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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회 Oct 12. 2022

절대 절망에서 절대 희망으로

2022-06-23


2022년 6월 23일


일을 하다가 두시쯤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가 있는 병동은 보호자 1인 외에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서 나는 병실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또 1층에서 아빠를 기다렸다. 엄마는 혈청을 맞고 있는 중이라 나오지 못했고 아빠랑 밥을 먹었다. 아빠의 눈 밑이 퀭했다. 안 그래도 시커먼 얼굴이 더 탁해졌다. 기어코 밥을 안 먹고 라면을 먹겠다길래 꼬마김밥 두 줄을 같이 시켰다. 이런 상황 중에도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아빠의 마음이 많이 느껴졌다. 이번 주에 교회에서 들었던 설교말씀처럼 희망이 없는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바라보는 믿음을 끝까지 지켜나가리라 다짐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아빠는 엄마를 데리고 내려오겠다며 12층으로 올라갔다. 한참을 기다리니 오늘도 역시나 휠체어에 탄 엄마가 나타났다. 엄마는 그 와중에도 내가 피곤할까 봐 걱정이 되었는지 얼굴 봤으니까 이제 그만 가보라고 했다. 또 울컥하고 짜증이 났다. 그러고는 별말 없이 피곤한 표정으로 힘 없이 앉아 있었다.  


곧 폐에 찬 물을 빼기 위한 관 삽입 시술을 받아야 해서 다시 병동에 올라가 로비에서 대기를 했다. 엄마는 오늘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다고 한다. 그나마 내가 와서 이렇게 잠시나마 힘을 내서 앉아있는 것이었다. 엄마는 링거를 맞고 있는 오른손이 저린지 힘없는 왼손으로 오른손을 주물렀다. 그 순간 나는 엄마의 생명력이 꺼져간다고 느꼈다. 순식간에 나의 모든 사고가 뒤틀어지며 흔들렸다. 시술 순서가 다가와서 엄마는 수술실에 갈 준비를 했다. 침대에 누운 채 심박을 체크하는 기계와 호흡기까지 달고 나왔다. 누가 봐도 중환자 같았다. 누가 봐도 말기암 환자 같았다. 엄마 옆에서 조잘조잘 떠들면서 엄마를 계속 따라갔다. 수술실로 들어갈 때까지 말이 끊기지 않도록 열심을 다했다.


시술은 한 시간 정도 걸려서 바로 옆 대기공간에서 아빠랑 같이 앉아있었는데 담당 주치의가 갑자기 나타나 엄마가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아빠는 갑자기 불안해했다. 왜 여기까지 담당의가 왔는지, 좋은 일은 아닐 테고 나쁜 일이어야 오지 않겠냐며 극도로 초조해했다. 오 분 정도 지났을까? 담당교수가 나왔다. 엄마의 상태를 보니 항암치료를 할 순 있을 것 같은데 간 기능이 현저히 떨어져서 투여한 혈청이 잘 흡수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폐에 자꾸 물이 차는데 물을 다 빼지 않으면 호흡이 어려워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니 물이 빠질 때까지 입원은 불가피하다고 했고 최대한 항암치료가 가능하도록 노력해보겠다고 했다. 이번에 한 번 바꾼 약이 효과가 없으면 다른 약으로 한 번 더 바꿔볼 건데, 그마저도 효과가 없으면 항암치료는 의미가 없다고 했다. 사실상 간당간당한 상태라고, 수명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진짜 길어야 1년이고 상태가 안 좋으면 3-4개월이라고 했다. 엊그제만 해도 6개월이라 했는데 금세 또 3-4개월이 됐다. 이제 환자를 위한 건 환자가 최대한 편안할 수 있게 가족들이 함께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작게 한숨을 쉬는 담당교수의 소견에 눈물이 차올랐다. 아빠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꾹 참았다. 교수가 떠나고 엄마가 나왔다. 누워있는 엄마의 환자복엔 피가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정신이 혼미한 채로 누워있는 엄마의 발을 계속 주물렀다. 아무리 주물러도 차갑기만 했다. 또 느꼈다. 빛이 희미해져가고 있음을. 아빠는 애써 나를 위로했다. 의사가 저렇게 말했어도 우리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니까 좋게 생각하면 또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 엄마를 병실로 올려 보내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엄마의 손을 꽉 잡았다. 엄마도 내 손을 꽉 잡았다. 마음이 더 아려왔다.


병원에서 나왔는데 도저히 다시 일터로는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울음을 한 번 털고 가야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눈물을 꾹 참으며 지하철에 내 고통을 털어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신경 쓰이지 않은 적은 처음이었다. 내 슬픔에 지배당해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저주도 했다. 이 고통과 슬픔이 이 지하철에 탄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지게 해 달라고. 집에 도착하고 바닥에 대자로 누워 펑펑 울었다. 생전 들어보지 못했던 나의 목소리였다. 하늘도 울었다. 많이. 번개와 천둥이 손뼉을 쳤다. 슬픔의 소용돌이에 내 감정이 손 쓸 수 없이 쓸려갔다. 다시 빠져나올 수가 없을 만큼. 그리고 정전이 잇따랐다. 어둡고 음침한 내 기분이 시각적으로 그대로 느껴지는 상황에 묘한 소름을 느꼈다. 절대 절망에서 절대 희망으로는 개뿔. 세상은 고통의 연속이다. 이게 내가 오늘 느낀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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