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4기다!] - 4.
누군가 내게 MBTI에서 J 성향이 강한 사람들의 특징을 한 단어로 표현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연코 "통제"를 든다. 예전에 내가 처음 MBTI를 공부했을 때에도, 그리고 요즘 대중의 인기를 힘입어 여기저기 떠도는 MBTI 관련 가벼운 자료들을 봐도 J를 설명하는 대표 키워드를 "계획"으로 많이 언급하는데, 계획만으로는 J 성향을 다 품는 것에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J와 대치되는 지점에 있는 P 성향들은 마치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으로 매도될 우려가 크다.
이 계획이란 것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역동을 잘 살펴보면, 결국은 "내가 세운 계획대로 내 주변 상황이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고 있다. 고로 계획의 기저에는 "내가 바라는 대로"의 통제의 욕구가 강하게 흐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MBTI 검사 결과에서 J가 강한 성향으로 나오는 나.
(이 이야기는 현재 준비 중인 'MBTI & 버크만 진단' 관련 주제의 글에서 추후 제대로 다루는 걸로.)
가족 중에 J가 특별하게 강한 구성원들이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난 J가 아닌 것처럼 느끼며 살고 있었지만, 위에서 언급한 '통제'라는 키워드를 기준으로 삼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난 아주 철저한 J가 맞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진료를 위하여 서울대병원을 가기까지 2주 정도 뜨는 시간이 생겼다.
14년 전 그때는 동네 병원에서 큰 병원 가보라는 말을 듣고 난 3일 후에 지역의 대학병원을 갔고, 대학병원 진료를 보자마자 이틀 후에 바로 병원에 입원을 했고, 입원한 다음날 바로 감시림프절 생검술을 하러 수술대 위에 누워 있었는데 이 모든 과정들을 멍한 상태에서 소화하느라 생각이란 것을 할 틈 자체가 없었던 걸 생각해 본다면 지금 내게 주어진 2주라는 시간 동안 정리해야 할 일들을 차근차근 쳐내면 되니 이 시간이 생긴 것이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직장에 내 상황을 전했다. 내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회사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굴러가야 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상황 공유를 해주는 것이 회사를 위해서 내가 취할 수 있는 당연한 도리라 여겼다. 감사하게도 상황을 전한 그날로 바로 휴직에 들어갈 수 있도록 회사에서 많은 배려를 해줬고, 그렇게 나는 '생업과 학업을 병행하는 바쁜 삶'을 살다가 한 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한량의 삶'을 살게 되었다.
2주 후에 병원을 가면 당연히 항암 치료에 들어갈 것이고, 그러면 나의 머리카락들과 그리 오래지 않아 헤어져야 할 것이기 때문에 이별의 순간을 조금은 깔끔하게 기억하고 싶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근처 미용실을 들러 결연한 표정으로 "짧게 묶을 수 있을 정도의 길이로 잘라주세요"라며 주문했다. 당시 원장님의 반응과 표정으로 보아 나를 '방금 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슬픔을 못 이겨 충동적으로 미용실 들어온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지만 차라리 그 편이 내 입장에서는 좀 더 가벼운 것이라 그냥 그대로 오해하시도록 두기로 했다. 원장님 입장에서도 "제가 곧 있으면 항암 치료 들어갈 건데 그전에 머리 자르는 거예요"라고 이야기하는 손님, 무거워도 너무 무거울 테니.
중학생 이후로 이런 똑 단발은 없었다 싶을 만큼 달랑 올라간 머리로 달랑달랑 귀가하여 잠시 또 생각을 하다 보니 예전 언젠가 TV에서 골육종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나도 골반뼈에 안 좋은 것이 보인다고 했으니 필연 골육종이리라 생각했고, 병원 진료를 보기 전에 이 골육종에 대해서 좀 알고 가고 싶었다. 그래서 골육종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커뮤니티에도 가입하고 이것저것 검색하여 찾아보며 앞으로 나는 어떤 수술과 어떤 치료를 받게 될지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2주를 보내고 드디어 서울대병원 진료일.
2주 전 길바닥에서 울음을 마구 삼켜가며 병원 상담사와 함께 상의하며 잡은 '근골격종양센터' 앞에서 심히 초조한 상태로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들을까.
내가 예상한 대로 골육종 이야기를 하며 이후의 치료 스케줄에 대해서 말씀하시겠지.
다른 암보다 골육종이 치료가 쉽지 않다고 하던데 모쪼록 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등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앞으로 나에게 닥칠 나의 앞날을 혼자 예상해보고 있는 중에 내 이름이 불렸고, 그렇게 들어간 진료실에는 의사 선생님 두 분이 함께 내가 미리 접수해 둔 나의 영상 자료를 보고 계셨다.
