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4기다!] - 7.
조직검사를 해두고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병원에 계속 머물 수 있으면 보험에서 챙겨주는 입원 일당이라도 받을 수 있겠지만, 이렇게 큰 병원에서 그렇게 해 줄 리가 없지.
입원해 있는 동안 용량을 수직 상승시킨 마약성 진통제를 잔뜩 받아 들고 퇴원했다. 단순히 강력한 진통제 효과로 통증을 숨긴 것일 뿐 근본적인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달 넘게 지속된 끔찍한 통증 때문에 일상이 무너졌던 나는 그게 뭐가 됐든 통증만 조금 잦아들어도 살 것 같았다.
통증이 가장 극심했던 곳은 왼쪽 고관절이었다. 누가 봐도 '저 사람 지금 다리가 많이 아프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뚝이는 수준이었는데, 담당 교수님도 이 부분은 별도의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셨는지 추가 검사로 인해 늦어진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먼저 치료를 받아보라며 방사선과로 보내주셨다.
14년 전 1기 치료는 당시 거처였던 대구에서 받았던 터라 지금 치료받는 병원에는 방사선 치료에 관한 그 어떤 자료도 없다. 이 말인즉슨... 치료받은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와 관계된 서류들을 또 빠르게 받아야 한다는 의미.
치료를 받기까지 넘어야 할 관문이 무슨 조선시대 한양으로 과거 시험 치러 가는 사람들이 산 넘고 물 건너가는 것마냥 험난하다 아주.
하지만 나는 비록 현재 상태가 환자이기는 해도 대개 이런 일들을 굉장히 재빠르고 정확하게 잘 해낸다지. 이런 내가 가끔 어이없을 때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예약된 진료일 전까지 서류를 손에 넣고 방사선과 방문. (진짜 오늘까지 서류를 가지고 오셨네요?라는 간호사 선생님. 아니 선생님~ 이걸 가지고 와야 진료 볼 수 있댔잖아요?)
진료실에서 마주한 방사선과 교수님은 묘하게 패셔너블한 느낌이었다. 교수님의 스타일은 말할 것도 없고 진료에 사용하시는 키보드와 마우스까지. 내가 일할 때 키보드와 마우스에 유난히 집착? 을 좀 하다 보니 눈에 더 띄었겠지.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인데 이 와중에도 이런 걸 보고 있나 싶어서 스스로에게 헛웃음이 픽 터졌다.
사비를 털어 넣은 키보드와 마우스를 쓰시는 패셔너블한 교수님에게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한참을 내가 가져온 서류를 뒤적뒤적 보시고는 하시는 말씀.
"조직검사 결과가 나와봐야 더 정확하겠지만 약 잘 듣는 순한 암이니 굳이 지금 방사선 치료를 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네?
제가 그러니까 오늘 병원에 오기 위해서 서류를 어떤 식으로 받았고 아픈 몸을 어떤 식으로 달래 가며 왔는데 정녕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내시는 건가요.
라는 생각은 속으로만 하고 입으로는 다소 얼떨떨한 목소리로 "아...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만.
내 인사에 덧붙여주시는 한 마디.
"지금 당장은 치료를 안 하지만 나중에 필요하게 되면 치료할 수도 있어요."
...아니 이 패셔너블한 교수님...... 그건 당연한 말이지 않습니까......
퇴원 일주일 만에 다시 온 병원.
그래도 오늘은 뭐라도 치료를 하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왔다가 가지고 갔던 서류 그대로 손에 쥐고 진료실을 나서는데, 통증을 감경시킬 치료를 하지 못해서 속상하다고 해야 할지 약발 잘 들을 것이라는 예언을 받은 것에 감사를 해야 할지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함께 가셨던 어머니 역시 표정을 보니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감정이신 듯했다.
날씨 정말 기가 막히게 좋았던 2022년 10월 첫 번째 금요일.
혼란한 상태로 병원 건물을 나선 모녀는 잠시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있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집으로 갈 순 없다"라며 결의를 다지고는 병원에서 점심을 먹고 티타임까지 알차게 가졌다. 비록 통증 때문에 원하는 만큼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이런 이벤트가 아니었으면 온종일 집에만 있었어야 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니 서류받느라 동동거리고 아침 일찍부터 병원 온다고 부지런을 떨었던 그 시간들이 조금은 덜 억울했다.
이럴 때는 '굳이 굳이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내어 그것을 더 크게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참 기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