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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나 Mar 22. 2024

"오늘"을 살아야 하는 이유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시간에 집중할 것

많은 유방암 환자들이 가입한 온라인 카페가 있다. '유방암'이라는 공통분모는 있지만 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연들은 당연히 모두 제각각이다. 그리고 또 너무 당연하게도 각각의 사연들마다 절절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카페에 나는 예전, 그러니까 1기 진단을 받았을 14년 전에 처음 가입했었다. 그런데 병을 진단받은 직후가 아닌 치료와 수술이 모두 종료되고 난 이후에 가입을 했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의료적으로 집중 관리를 해야 하는 시기가 끝난 것이니 힘든 산 등정은 끝났다는 생각에 새롭게 진단받고 가입하시는 분들에게 나의 경험을 나누며 위로와 응원을 하겠다는 실로 엄청난 생각.


그런데 막상 가입  이런저런 글들을 보다 보니 몇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일단, 누군가를 위로하고 다독이기에는 나의 병기가 너무 약했다. 다양한 병기와 병세를 보고 있으니 림프 전이도 없는 고작 1기 주제에(?) 저런 분들의 마음을 감히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냐는 물음표가 뜬 것이었다. 물론 기수와 상관없이 항암 치료의 과정은 무척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라 그런 경험들만 나누더라도 나름의 의미는 있었을 수 있겠지만, 어쩐지 기수가 높으신 분들이 보기에 1기 정도가 나서서 설치는 것은 '네가 뭘 알겠니'와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 문제와는 별개로 나 스스로에게서 발견했던 문제는, 카페에서 많은 분들의 글을 보고 있자니 굉장한 수준의 불안감이 밀려오는 느낌을 받는 것이었다. 하루에도 몇 십 명씩 새로운 회원이 가입하고, 재발과 전이의 소식을 전하는 이들이 어렵잖게 보이는 그곳에서 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혹시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모든 암환자들은 치료 종료 이후에도 끊임없이 재발과 전이의 가능성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데, 그 가능성을 직접 맞이한 사람들의 증언을 보고 있자니 이건 뭐 위로는 고사하고 내 마음 하나 다스리기도 쉽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딱 하나였다.

이 카페를 탈퇴하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라는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웠지만 실상은 약하디 약했던 나의 멘털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야만 했었다.




그렇게 스르륵 사라졌던 카페에 다시 가입한 것은 4기 진단을 받은 직후인 2022년 9월.

4기에 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던 탓에 나보다 먼저 그 길을 걷고 계신 분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일단 궁금했고, 오래전 그때에는 기수가 낮아서 이야기를 하기가 머쓱했지만 지금은 이토록 묵직한 타이틀을 거머쥐었으니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엄청나게 많을 것이란 생각도 함께 있었다.

하지만 이 때도 내가 간과했던 점이 있었으니, 10여 년 만에 다시, 그것도 몹시 위중한 상태의 환자가 된 탓에 나의 멘털은 약해진 정도가 아니라 살랑 부는 바람에도 바사삭 바스러질 수 있는 상태였다는 것이었다.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거의 카페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뼈전이되신 분들의 경과와 더불어 4기 환자들의 생존 가능 기간은 어떠한지를 미친 듯이 찾아 읽었고, 전이 진단받은 후에 추가 전이되신 분들의 글을 읽으며 스스로의 정신을 아주 신명 나게 갉아먹고 있었다. 10여 년 전 가졌던 재발과 전이에 대한 두려움이 막연함에서 기인한 것이었다면 지금 가지는 두려움은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실체가 느껴지는 듯한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앞으로 내게 허락된 시간은 어느 만큼일까를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내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수준의 절망과 공포를 선사해 줬고, 이제 나는 사회적으로든 나의 인생에서든 완벽하게 끝이 났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 즈음에 내가 가장 잘한 일은, 그 당시 나의 마음을 카페에 발설하지 않은 것이다.

