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회 Oct 28. 2022

조용한 투쟁

2022-06-24

2022년 6월 24일


나는 지난 며칠간 출근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병원 한 구석에 불편하게 앉아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들을 쌓아갔다. 엄마는 간 기능이 많이 저하돼서 암모니아 수치도 높아졌고 잘못하면 간성혼수상태가 될 수도 있었다. 눈에는 황달 현상이 지속되었고 시도 때도 없이 조는 증상이 생겼다. 간이 말을 안 들어서 간경화, 간부전증처럼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오전에 의사와 면담을 진행했다.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는 엄마를 휠체어에 태우고 아빠와 함께 1층 진료실로 갔다. 의사는 항암치료로 인해 엄마의 상태가 더 심각해질 가능성도 있지만 그래도 치료를 할 수 있는 상황이니 하는 데까지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우리에게 의견을 물었다. 당연히 아빠와 나는 끝까지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꾸벅꾸벅 조는 엄마에게 의사가 다시 한번 직접적으로 물었다. 상태가 더 나빠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한번 더 해보시겠냐고. 엄마는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답했다.


네. 해주세요. 해주세요.


의사는 환자의 의지를 파악하기 위해 면담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슬픈 미소를 지어 보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항암치료가 효과가 있는지 살피려면 적어도 1-2주는 있어야 하는데 그 사이에 간이 망가지면 중환자실로 갈 수도 있고 치료를 못 할 수도 있으니 엄마가 잘 버텨줘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엄마가 치료 의지가 강한 편이니까 오늘 바로 항암치료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다만 지금 혈소판 수치가 급격하게 떨어져서 이런 경우에는 항암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피검사를 자주 해야 한다고.


듣는 내내 계속 엄마의 눈이 감기자 의사는 아이고 하며 먹는 약을 다시 한번 살폈다. 졸린 기운이 있는 약이 있긴 하지만 이 정도로 자꾸 졸음이 오는 건 안 좋은 상황이라고 했다. 이렇게 졸다가 못 깨어 나는 경우도 있고 간성혼수가 되어 치료가 불가해지는 경우도 있단다.


의사는 엄마에게 새롭게 물었다. 갑자기 환자분이 죽게 되면 그전에 가족들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이나 해야 할 일이 있냐고. 엄마는 그런 건 안 생각해봤고 두 손을 밖으로 털어내며 "알아서 잘 살아라."라고 작게 외쳤다. 의사는 웃으며 그래도 마음이 가벼우신 것 같아 다행이라고 했다. 진료실을 나왔는데 의사가 아빠만 따로 불러냈다. 안 좋은 징조였다. 나는 대기실에 앉아 휠체어에 탄 엄마 다리를 맞은편 의자 위에 올려놓으며 계속 다리를 주물러 줬다. 종아리가 차가웠다.


십여 분이 지나고 아빠가 나왔다. 엄마는 아빠에게 물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왔냐고. 아빠는 아까 들었던 얘기를 그대로 해주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짜증이 조금 섞인 목소리로 “해.”라고 말을 던졌다. “괜찮아지겠지. 그냥 해.”라고 말했다. 그렇게 힘든 중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엄마의 의지에 마음이 쓰라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해왔지만 그래도 조금 더, 더 오래 살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의 눈이 계속 감긴다. 깨우고 싶지만 미안해서 깨울 수가 없다. 엄마는 이제 누워있고 싶다고 했다. 아빠가 엄마를 병실로 데려다줬다.


나는 아빠를 데리고 잠시 바람이나 쐐러 병원 밖 카페로 갔다. 아빠는 의사와 단 둘이 나눈 대화를 전했다. 엄마에겐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뒤늦게 나에게만 얘기를 해주는 것이었다. 지금 간 상태로는 항암약을 못 버텨서 쇼크가 올 수도 있고 언제 정신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해줬단다. 간이 약을 잘 흡수하도록 도와야 하는데 되려 지금은 간이 피를 응고시키고 있으니 좋지 않은 중에도 많이 안 좋은 편이라고. 그래도 약을 못 쓰고 죽어가느니 한 번이라도 더 도전해 보겠다는 엄마의 의견에 항암치료를 진행하긴 하지만 만약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전했다. 아빠는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고 내 앞에서 아이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나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아빠를 따라 울고 말았다. 엄마 어떡하냐고 아빠가 지켜주지 못한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하다고. 우리에게도 미안하다고. 아빠의 손을 잡고 나도 같이 펑펑 울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사선에 다다를 수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제일 후회되는 건 엄마가 처음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마쳤을 때 옆에서 제대로 병간호를 못해주었던 것. 식도암을 거뜬히 이겨낸 아빠처럼 엄마도 쉬이 나을 거라고 착각했던 것. 내가 조금 더 옆에서 신경 쓰고 보살펴 주었다면 이렇게 병을 키우진 않았을 것 같다. 지나서 후회해 봐야 소용없지만 내가 죽을 만큼 미워서 참을 수 없다.


아빠는 사실 엄마의 옆에 24시간 붙어 있으니 엄마가 요 며칠 사이에 부쩍 안 좋아진 걸 많이 체감했다고 했다. 어제만 해도 괜찮다고 우스갯소리도 하고 그랬는데 오늘은 말도 못 하고 인지력도 떨어지고 자꾸 눈이 감기고 눈이 노래지는 게 이상해도 한참 이상하다고 느꼈단다.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 직감. 희미하게 꺼져가는 생명을 붙잡고 싶어도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빠는 오래도록 울었다. 질끈 감은 눈에 수많은 주름이 잡혔다. 아빠도 참 많이 힘들 텐데,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 속에 살고 있을 텐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고작 옆에 있어주는 것 밖에 없다. 아빠는 엄마가 안 좋아지더라도 갑자기 잘못되는 것보다 차라리 혼수상태로 가면 그래도 참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모르겠다 이제. 진짜 하늘에 달렸다. 하늘도 참 무심하다. 그렇게 착하고 순한 엄마를 왜 아프게 하냐고 그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 고칠 시간에 그냥 여행이나 다닐 걸 그랬다고 아빠는 끝없이 후회를 줄지어 늘어놓았다.


기나긴 후회를 줄지어 뱉어내다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엄마가 항암주사를 맞는 3시간 동안 나는 병원에서 나갈 수 없었다. 마음이 너무 불안해서 밤까지 2층 벤치에서 엄마를 걱정했다. 엄마를 만날 수도 없고 피곤만 더해질 뿐이겠지만 그래도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아빠도 옆에서 많이 지쳐있지만 잠시나마 나를 만나면서 기분 전환도 하고 바람을 쐴 수 있으니 내가 있는 게 마음이 편했다. 저녁 8시쯤 되었을까? 아빠가 내려왔다. 나를 보자마자 갑자기 내 손을 꽉 잡길래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싶었다. 다행히 엄마는 항암주사를 잘 맞고 있고 별 다른 이상은 없다고 했다. 나는 9시가 넘어서까지 병원에 있었다. 엄마가 약을 다 맞을 때까지. 엄마는 조금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안색이 더 괜찮아 보인다고 했다. 항암주사를 무사히 마치고 암모니아 수치가 너무 높아서 일시적으로라도 낮추기 위해 관장을 한다고 했다. 모든 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좀 더 건강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오길 고대하지만 어째서인지 엄마의 상태가 더 나빠지는 것만 같다. 엄마의 조용한 투쟁을 두 손 놓고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우리였다.

이전 11화 절대 절망에서 절대 희망으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