들은 풀이라기보다는 작은 나무 같은 것들이었다.


땀을 잔뜩 흘리고나서 엄마가 좋아했던 식당의 능이백숙을 점심으로 먹기로 했다. 엄마가 아프기 전에는 백숙도 종종 잘해주셨는데 나는 엄마표 백숙이 참 좋았다. 어릴 때부터 워낙 편식으로 애를 먹였던 내가 이렇게 손 많이 가는 걸 잘 먹는다고 투덜대면서도 불 앞에서 끓고 있는 닭을 계속 지켜봐 주었다. 나는 닭뼈도 잘 못 발라서 항상 엄마가 살코기만 따로 국물에 담아 밥까지 말아주었다. 온전히 나를 위해 시간과 마음을 쏟고 있는 엄마가 좋았다.


"나와서 밥무라."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는 아빠와 남동생 사이에서 나는 어떤 역할이라도 해야 했다. 나는 포장해 온 능이백숙을 세 그릇으로 나누고 그중 하나를 들어 아침에 엄마 사진 앞에 놓아두었던 무화과 깜빠뉴 옆에 내려놓았다. 남동생은 내가 내 몫의 그릇을 엄마 앞에 두자 뭐 하냐고 물었다.


"아, 나는 쫌 식으면 먹을라고."

"그래라."


참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늘 좋은 음식은 아빠와 남동생에게 먼저 내주고 남은 것을 엄마와 나누어 먹던 습관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그릇에 엄마가 좋아한 날개 두 개와 내가 좋아하는 퍽퍽 살을 같이 담았다. 평소에 내가 퍽퍽 살을 좋아한다 말하고 다니게 된 것은, 아빠와 남동생에게 다리를 한 짝씩 나누어주고 남은 퍽퍽 살을 먹으면서 '나는 어차피 다리살 안 좋아해.'하고, 억지로 떠밀린 선택이 아니라 내 의지였다며 합리화하고 있던 게 아닐까. 모르겠다.


아빠와 남동생이 백숙을 다 먹고 자리를 비우자 싱크대에 가득 쌓여있는 설거지가 보였다. 나는 왠지 입맛이 없어서 내 몫의 백숙을 다시 포장용기에 쏟아부어 뚜껑을 닫고 설거지부터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여기저기 풀어놨던 내 가방을 다시 죄 싸들고 엄마집을 나왔다.



아빠는 나에게 무엇인가. 구구절절 말하자면 엄마의 40년 결혼 인생 안에서 단 한 번도 엄마를 웃게 한 적 없는 사람이며, 엄마가 코로나로 사망하게 된 것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 내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유일하게 진심으로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조금이라도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아빠와의 관계를 이어왔다. 엄마가 하기 싫은 말은 내가 대신 전달하고 집 밖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아빠를 데리고 나가는 것은 내 몫이었다.


"그래도 송이 니가 카믄 좀 듣잖아. 나는 안 무서버도 니는 무서븐갑지."

"엄마는 맨날 보고 나는 가끔 봐서 그런갑지."

"그래도 느그 너이 중에는 니가 집에 제일 자주 오잖아."

"딴 자식들은 마음이 너~무 먼가 보지."


엄마 집에는 엄마 아들이 버젓이 살고 있음에도, 결국 아빠를 어르고 달래다가 화까지 내게 되는 사람은 나였다. 이진송 작가님의 『차녀힙합』에서 곽민지 작가님이 하신 말이 떠오른다. 필요할 때는 중재자로 써먹으면서 정작 가족 중에 성격이 제일 나쁜 사람이 되어 있는 것. 그게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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