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4기다!] - 5.
흔히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 "뼈를 깎는 노력을 하라"라고 많이들 이야기한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쩌면 나도 언젠가 어디에선가 열심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각오를 표할 때 저런 표현을 했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아니, 아마 했을 것이다. 나의 말하고 글 쓰는 특성을 생각해 보면 저런 식의 비유법을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이니 안 썼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저 표현을 쓰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쓸 수가 없다. "뼈를 깎는" 행위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지를 너무 강렬하게 체득해 버렸으니 말이다.
약간의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어쨌든 2022년 9월 말경 즈음 병원에 입원을 했다.
입원의 목적은 조직 검사.
나에게 맞는 치료제를 찾기 위하여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이 검사 결과를 토대로 나의 암종(種)을 확인하여 이를 무찌를 치료제를 결정할 수가 있다.
그 당시 나의 몸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통증이 격화되어 가던 중이었기 때문에 차라리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이 상시로 의료진들의 보살핌을 기대할 수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원 환자가 워낙에 많다 보니 내 입맛에 맞는 입원 일정을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였고, 그 덕에 나는 처음으로 병원 정규 근무 시간이 종료된 이후에는 어떤 절차를 거쳐서 입원해야 하는 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
백팩 하나에 담길 정도의 짐만 간단히 챙겨 온 덕에 이동 거리가 많은 여러 고난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덜 힘들게 입원 수속을 밟을 수 있었고,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난 이후에 입원이 완료되었고 조직 검사는 다음날 이루어질 예정이었으므로 환복 후에는 침대에 누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처리해야 할 모든 상황들이 종료되고 나니 그제야 드는 궁금증.
대체 내일 조직 검사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거지?
예전에 조직 검사를 할 때는 병변이 가슴에 있었기 때문에 굵다란 주사 바늘(이걸 주사 바늘이라고 불러도 된다면)을 찔러 넣어 조직을 떼어내는 방식으로 검사가 이루어졌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독한 것들이 정확히 몸속 어디에 어떻게 퍼져 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확실하게 문제가 되는 지점 한 곳이 골반으로 특정되어 있으니 일단 여기에 있는 조직을 검사하겠다고 했었고, 그렇다면 뼈 안에 있는 조직을 어떤 식으로 떼어내야 한다는 건데 이걸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전혀 감조차 오지 않았다.
걱정되는 마음에 '뼈조직 검사'를 키워드로 정보를 검색해 봤지만 이거다 싶은 내용은 눈에 띄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아팠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럭저럭 견딜만했다고 하는 걸로 봐서는, 내가 비록 주사 바늘을 참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쫄보이기는 하지만 참는 것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하는 사람이니 그럼 난 그럭저럭 견딜만한 정도로 내일 검사를 받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다음날 어머니께서 병원으로 오셨다. 같이 있으면 불안과 긴장도 두 배로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냥 나 혼자 잘하고 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등등의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다. 그러나 철저하게 내 위주로만 생각한다면 어머니께서 보호자로 계셔 주시는 것이 어머니께 조금 죄송하긴 해도 나는 좋았기에 '어차피 세상 다시없을 불효하는 김에 소소한 불효 하나 더 얹자'하는 마음으로 어머니께서 병원에 오시겠다고 하는 것을 굳이 막지 않았다. 모녀가 함께 애처로이 긴장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검사 예정 시각이 가까워졌고, 이윽고 나를 실어갈(?) 분들이 이동용 침대와 함께 병실로 들어오셨다.
침대에 실려서 천장만 바라본 채로 한참을 이동한 끝에 도착한 곳은 정기 검사 때 CT 촬영하러 늘 왔던 그곳.
매년 왔어도 이곳에 이런 검사실이 있는 줄은 모르고 다녔다는 것에 약간의 신기함을 느끼고 있을 무렵 나를 실은 침대는 검사실로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검사실 침대 위로 자리를 옮긴 후 병변 체취를 위하여 엎드린 상태로 자세를 잡았다.