말뿐만 아니라 글 역시 힘을 갖고 있기에 힘든 마음을 계속 내비치는 글을 계속 썼다면 난 분명 그 힘든 마음을 점점 더 키워나갔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엄청난 수준의 연민을 느끼면서 말이지. 게다가 마음이란 것이 결국은 내가 어떻게 마음을 가지는지에 따라 도달점이 아예 달라지는데, 진단받은 그 당시의 마음을 그대로 붙들고 있었다면 내게 허락된 시간을 아마도 우울감과 비통함에 젖어 땅굴만 깊게 깊게 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4기 투병 라이프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동생 덕분에 다시 쌓아 올리기 어려울 것 같았던 내 마음을 다시 한번 잘 쌓아 올려서 지금은 누가 봐도 '너 참 잘 살고 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잘 살고 있다. 이 부분은 내가 생각해도 나 참 기특하고 대견하다.




물론 나는 지금도 유방암 카페에 가입되어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카페의 글들을 탐독하며 하루종일 코 빠뜨리고 있지는 않다. 그러기에는 이번 학기 대학원 과제가 좀 무서운 수준으로 많은 탓도 있지만, 이와는 별개로 카페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에 변화가 생긴 것이 더 크다.

카페 글들을 보며 무수한 걱정들을 했던 난 '지금 이 순간'이 아닌 '아직 오지 않은 어떤 미래'에서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1기 진단 후 10년도 더 지나서 전이가 된 환자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어쨌든 1기 치료가 모두 끝난 그 당시의 나는 멀쩡한 상태였으니 그저 그 순간들을 잘 살아 나오면 되는 것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재발과 전이의 두려움을 끝끝내 극복하지 못한 채 내가 환자였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기 위해 꽤나 많은 노력을 했었다. 지금에 와서 보면 그 시간들이 참 아쉽고 아깝다. 언제 벌어질지도 모를 일을 염두에 두고 걱정하고 고민했던 그 시간에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의미 있고 즐거운 무언가를 했다면 내 인생이 지금보다는 좀 더 풍요로워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는 4기 진단을 받은 직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비록 남들보다 죽음을 조금은 더 선명히 안고 살아가야 할 운명이 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지금 이 순간 나는 죽지 않고 잘 살아있는데 구태여 언젠가는 도달하게 될 죽음을 끌어안고 내 인생을 내려놓으려는 바보 같은 선택을 하려 했는지.


쉬운 듯 하지만 의외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여 오늘을 사는 것'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에 붙들려 후회하는 삶을 살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해 달리며 미리 걱정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나도 '4기 암환자'라는 무시무시한 타이틀이 붙지 않았다면 늘 그래왔듯 후회와 걱정을 반복하며 살았을 테지만, 이제 그렇게 살기에는 내게 주어진 이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오늘 하루를 잘 살기 위하여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살고 있다. 잘 살기 위하여 거창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 하루를 잘 살기 위한 것이 온전한 휴식이라면 모든 연결을 끊고 쉼을 선택하기도 하고, 살아온 흔적을 남겨보겠다며 지금처럼 글을 쓰며 안 풀리는 문장에 머리를 쥐어 뜯기도 하고, 깨끗한 주변 환경을 위해 청소를 하는 등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면서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부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오늘을 살다 보면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과 두려움은 마음 저 한 귀퉁이 작은 구석으로 보낼 수 있다.




가끔 카페 채팅을 통해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4기 진단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환자와 보호자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들 역시 카페 가입 후 현재 상태와 관련한 정보들을 찾아 읽으며 무너진 마음을 애써 세우다가 다시 무너지기를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생판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내용의 채팅을 보내기까지 이들이 얼마나 절박한 마음이었을지를 나 역시 너무도 잘 알기에 이들이 궁금해하는 이야기들은 그것이 내 개인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고 해도 최대한 해주려 노력하는 편이다. 나의 이야기가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될 수 있다면 나는 그게 또 보람으로 느껴지니 말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몇 시간을 작성한 장문의 채팅을 보내면서 마지막에 늘 건네는 응원이 있는데 "의료진 믿고 열심히 치료받으며 즐겁게 하루하루 잘 지내다 보면 분명 좋은 결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카페 글 적당히 찾아보시고 그냥 가족들과 함께 오늘을 살아요 우리'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건 너무 직설적인 것 같아 저 정도 수준에서 예쁘게(?) 말하는 중이다. 1기였던 시절에도 사실은 이런 하고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1기 정도로는 명함을 내밀기가 굉장히 머쓱했었던 것을 4기가 되고 나니 어깨 쫙 펴고 당당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인생은 아이러니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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