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
유방암 골전이 진단 후 2022년 초. 엄마는 사선에 서서 치열한 싸움을 지속했다.
엄마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병원을 집처럼 드나들었다. 슬픈 현실을 직시하자면 차도가 없는 편에 속했다. 병이 악화되지 않게 입원을 해서 집중 치료를 받다가 조금 안정되면 퇴원하기를 반복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이 시기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병원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다. 심지어 간호 병동이라 보호자가 상주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보호자 1인을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병원 안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일이었다. 입원해 있는 엄마를 만나려면 1층 로비에서나 가능했는데 다리를 절뚝이는 엄마를 1층으로 불러내는 것 자체가 미안했다. 이 빌어먹을 코로나를 상상 속에서 때려가며 화를 간신히 억누른 채 하루하루를 살았던 것 같다.
대설주의보 발령
오늘은 엄마가 병원에 다시 입원하는 날이다. 지난 정밀검사 결과 뼈에 한정해 몸 전체가 암세포에 조금씩 장악되고 있었다. 양쪽 폐에는 물이 반 넘게 차서 일단 물을 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의 유방암은 삼중음성이라 표적치료 약이 다른 암에 비해 많지 않다고 약을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신약이 있긴 한데 환자들 중 15%의 가능성으로 약이 맞는다고 했다. 약을 쓸 수만 있다면 차도는 좋은 편이라고 했다. 다만 보험 처리가 불가해서 한 달에 500만 원의 비용이 든다.
이제 끝이 없는 항암치료가 시작될 것이다. 약이 엄마에게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서 투여하는 약물의 종류만 바뀔 뿐 엄마의 치료는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갑자기 속수무책으로 슬퍼졌다. 창 밖을 보니 눈이 펑펑 내린다. 요 몇 주간 마음을 잘 추스렀는데 펑펑 내리는 눈을 보니 슬픔을 참을 수가 없어졌다. 밥을 먹다 갑자기 울음이 펑하고 터졌다. 엉엉 울면서 밥을 꾸역꾸역 삼켜냈다. 다시 의문이 들었다. 엄마는 왜 아파야만 했을까. 하늘이 내게 주는 이 상황의 의미는 무엇일까. 오늘부터 나는 눈이 싫어질 것 같다. 눈이 내릴 때마다 엄마가 생각나고 지금의 내 감정도 고스란히 떠오를 것 같다.
기대 수명
오늘도 어김없이 아빠와 연락을 했다. 엄마의 상태가 좋은지 나쁜지 확인을 해야만 하루가 살아졌다. 엄마의 양쪽 폐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는데 하필 폐에도 암세포가 전이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나마 장기 쪽으로 전이는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나는 이제 다행이라는 단어를 쓸 수가 없어졌다. 엄마의 암이 신약에 적합한지 항체 검사를 했는데 엄마는 15%의 확률로 가능성이 있는 편에 속했다. 의사도 기존 약보다는 효과가 좋은 편이니 일단 신약으로 치료를 시작해볼 것을 권유했다. 한 달에 세 번을 투여하고 경과를 관찰 후 어떻게 진행할지 결정된다고 했다.
의사는 자꾸만 엄마의 수명을 줄여나갔다. 뼈 전이 때만 해도 3년이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6개월도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처절하게 떨어지는 그 수치가 밉기만 했다.
붉은여우 꼬리풀
병원에 입원한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입원은 잘했는데 퇴원이 하루 늦어질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더 이상 엄마의 상태와 치료 진행 상황에 대해 물을 수가 없었다. 미안해서 그렇다. 본인의 병에 대해서 자꾸만 설명해야 하는 엄마가 안쓰러웠고 그걸 알면서도 궁금한 걸 못 참고 물어보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뜬금없이 카페 인테리어를 바꿨다며 사진을 찍어서 엄마에게 보내줬다. 카페에 있는 식물들을 한 곳으로 모아 두었는데 엄마는 그 사진을 보더니 신기한 식물이 있는데 한 번 키워보겠냐며 선물로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붉은여우 꼬리풀이라는 식물이었다. 집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이 식물은 절대 죽이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그렇게 하면 엄마의 기대 수명을 조금이나마 지킬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