그 상태에서 이어진 검사실 어느 의료진의 안내.
"검사 시간은 20~30분 정도 걸리고, 부분 마취를 하긴 하지만 조금 아플 수 있습니다."
그래 뭐 심지어 부분 마취까지 하는데 아파봤자 그냥 욱신거리는 정도가 좀 강한 것일 테니 너무 긴장하지 말자 하며 혼자 깊은숨을 내쉬면서 마음을 다독이고 있었고, 그리 오래지 않아 검사가 시작되었다.
본디 나는 '참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사소하게는 화장실 참기부터 시작하여... 가장 자랑스러운(?) 참기로는 대학원 과제물 작성하느라 식사까지 내팽개치고 13시간을 내리 책상 앞에 붙어 있기까지 했던 것 등등 참아야 하는 이슈가 있다면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은근과 끈기를 그러모아서 어떻게든 버텨내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 사람인데... 저 무시무시한 '뼈조직 검사' 과정에서는 내가 참을 수 있었던 것 딱 한 가지는 마취 주사 맞을 때밖에 없었다.
그때 당시에는 '뼈'와 '조직 검사'의 두 조합이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이게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것이 뼈 안에 있는 암세포 일부를 체취를 한다는 것은 결국 암세포가 퍼져 있는 뼈의 일부를 어떤 식으로든 깎아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살면서 한 번도 뼈를 깎아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이것이 어떤 의미이며 앞으로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 지에 대해서 전혀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분명히 마취 주사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검사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느껴지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극강의 고통.
이건 뭐 참고 자시고 할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고통이 느껴지자마자 입에서 소리가 눈에서는 눈물이 바로 터져 나왔다. 고통의 수준으로 생각하면 비명을 마구 내질렀어야 했지만 겨우겨우 붙들고 있었던 나의 이성이 나의 마지막 남은 존엄을 지켜주려는 듯 이를 악물게 도와줬고, 그 덕에 입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은 '이악물 필터'를 거치며 신음 소리 정도로 데시벨이 낮아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검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 분명 검사 시간이 20~30분 정도 소요된다고 했으니 난 그럼 이 극악의 고통을 그 시간 내내 버텨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혹시 마취가 제대로 안 된 것은 아닐까, 이게 처음 얼마간만 이렇게 고통스럽고 선행 조치가 끝나고 나면(선행 조치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다음부터는 좀 덜 아프지 않을까, 차라리 검사받는 동안 내가 기절이라도 해버리면 좀 낫지 않을까 등등을 생각하며 버텨보려 해도 이건 도저히 버틸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고, 내 입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의 크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커지고 있었다.
검사를 빨리 끝내려면 최대한 내가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써 의료진들의 작업을 도와줘야만 했는데 너무 아프니까 나도 모르게 팔과 몸을 움찔거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의료진 중 누군가(난 엎드린 상태였기 때문에 끝까지 그분이 누구신지 알 수 없었다) 나의 팔 쪽을 지그시 누르며 "움직이시면 안 되니 조금만 버텨주세요"라고 이야기를 했고, 그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진짜 그냥 죽기 살기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극강의 고통을 견디느라 꽉 진 주먹으로 인해 손바닥에는 손톱자국이 강하게 찍히고 있었다. 내가 어쩌자고 내 몸 관리를 제대로 안 해서 이런 상황에까지 내몰리는 것인가 싶은 후회와 더불어, 아무리 그래도 경고를 좀 스무스한 방법으로 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대체 내가 뭘 얼마나 큰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 제대로 내동댕이를 치시는 건가 싶은 억울함이 기막히도록 조화로운 비율로 마음속에서 날뛰고 있었다.
