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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나 Jul 28. 2023

대학원 복학 신청

[이번엔 4기다!] - 1.

2023년 7월 24일 오전 10시.

대학원 복학 신청일을 아예 일시까지 휴대폰 일정에 기록해두고 계속 되뇌이고 있었다.

당연히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잊어버려서 복학 신청을 하지 못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한 조바심 혹은 소소한 발악이었다.

일찌감치 아침 든든히 챙겨먹고 약 먹기까지 진작에 끝낸 후, 10시도 되기 전부터 이미 노트북을 켜놓고 10시가 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10시가 되었고, 떨리는 마음으로 복학 신청 페이지를 열었는데 "아직 복학 신청 기간이 아닙니다"라는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안내 문구란 말인가!!!

그럴 리는 절대 없었지만 혹시라도 내가 날짜를 착각했나 싶어서 학사일정을 황급히 뒤졌으나, 해당 공지글에 떡하니 나와 있는 금일이 복학 신청 첫 날이 맞다는 안내.


앞으로 딱 10분 준다(?). 그 안에 내가 복학 신청할 수 있도록 당장 페이지 열어라(??)!

라며 혼자서 보이지 않는 그 누군가를 향해 씨알도 안 먹힐 협박(...)을 하며 조바심 충만한 상태로 새로고침만 계속하던 그 때, 화면이 바뀌면서 복학 신청이 활성화가 되는 것이 아닌가!!!

어후 뭐야. 하마터면 학교로 전화해서 진상될 뻔 했잖아.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오늘 이 시간 반드시 해야만 했던 복학 신청을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순식간에 마쳤다.


이제 9월 1일이 되면 나는 학교로 간다!! 오예!!!




이렇게 복학에 목을 매고 있으니 내가 공부하기를 굉장히 즐겨하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사실 학창시절의 나는 공부하기를 참으로 싫어하던 은은한 농땡이 재질의 학생이었다. 아예 대놓고 시원하게 놀기라도 했으면 그 과정에서 뭔가 분명히 남기라도 했으련만...그렇게 할 만큼의 마음 크기는 되지 못하는 와중에 공부는 하기 싫고, 근데 또 부모님은 차마 거역하기 힘들어서 서서히 공부와의 거리를 벌려가던 소심한 반항심을 지닌 그런 학생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공부하기를 싫어하던 사람이 어느 날 뜬금없이 제대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겨났고 자발적인 마음으로 무언가를 시작했으니, 동기 부여가 확실했던 난 평생에 처음으로 공부하는 것이 몹시 즐거웠었다. 특히 제 손으로 비싼 학비를 충당해가며 대학원에 입학했던 그 당시 나의 목표는 "휴학없이 학기 마치고 논문 통과해서 한 번에 졸업하기"였었다.


이런 나의 계획에 적색 신호등이 켜진 것은 세 번째 학기 시작을 바로 하루 앞둔 2022년 8월 31일.


이미 수강하고 싶던 과목들로 잘 골라서 수강 신청까지 다 마친, 앞으로 12시간 여만 지나면 학교 강의실에 앉아서 이번 학기에는 어떤 것을 공부하게 될 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할 사람인 내가, 내 손으로 학교 홈페이지를 열어 휴학 신청을 해야만 했던, 야속하리만큼 손 쉬웠던 마우스 클릭 한 번에 이루어졌던 휴학 신청 완료에 잘 붙들고 있던 눈물샘 둑이 와르르 터져버렸던 바로 그 날.


이 날 이후로 나는 또다시 나라에서 치료비를 보전해주는 "암환자"가 되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14년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4기"와 "전이"라는 묵직한 타이틀까지 덤으로 얻고.




이 기록은 유방암 1기 환자가 10여년 동안 본인이 환자였음을 잊고 살 정도로 멀쩡히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4기 환자가 되어 삶의 모든 바이브가 일순간 바뀐 상황과 기억들을 텍스트로 남겨두기 위한 것이다.

이 기록이, 기록을 남기고 있는 나 스스로에게는 지나온 궤적들을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는 장치가 되었으면, 이 기록을 보시는 분들 중 나와 비슷한 상황이신 분들께는 나의 삶과 생각이 그 분들께 위로가 되었으면, 나와 비슷하지는 않지만 인생이 어쩐지 힘든 분들께는 응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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