그런데 뭔가 공기가 좀 묘한 느낌.
두 분이서 뭔가 숙덕숙덕 이야기가 길어지더니 아마도 진료실 교수님일 것으로 짐작되는 의사 선생님께서 간호사 선생님께 "이 분 ㅇㅇㅇ교수님 진료 볼 수 있도록 가장 빠른 날짜로 예약 잡아주세요"라고 주문을 하셨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채 파악도 하기 전에 교수님을 통해 이어진 어이없는 이야기.
"지금 환자분 유방암이 뼈로 전이된 것 같으니 이 쪽으로 잘 보시는 교수님 진료 보셔야 해요."
유방암???
아니 지금 이 시점에서 뜬금없이 유방암 이야기가 왜 나와? 싶어서 순간 머리가 너무 멍해졌다.
바보 같은 표정으로 네.....? 하는 것 말고는 아무 말도 못 했고, 교수님을 쳐다보고는 있었는데 당최 초점이 맞춰지지 않아서 눈에 보이는 것도 없었다.
병원에 동행했던 어머니나 동생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잠시 말문이 막혀 있었고, 이후 어머니께서 무슨 질문을 하셨던 것 같기는 한데 이때 기억은 내 머릿속에 완벽히 없는 걸로 봐서 아마 나는 유방암이 언급되자마자 영혼이 몸속에서 일부는 빠져나갔던 듯싶다.
14년 전 난 분명 유방암 1기에 림프 전이는 없는 상태였고, 혹독한 항암 치료 과정을 다 거친 후 수술을 통하여 몸속의 암 병변들을 영상에서는 찾을 수 없을 만큼 만들어놨었고, 10년의 기간 동안 이뤄진 정기 검진동안 단 한 차례도 재발이나 재발 의심 같은 것 자체를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대체, 어째서, 지금 이 시점에, 심지어 영상 자료는 골반뼈 MRI 자료밖에 없는 이 상황에 어떻게 이게 유방암 전이로 진단이 나올 수 있는 것인지 도대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원래 의료진들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편이지만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 어이없는 현실에 급기야는 '저 교수님 지금 뭔가 잘못 보신 거 아냐?' 하는 의심마저 싹트기 시작했고, 그런 상태로 다음 진료를 위해 기다려야 하는 일주일의 시간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또 일주일을 보내고 난 후 다시 서울대병원 진료일.
이번에 내가 방문한 진료과는 '혈액종양내과'였고, 담당 교수님은 나의 예전 진료 기록들과 이번 자료들을 꽤나 빠르게 확인하시고는 진료실 간호사 선생님께 "이 분 중증 등록해 드리고 이런저런 검사 예약해 주시고, 조직 검사 때문에 입원해야 하니 그 일정도 같이 봐주세요"라며 휘리릭 주문을 하셨다.
난 아직 내가 다시 유방암 환자가 되었다는 걸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있는데 이건 뭐 추가 검사를 할 필요도 없이 너무 확실한 유방암 환자가 다시 된 것이다.
진료과를 바꿔서 한 번 더 진료를 봐야 했던 덕분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일주일이 늘어났다. 그 사이 설레발을 치며 가입했던 골육종 관련 커뮤니티는 머쓱하고 조용하게 탈퇴를 했고, 이건 나중에 다시 할 이야기지만 현재 내가 쓰는 항암제는 머리카락이 홀랑 빠지지 않는 덕분에 굳이 병원 가기 전에 머리를 짧게 자를 필요도 없었다.
예전에 한 번 경험해 봤으니 '앞으로 내게 이러저러한 일들이 생길 것이다'라고 예상하며 행했던 모든 행동들이, 사실은 볼드모트처럼 입에 올리기 무서운 이 병을 내가 예상할 수 있는 선에서 통제하고 싶은 마음이 담겼던 것은 아닌가 싶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임을 머릿속으로 그릴 수만 있어도 무지에서 비롯되는 두려움은 어느 정도 덜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인생이 잔인한 듯 재미있는 이유는 절대로 내가 예상하고 바라는 대로 곱게 흘러가 주지 않는 것에 있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의 이 강력한 J를 어느 정도는 좀 덜어내고 살면 인생살이가 좀 더 쉬울 것 같은데, 애석하게도 나의 쫄보 마인드를 다독이기에는 통제만큼 확실한 안정제가 없다 보니 난 지금도 여전히 '예상과 우당탕탕'의 콜라보가 가득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며, 이 콜라보는 앞으로 나의 기나긴 투병 생활 내내 함께 하게 될 것이라 또 "예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