너무 아파서 숨도 제대로 안 쉬어지고, 온몸에 힘은 잔뜩 들어가고, 근데 또 버텨내야 하다 보니 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와중에 이제는 체면이고 존엄이고 다 모르겠다는 한 인간의 눈물과 비명이 난무한 혼돈의 검사실.
그 와중에 (당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너무도 프로페셔널하게 자신들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하고 계시는 믿음직한 의료진들. 약간은 기계적이었을 수도 있겠으나 그 정도로도 나에게는 충분히 감사했던 내 팔을 잡은 한 의료진의 시의적절한 다독임들. (잘하고 계세요.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20여분 간의 검사가 끝난 후(나의 체감 상으로는 몇 시간을 보낸 것 같았지만) 이제 다 끝났다며, 정말 정말 고생했다는 위로를 해주는 의료진의 다독임을 받고 있으니 꽉 쥐고 있었던 주먹이 그제야 풀리면서 숨을 쉴 수 있었다.
지혈을 해야 하니 앞으로 2시간 동안은 꼼짝하지 말고 그대로 누워 있어야 한다면서 엉덩이 쪽에 이불 같은 천을 둘둘 말아서 넣어주는데, 아... 허리가 안 좋은 나에게는 지혈을 위한 이 자세가 참 옳지 않은 자세였다.
이 놈의 검사, 정말 끝까지 사람 힘들게 하는구나.
병실에 돌아와서 병동 간호사 선생님의 위로(?) 한 자락 듣고 자세를 정비하여 누워 있다 보니 조금조금 정신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거울로 얼굴 상태를 확인해 보니 아... 이 무시무시한 검사가 빼앗아간 나의 존엄. 아무리 천장을 바라보고 왔다지만 이 몰골로 나는 검사실에서 여기까지 실려왔던 거구나 싶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옆에 놓인 물티슈로 긴급히 얼굴 정비를 좀 한 후 상태 체크까지 마치고 본연의 나의 마음까지 돌아오고 나니 그제야 어머니께서 병실로 헐레벌떡 들어오셨다.
검사실로 이동할 때 어머니도 당연히 같이 검사실까지 움직이셨고 검사 끝나는 것을 기다리고 계셨었는데,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내가 나왔고, 내가 병실로 이동한 것을 전혀 아실 수 없었던 어머니는 검사실 앞에서 '왜 딸의 이름이 검사 명단에서 없어졌을까'란 생각으로 마음 졸이며 지켜보시다가 검사실에서 나오는 의료진에게 물어보고는 내가 이미 병동으로 돌아갔음을 아시게 된 것이었다.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검사실에서 나온 직후의 내 모습을 봤다면 분명 어머니는 굉장히 마음이 아프셨을 테니. "내가 앞으로 이 검사를 또 받으면 그땐 엄마 아빠 딸이 아닙니다"와 같은 농담 같은 진담을 웃으며 던질 수 있는 평소의 모습을 보실 수 있게 해 드려서 정말 너무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날, 이 검사 이후로 나는 "뼈를 깎는 노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집념이 서린 노력인지를 알게 되었다. 대체 얼마나 굳은 각오로 노력을 하길래 그냥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뼈를 깎을 정도로 노력을 한단 말인가.
그런데 사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중에 실제로 자신의 뼈를 깎아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기에 대부분은 뼈를 깎는 것에 얼마만큼의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모르면 저런 표현 쓸 수 있지. 나의 노력에 결의를 담기 위해서 "뼈를 깎는다"라는 비유를 첨가하고, 절절한 마음을 보여주고자 "피 토하는 심정"이라는 표현을 가미한다든가 하는.
그리고 나도 아마 몰랐다면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의학의 힘을 빌려 부분 마취를 했음에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그날의 뼈 깎였던 고통을 생각하면 나는 앞으로 절대 뼈를 깎는 노력이란 말을 사용할 수 없을 것 같고, 혹여나 노력을 기울여야 할 일이 생기더라도 결코 그 수준의 노력을 쏟을 수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